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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있는 게 없는’ 아프리카에 ‘행복 오케스트라’

등록 2009-06-10 14:22

‘한국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사제·의사는 기본…십장·선생님 등 ‘무한 변신’

아이들밴드 만들어 총성 대신 음악 ‘희망 변주’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과 단지 꿈으로만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로 간 의사 슈바이처를 동경하다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 수단으로 날아가 8년 동안 살아온 이태석(46) 신부를 만났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살레시오수도회에서 처음 본 이 신부는 영락없는 아프리카 원주민 사촌이다. 그가 아프리카에 가기 전 희멀겋던 얼굴색은 간 곳이 없다.

 

의사 되고도 이루지 못한 꿈 찾아 로마까지 가 신부수업

 

이 신부는 어려서부터 수도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위의 형이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가자 자기마저 수도자로 출가하면 어머니가 너무도 쓸쓸해할까 두려워 수도자의 길을 접었다. 그가 아홉살 때 홀로된 어머니는 10남매를 키우느라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분이다. 그는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선망의 그 직업이 줄 부와 명예도 그의 꿈을 대신해줄 수 없었다. 군의관시절 인근 성당에 머물며 살던 중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뒤늦게 ‘신부 수업’을 시작했다. 로마까지 가서 공부해 사제가 된 그는 지난 2001년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하지만 꿈을 펼칠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경비행기를 타고 수단의 남부 톤즈에 도착했을 때 섭씨 45도를 넘나들어 가만히 있어도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 날씨와 텔레비전과 라디오와 인터넷과 신문을 비롯한 문명의 이기들과의 철저한 단절, 그리고 무엇하나 먹을 것 없는 배고픔…. 3일 만에 정신을 차리고보니 자신의 문제에 집착해있는 두려움 같은 건 호사일 뿐이었다.

 

얼마 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한쪽 구석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리고 쿵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만삭의 임신부가 심한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흙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일단 나무 아래로 그를 옮기고 열명의 여자들이 ‘인간 커튼’을 두르자마자 아이가 나왔다. 미사 중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이 신부가 “식기 전에 세례를?!”이라고 농담할 수 있을 때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뒤 그에게 오는 임신부들은 집에서 애를 낳다 순산을 못해 도움을 청하는 이들 뿐이었다. 장가도 안 간 그가 그렇게 받아낸 신생아가 무려 수백명이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고열과 구토에 시달리는 하루 수십명의 말라리아 환자들, 콜레라로 심한 설사를 하며 탈수돼 심장이 멎어가는 원주민들, 지난 2005년까지 20년 동안 200만명이 사망한 내전으로 팔다리가 잘리거나 가족을 잃어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 등 하나 같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난생 처음인 여러 악기들 혼자 익혀 아이들에게 가르쳐

 

수단의 북쪽은 무슬림들이 대부분이며 아프리카 흑인들과 아랍인들의 혼혈이 많아 아프리카 흑인처럼 검지 않다. 반면 이 신부가 머무는 남부 수단은 토속 원주민들이다. 남쪽과 북쪽은 인종도 종교도 언어도 다르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남북관계와는 전혀 달리 이질적이어서 평화가 쉽게 이뤄지지 못한다. 남부 수단인들은 북부 수단으로부터 당하는 핍박으로 증오심이 강해 네살만 되면 자신이 위해 당하지않기 위해 늘 싸우려는 태세다. 그처럼 거친 아이들과 이 신부는 한데 섞였다.

 

로마의 살레시오수도회에서 파견된 두명의 신부와 네명의 수녀들과 함께 성당과 80여개의 공소를 맡고 있는 그이지만 실상 그는 그 오지에 병원과 학교를 짓는 건설현장의 십장이었고, 학생들에게 수학과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이 신부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피아노와 기타 등을 즐겨 쳤다. 어린 시절 성당에 있는 풍금을 치며 이를 지켜봐주던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따스한 시선을 느끼곤 했던 그는 음악으로 전쟁의 상흔이 박힌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년 전 남수단 최초의 브라스밴드부를 만들었다.

 

그의 청에 따라 한국에서 온 트럼펫과 트롬본, 클라리넷 등의 수많은 악기들의 대부분은 그도 처음 만져보는 것이었다. 도레미파솔레시도도 처음 들어보는 아이들을 가르치자면 그가 먼저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고액의 레슨을 받아도 악기를 다룰까말까하는 한국에선 상상도 안가는 얘기지만 그는 설명서를 보고 혼자 악기를 익혀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까막눈 아이들 이틀만에 소리 내고 나흘째 합주 ‘음악 천재’

 

그런데 기적과 하느님의 은총은 이 신부에게만 온 것은 아니었다. 까막눈의 아이들이 하루 이틀만에 원하는 음을 불어내고 있었고, 이틀만에 <주 찬미하라>를 연주했다. 합주 연습후 나흘째 되는 날 첫 합주곡을 다 같이 연주해 냈다. 수십년간 울려퍼지던 총성 대신 클라리넷과 플루트, 그리고 트럼펫의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처음으로 울려퍼진 것이다.  연주가 끝난 뒤 아이들은 “총과 칼들을 녹여 그것으로 클라리넷과 트럼펫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그 밴드부가 대통령이 국빈을 맞을 때 초청공연을 할 정도가 됐으니 ‘주 찬미’가 나오지않을 수 없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과 음감을 가진 아이들은 그야말로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천재’들이었다.

 

물질적으로 보면 ‘없는 게 없는’ 한국과 달리 ‘있는 게 없는’ 곳이며, 먹고 배우고 병을 치료하는 게 쉽지않은 곳이지만 부자나라 사람들이 갖지 못한 행복의 비결이 있다. 작은 것 하나에도 만족하고 기뻐할 줄 아는 것이다.

 

수단에서 헌신하면서 자신을 돌볼 틈이 없어 병이 든 몸을 치유하기 위해 남몰래 잠시 한국에 들어온 그에게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오늘도 “보고 싶다”며 성화란다.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던 아프리카의 아이들과 이제 뗄레야 뗄 수 없는 친구가 되어버린 그가 우리의 마음을 여는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 펴냄)를 냈다.  검게 그을리고 야윈 이 신부의 눈동자에서 해맑은 아프리카 친구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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