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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붓이 참선을 하고, 참선이 붓질을 한다

등록 2009-07-15 00:28

서예가 김홍규

늙어갈수록 빛나는 참선과 서예의 삶

제자들 가르치며 노년의 행복감 만끽

 

 

고령화시대에 현직을 떠난 퇴직자들도, 언젠가 퇴직해야 할 중년들도 정년 뒤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걱정이다. 인도에선 어려서는 배우고, 젊어서는 가정에 헌신하며, 아이들이 자란 뒤엔 집을 나와 깨달음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비록 출가하지 못하더라도 정신적 가치를 추구면서도 자신도 삶의 활력과 행복을 얻고, 이를 타인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시곡 김홍규(73) 선생은 그 꿈을 현실로 살아가고 있다. 반평생 일한 교단에서 퇴직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의 스승이어서 늙어감을 비탄할 틈이 없다. 그의 참선과 서예는 오히려 늙어갈수록 빛을 발한다.

 

주말엔 참선, 주중엔 서예 지도

 

생활참선 지도사범인 시곡은 매주 금요일이면 충북 진천 봉화산으로 내려가 대흥사 선방에서 참선을 지도하고, 토요일이면 서울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철야로 참선 정진을 한 뒤 아침이 되면 북한산 운가암에서 죽비를 잡고 생활참선동호인들의 참선 모임을 이끈다. 그뿐이 아니다. 국선 서예부문 입선 작가이기도 한 그는 주중엔 30년 넘게 한 주도 빠짐없이 연세대 서우회에서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상계동의 상경중과 상원중학교 교사들을 비롯한 몇 개의 동호인모임에서 서예를 지도한다.

 

그에게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붓글씨의 기교를 넘어서는 서풍(書風)을 느낀다. 20년 참선의 내공을 담아 호흡에 맞춰 때론 기운이 넘치고 때론 푹 쉬는 듯한 붓놀림에서 함께 ‘서예 삼매경’을 만끽한다. 그에겐 참선과 서예가 둘이 아니다.

 

연세대에서 그에게 서예를 배운 서우회1기 마승진씨는 시곡에 대해 3가지를 느낀다고 했다. 첫째는 한결 같다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도 빠지지않고 학생들이 서예를 등한시할 때도 실망도 내색도 하지않고 꾸준히 자신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글 쓰기 전에 함께 참선을 하도록 해 ‘우리 모두가 주인된 존재이고 우주와 하나됨을 강조’하면서 어떻게든 진리의 세계를 알려주려 애쓰는 분이라고 했다. 또 물질에 초연하고 늘 그 마음이 소박 담백해 말할 때마다 그 성품이 우러나와 숙연함을 금할 수 없다고 평했다.

 

사람의 최고 경지 ‘즐기는 사람’

 

시곡에 대해 계명대 서예과 김양동 교수는 “시곡선생은 그 흔한 공모전 출품조차 외면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내공에만 힘을 축적한 참서예가”라면서 “<논어>에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시곡 선생님이야말로 이 구절 그대로 서예를 알고 종국에는 즐기는 그야말로 진실하고 진실한 서예가가 아니냐”고 했다.

 

시곡이 처음 서예를 접한 것은 덕성여고 교사로 재직할 때인 1969년 동방연서회에 나가 근현대 서예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여초 김응현(1927~2007) 선생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무엇을 하건 말없이 일편단심인 그의 글씨는 소리없이 무르익었다. 서울 조계사 옆 옛 중동고 터 돌비에 쓴 ‘중동학교 옛터’라는 글씨는 중동고 동문들이 여초의 친형으로 여초와 함께 서예계의 일세를 풍미한 동문인 일중 김충현(1921~2006) 선생에게 부탁했는데, 마침 일중이 몸져 누워 그가 대신 써 칭송을 받은 글씨다.

 

“마음 모아 글씨 쓰면 글씨와 우주가 일체”

 

시곡의 글씨는 참선 수행 이후 일취월장했다. 1990년대 초 박희선(91) 박사의 생활참선을 만나 참선을 시작한 그는 일심으로 수행한 끝에 단전에서 솟구치는 기운을 분명히 느끼게 되면서 손끝이 아닌 팔뚝으로, 나아가 팔뚝이 아닌 온몸으로, 더 나아가 몸이 아닌 단전의 기운으로 글씨를 쓰게 됐다.

 

그이 달라진 면모를 본 여초는 어느 날 시곡에게 “요즘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가 “참선을 한다”고 답하자 여초는 “‘서예가 곧 참선이고, 참선이 서예다”라고 했다. 이제 시곡은 스승 여초의 말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그는 “서예는 마음의 작용을 형상화한 것”이라면서 “참선에서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면 내 몸과 우주의 기운이 일체가 되는 것처럼 마음을 모아 기운으로 글씨를 쓰면 글씨와 우주가 그대로 일체가 된다”고 했다.

 

한 사찰 찻집에서 인터뷰 도중 노구임에도 벽 없이 방 가운데서 물구나무를 설만큼 유연하고 화기로운 그의 모습을 본 한 할머니가 달려와 “병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아 잠도 안오고 열이 나고 혈압이 오른다”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시곡은 “언젠가는 누구나 죽을 몸, 삶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고 사는 동안이라도 당당해져라”라고 했다. 그리고 “욕심내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참선을 하고, 붓글씨를 쓰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평안해진다”고 했다.

 

시곡이 생활참선을 배운 박희선 박사가 도쿄 유학시절 배운 일본 근대의 고승 경산노사는 “사람은 0~30살의 수학기와 31~70살의 시련기를 거쳐 71~100살 결실기에 인생의 꽃을 피우게 된다”고 했다던가. 참선의 기운을 모은 그의 글씨 속에서 인생의 황금 꽃이 피어나고 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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