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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용산참사 일으켜놓고 유가족 지치길 기다리다니…”

등록 2009-07-01 13:39

시국 목소리 내는 김운회 주교

장례식도 못 치른채 분노로 버텨온 철거민 위로

구분하고 차별하기보다 약자에게 ‘작은 배려’를

 

지난 1월20일 개발의 상징으로 떠오른 ‘용산’의 한 건물 옥상에서 자신의 삶터를 지키려던 철거민 5명과 경찰 한명이 경찰의 농성자 진압 과정에서 참사를 당한 지 5개월이 넘었다. 하지만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철거민들의 주검은 병원 영안실에 ‘방치’돼 있다. 절망과 분노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온 이들을 찾아 위로했던 서울대교구 김운회(65) 주교를 지난 29일 서울 명동성당내 주교관으로 찾았다. 김 주교는 지난 23일엔 용산참사현장을 지키던 사제단이 경찰에 의해 폭행을 당하자 즉각 책임자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해 용산경찰서장의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용산참사엔 “그러려니~”를 적용 못해 

 

고위성직자란 으레 딱딱하고 근엄할 것이란 선입견은 그의 몸을 감도는 봄볕의 따사로움 속에서 금방 녹아버린다. 늘 처음 만난 사람들도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그의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주교관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김 추기경 생전에 김 주교가 자신의 손님들에게 “저 방이 김추기경님 방”이라고 하니, 손님들이 방문고리를 잡으며 “김추기경님이 늘 잡은 고리니 악수한 것이나 다름 없다”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 손님들이 돌아간 뒤 그 얘기를 김추기경에 하자 김추기경은 그 손님들을 초청했고, 초대받은 그들은 그렇게 김추기경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며 행복해했다. 김 추기경은 그에게 그렇게 위대함보다는 ‘작은 배려’로 남아 있다. 그 또한 김 추기경 못지않다. 젊은 신부들과 회식자리에서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평소 피우지 않던 담배를 달라고 해서 피우기도 하는 그다.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그러려니~”하며 우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이만의 여유가 그 웃음 속에 배어있다. 그런데도 ‘용산’에 대한 정부의 처사엔 ‘그러려니’로만 그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유가족들이 제 풀에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니 우리나라에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결국 정부의 공권력이 개입해서 참사가 일어났으니, 정부가 손을 써서 해결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렇게 처참하게 가족들을 잃어버린 이들보다 불쌍한 사람이 있느냐. 어느 정도의 분풀이는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그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며 분이 풀리기도 전에 끌어내면 그 분노가 다 어디로 가겠는가.”

 

그는 “경찰의 물리적 진압을 견디다 못한 사제들이 함께 몸으로 대항하는 경우도 있고, 경찰이 이런 것을 사진으로 찍어 자신들의 정당성을 항변하기도 하는데 사제들은 경찰이 때리면 맞아야 한다고 얘기한다”면서 “경찰도 사제들이 유족들의 마음을 안정시켜 극단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오히려 그렇게 막 대하지 않고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라지길 바랐던 꼴통 없어지면 다른 꼴통 나오더라”

 

갈 곳 없는 이들에 대한 배려는 그의 핏속으로 이어져왔다. 김 주교의 어머니는 지난해 선종하면서 전재산인 용산의 한 건물을 자식 9남매가 아닌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 기부했고, 이 건물은 갈 곳 없는 에이즈환자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다. 철거민도 에이즈환자도 장애인도 그에겐 자신과 별반 다름이 없는 같은 인간일 뿐이다.

 

“나도 요즘 나이가 먹으니 관절이 아프다. 관절을 못 쓰면 나도 당연히 장애인 아닌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들을 구분하고 차별하고 제거하려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씨를 아예 말려 제거하려 한 나치를 비판하면서도 나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혜화동 동성고의 교사와 교장을 지낸 교육가이기도 한 김 주교는 “우리 반에 저 꼴통만 없으면 모범반이 될 텐데 하지만 그 꼴통이 사라지면 꼭 다른 꼴통이 나오더라”면서 “그들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어울리는 곳이 바로 하느님이 말씀한 천국”이라고 했다. “비장애인과 부자와 선한 사람만이 있는 곳이 아니라 강·약자와 빈부와 선악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이다.

 

한국가톨릭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김 주교가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마찬가지다. 인민은 안중에 없이 정권 안보에만 매달리는 벼랑 끝 전술이나 미국이나 서구의 비자를 가진 사람들에겐 평양 외 지역도 개방하면서 유독 가장 많이 돕는 남쪽 사람들에겐 종교인들에게조차 평양 이외 지역의 개방을 꺼리는 북한의 이중적 태도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엇이건 힘이 없는 쪽이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의 물꼬를 트기는 어려운 만큼 경제력과 힘이 있는 남쪽이 용서와 대화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주교는 남쪽 정부에 대해서도 “아무리 어려워도 종교인들이나 민간의 인도주의적인 창구를 닫지는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배려하고 사랑할 대상이 없다면 성인도 없다”면서 “약자들을 사랑하면서 더 큰 행복을 느끼고 더 큰 은총을 받게 되기에 그들은 제거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너무도 고마운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뭐든 ‘나 혼자만’ ‘빨리 빨리’, 이기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앞서가는 것에만 온통 정신을 빼앗겨있으니 쓰러지고, 아프고, 지친 사람들도 볼 수 있는 눈도 없고, 행복을 느낄 여유도 갖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아픈 한숨이 새어나왔다. ‘작은 배려’가 너와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왜 알지 못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4대강 문제에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아”

 

“지난 2002년 주교가 된지 7년이 다되어가는데, 신부였을때와 주교가 된 이후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주교는 “몸이 5kg이나 불었다”고 했다. 주교가 되기 전엔 종종 등산도 했는데, 주교가 되니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데가 많아서 자유가 없고 술도 마셔야 하니 몸이 불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교황청 대사관에서 주교 통지를 받을 때 “저는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자격이 없다”고 핑계를 댔다고 한다. 그런데 대사가 “다른 사람들도 다 당신 같은 핑계를 댄다”고 했다. 그는 곧장 베론의 봉쇄수도원으로 달려가 수녀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길 간구하고, 3일 동안 기도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하느님께 항명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하느님이 내가 완벽해서 그런 게 아니고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그런 것이니 뭐든 내 힘으로 하겠다고 하고, 내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명하기로 하고, 주교가 됐다. 그랬더니 뭐든 내가 하는 게 아니더라. 뭐든 신통하게 처리가 된다. 내 힘으로 한다면 꼬이는 일도, 오히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자연적인 흐름에 맡긴다는 그의 사고방식은 환경에 대한 생각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해 김 주교는 “정부가 그런 일에 매달리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사천성 대지진 이후 세계 최대 댐인 샨샤댐에 대한 위험 경고가 나왔듯이 자연의 흐름을 인공적으로 막으면 자연의 재앙을 불러오게 되고, 인공적으로 꾸며놓으면 청계천처럼 당시는 편리하고 멋져 보이지만 장발이나 판타롱이 한때는 멋의 상징으로 보였다가 때가 지나면 촌스러움의 상징이 되듯이 멀리 보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연에 대해서도 뭐든 인간 위주, 내 위주로만 어떻게 하려고만 하지 말고, 자연 그대로를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 속에 묻어있는 것은 위대한 업적이나 위대한 사랑이 아니라  ‘작은 배려’였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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