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아트스페이스’ 연 박경귀-양순복씨 부부
불교적 삶과 멋을 나누는 복합문화공간
24일까지 ‘나눔과 공생’ 주제로 첫 전시
우리나라의 과거의 멋과 현대의 감각이 어우러져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서울시가 ‘디자인 거리’로 정해 꾸미는 곳이기도 하다. 그 거리에 ‘선(禪) 복합문화공간’이 생겨났다. 총리공관 부근에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최근 문을 연 ‘선(禪)-아트 스페이스’다. 바닥면적은 30~40평이나 될까. 은회색빛의 조그만 건물이지만 작아서 더욱 값져 보인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절이나 스님이 연 공간이 아니다. 30년간 불화(佛畵)를 그려온 문화재수리기술자 443호 박경귀(45)원장-양순복(44)씨 부부가 마련한 곳이다. 이 건물을 지은 자리는 박 원장 부부가 15년간 작업을 해온 작업실이자 2남1녀와 함께 살아가는 집이기도 하다.
13살때 입문…30년간 불화 그린 문화재수리기술자
집에 쌀이 떨어질 만큼 곤궁할 때도 선화(禪畵)를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야금을 켜고 대금을 불게 할 만큼 멋에 살고 멋에 죽은 이들 부부는 늘 불교적 삶과 멋을 나누고 가꾸기 위한 공간을 꿈꾸었다. 작지만 아름다운 그 꿈은 어느덧 현실이 되었다. 이 건물 지하의 전시공간인 ‘스페이스 선+’ 개막식 때는 그의 아이들과 이웃들이 함께 국악과 현악, 민요를 곁들인 멋진 공연도 했다.
오는 24일까지 열리는 ‘스페이스 선+’의 첫 전시회는 ‘나눔과 공생전’이다. 그와 함께 불화작업을 해온 선아트회원들과 초대작가 등 6명의 불화작품들이 깨달음의 미소를 나눠주고 있다. 개관전 판매금은 국제구호단체인 ‘로터스 월드’에 기부한다. <하버드대에서 화계사까지-만행> 저자인 현각 스님도 저자 사인회를 열어 <부처를 쏴라>를 20% 할인판매해 기부대열에 동참했다. ‘스페이스 선+’은 앞으로도 대관료와 개관료 없이 나눔과 공생을 실천하고 멋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에게 대여될 예정이다.
‘전통’에 묻힌 탱화를 ‘현대적 붓다’로 되살려
박 원장은 한 형의 영향으로 13살 때 불화에 입문해 전통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기보다는 운명적으로 주어진 길이었다. 그러다 선화예고 미술과를 거쳐 동국대 미대에 진학한 뒤 사찰 탱화를 지배하는 조선시대 불화와는 다른 고려불화를 접하며 그는 불화의 세계에 깊게 매료됐다. 경남 양산 통도사와 전북 김제 금산사 등의 대찰에서 수많은 탱화를 그렸던 그는 불화를 이 시대와 현대인들과 만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찰의 탱화는 주문 생산이어서 그의 열정을 펼칠 수 없었다. 또 대찰의 스님들 중엔 전통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선-아트 스페이스’는 지난 30년간 붓다를 그려온 그가 ‘현대적 붓다’를 그리며, 사람들과 나누고픈 공간이다. 그는 지난해 조계종 스님 중에선 드물게 동자승 출신이면서도 캠브리지대-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미산스님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개원해 화제를 모았던 상도선원의 내장을 총기획하기도 했다. ‘전통’이라는 이름 속에 박제화된 불교를 현대인들과 만나게 하는 공간으로 멋지게 꾸며진 상도선원에서 일차적으로 그 꿈을 펼친 셈이다.
이곳은 박 원장 부부가 이제 자신들의 뜻으로 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전시뿐 아니라 선화를 배우며 그리는 ‘아카데미 선(禪) 그림’을 운영하고, 전시공간에서 금요일 밤엔 작은 영화관을, 토요일 밤엔 ‘공명의 작은 음악회’를 열며, 일요일에는 명상과 요가를 통해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참나를 보는 명상’을 할 꿈에 부풀어 있다. zenart.kr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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