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돌집 김순현 목사
은총의 바다에서 창조의 영성 그물질
어린이도서관도 만들어 ‘아이들 천국’
전남 여수 돌산읍 평사리 계동마을. 돌산대교를 건너 30여분을 더 달려 한적한 야산을 넘어서면 나무 사이로 바다가 어머니의 품처럼 큰 팔을 벌리고 있다. 그 바닷가 어귀의 돌집이 갈릴리교회다. 애초 바닷가에 미역공장으로 지었다는 돌집이 마치 어느 산골 수도원처럼 고풍스럽다. 갈릴리교회다.
돌집교회에서 건장한 이가 나온다. 김순현(43) 목사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파도와 싸운 뱃사람처럼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는 바다 구경도 못해본 강원도 횡성 산골 사람이다.
또 청년시절엔 이런 저명한 신학자와 목회자를 꿈꾸던 학도였다. 그래서 감신대 재학시절 독학한 실력으로 영어와 독일어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수준높은 번역가로 이름을 떨칠 만큼 실력을 갈고 닦았다. 독일로 유학을 가 신학자가 되려던 꿈을 접은 뒤에도 그는 강릉의 가장 큰 대형교회에서 일하며 미래에 한국의 감리교단을 이끌 감리교 수장인 감독이 될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을 버리고 예수의 종이 되어야 할 감독직을 권력으로 여기고 엄청난 돈을 써가며 다툼을 벌이는 목회자는 외형만을 지향하는 삶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알려주는 반면교사였다. 김 목사는 그들을 보며 끊임없이 욕망을 채워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인생을 걸었던 ‘그 분’에게 다가가는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9년 전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남 남해 고현교회로 떠났다. 그 이후 고현교회에서 5년, 이곳 여수 갈릴리교회에서 4년째 바닷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막상 바닷가로 오긴 했지만 물만 보면 겁을 내던 산골 출신인 김 목사는 어느 순간 이곳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은총의 바다’라는 것을 깨닫고, 물찬 제비처럼 물과 더불어 노는 사람이 됐다. 감신대 ‘퀸’으로 불릴 만큼 미모를 자랑했던 도회적 이미지의 그의 부인 조미현(41)씨와 한솔(15), 한샘(13) 두남매도 이제 바다와 들과 시골사람들이 어우러진 이곳을 세상 어느 곳보다 좋아한다.
이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이들이 김목사네 식구들만은 아니다. 갈릴리교회에서 늘 예배당보다 오히려 더 붐비는 곳이 교회내 어린이도서관이다. 성인 신도가 25명뿐인 갈릴리교회는 홀로서기가 어려운 미자립교회다. 그러나 김목사는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마을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00여가구가 살아가는 계동마을은 다른 농촌지역과는 달리 아직까지도 초·중·고생들이 30여명이나 된다. 그런데도 도시와 달리 방과 후 갈 학원도, 도서관도 없는 아이들을 위해 그가 남해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게 어린이도서관이었다. 30여명의 계동마을 아이들에게 이 어린이도서관은 자기집이나 다름없이 친숙한 공간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때로는 김 목사에게 영어를 배우기도 한다. 이들은 주일에도 교회로 달려오기에 교회는 늘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 위주의 교회이기에 재정이야 취약하기 그지없음에도 갈릴리교회 교우들은 절기 때마다 따로 돈을 모금해 국제기아대책기구 등에 보낸다. 아무리 가난해도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 수 있는 그 마음만은 저 넓은 바다를 닮은 사람들이다.
김 목사에게 바다와 들과 어부와 농민들은 그가 늘 마음에 품고 사는 독일의 신비주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9)와 둘이 아니다. 사람뿐 아니라 나무와 꽃과 돌 하나에도 하나님이 임재해 있다고 믿었던 에크하르트를 따라 그는 하나님이 준 이 대자연과 순수한 사람들이야말로 창조 영성의 원천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밭과 정원에서 흙을 만지면서 ‘그분’과 함께하는 동안 ‘먹물’의 하얀손은 머슴의 손처럼 투박해졌다. 그가 젊은 날 꿈꾸던 직위와 부와는 너무나 먼 삶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행복한 것은 따로 멀리 구할 것 없이 이 세상 모든 것이 온통 그분뿐이며, 은총도 따로 구할 것 없이 이미 이 대자연으로 주어졌음을 흙속에서 혹은 물속에서 깨달아가는 때문이다.
여수/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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