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순례 재개하는 수경 스님·전종훈 신부
28일부터 75일간 계룡산~임진각
“용산참사 희생자들에 온몸 사죄”
지난해 9월부터 두 달 동안 지리산에서 계룡산까지 오체투지를 했던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전종훈 신부 등 세 명의 성직자를 비롯한 20여 명이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는 28일부터 75일간 갈 이번 순례길은 계룡산에서부터 임진각까지다.
석가모니도, 예수도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생을 마감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 주었던 그 삶은 역시 그들이 가려는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이다. 하지만 종종 흙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지난해 충청도 이남 지역 길과 달리 수도권으로 접어드는 이번 순례 구간은 차량 통행도 훨씬 많고, 교통사고 위험도 그만큼 높은 길이다.
20일 서울 수유동 화계사에서 전종훈(왼쪽·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신부와 함께 기자간담회를 연 수경 스님(오른쪽·불교환경연대 대표·화계사 주지)은 “왜 또 그런 고난을 자처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길에서 엎드리다 보면 대지와 호흡이 일치되는 순간 땅이 안아 주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평안할 수 없다”면서 “수도권에선 흙길을 만나기 어렵고 훨씬 어려운 순례가 되겠지만 앉아 있는 것보다 길을 떠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선방에서 20여 년간 참선하다가 10년 전부터 생명운동에 나선 그는 “길바닥에서 보낸 10년 동안 세상이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 용산 참사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교계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호텔에서 법회를 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종교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충격을 받곤 한다”고 한숨을 내쉬며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내용이 바뀌지 않고선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삶의 내용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는 거듭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성찰의 문화를 만들어 시대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내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길 위에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함께할 전종훈 신부는 “올해로 사제 생활 20년인데, 늘 이 땅의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 시대, 이 땅에서 성직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자문하게 된다”면서 “오체투지는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납작 엎드려 땅과 일치됨으로써 길을 열어 가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삶이 바로 기도’라고 믿는다는 전 신부는 “시대를 외면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며, 시대와 소통하는 것이 참된 기도”라면서 “순례길은 시대와 만나고 소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날 함께하지 못하는 대신 글을 보낸 문규현 신부는 “비탄과 절망의 현실을 뻔히 눈뜨고 보면서도 도리어 선을 긋고 침묵하고 고개 돌리고 저 멀리 비켜간다면, 자기 말과 행위의 진정성과 인간애를 진실하게 살피며 새롭게 살기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런 종교는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며 “온몸을 낮춰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길을 가고, 상처 입고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을 위해 온몸 드리어 기도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순례단은 오는 28일 오후 2시 충남 공주시 신원사 중악단에서 오체투지 순례를 시작하는 천고제를 지낸다. 그 하늘을 향한 천고제엔 신경림 시인이 제문을 낭독하고 이현주 목사가 기도를 하며,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이 법문을 하고, 화계사와 전주 평화성당 공동합창단이 노래를 한다. 이어 매일 4km씩 나아가 오는 5월17일 서울시청과 명동성당에 도착하고, 순례 71일째인 6월6일 임진각 망배단에 이를 예정이다.
순례단은 남쪽 순례를 마치고 임진각에서 묘향산까지 오체투지를 이어갈 예정이었으나 북한 당국이 북녘 땅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것에 난색을 나타냄에 따라 서울에서 평양까지 직항기로 가서 묘향산에서만 오체투지를 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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