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마음공부 원불교 김제원 교무
성자처럼 자애롭다가도 깡패처럼 불호령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4가 41의 21 원불교 안암교당. 대광고 건너편 골목길. 골목에 주차한 차들과 여유공간 하나 없는 건물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기와를 얹은 토담과 사립문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교당이 숨구멍을 연다. 이 마을 사람들을 위한 교양강좌와 요가, 판소리 마당까지 여는 교당 안은 마치 한옥 같은 옛 향기가 가득하다. 70~80여 년 전 원불교 초기 교단 선진들의 모습이 이랬을까. 조그만 골목길의 이름없는 교당을 마음공부 도량으로 일군 안암교당 주임 김제원(45) 교무다.
요즘은 어느 종교든 청소년들이 신앙보다는 재미난 세속살이에만 관심을 쏟는 바람에 고민이 적지 않다. 그런 종교판에서 유익과 재미를 동시에 맛보는 마음공부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김 교무다.
원불교의 진리를 나타내는 상징은 일원상이다. 원불교 법당엔 부처님이나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교조)가 아니라 이 둥그런 원을 모셔두고 있다. 이 원의 성품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원만한 것이다. 그래선지 원불교 성직자들은 어느 종교인들보다도 모범생 유형이 많다. 하지만 김 교무의 성격은 일반인들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듯이 원만한 성직자상만이 아니다. 청년들의 형님과 오빠로 통하는 그이지만 때론 “내가 너희를 좋아하는 줄 아느냐? 나 정말 너희 같은 애들 싫다”고 너무도 솔직한 말을 내뱉기도 하고, 교무 방에 온 청년들의 눈물이 쏙 빠지게 하기도 하고, 수련대회가 끝난 뒤 “또 술 퍼마시는 놈들은 턱을 날려버리겠다”고 깡패처럼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성자처럼 자애롭다가도 때론 날선 도끼처럼 시퍼렇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그가 좋단다. 왜 그럴까. 그는 ‘진리’만을 논하기보다는 생생히 살아있는 우리들의 마음과 감정을 발현시키고 소통시킨다. 그래서 청년들은 속내를 꼭꼭 숨기고 애써 달래는 모습이나 의례적인 말을 들었을 때보다 오히려 “턱을 날려버리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젊은이들에게 길러줄 것은 마음의 힘”
안암교당에서 마음공부는 교과서가 아니라 이처럼 삶의 한가운데서 이뤄진다. 김 교무가 교전(경전) 속에 갇힌 마음공부를 삶 속으로 끌어내려고 작정한 것은 교당에 오래 다닌 교도들조차도 정작 괴롭거나 화가 나는 상황에선 교전의 진리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다.
그는 매주 화요일 밤마다 마음공부 모임을 가졌다. 일요일 정규 법회에선 초심자나 평균치에 눈높이를 맞추기 때문에 더 깊숙한 공부를 원하는 사람들은 심화가 되지 않아 따로 마음공부반을 둔 것이다. 삶 속에서 마음의 힘을 기르는 이 공부가 입소문을 타면서 인근 고려대생들을 비롯한 학생들이 하나둘씩 참여하기 시작했고, 처음 이 모임에 참여한 한 한의사의 권유로 한의사만도 10명이 넘는다.
김 교무가 이런 수준급의 공부모임을 정착시킨 것은 청년들의 내심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였다. 말로는 “예쁜 여자나 있다면이야 참여해볼 수 있지만 무슨 마음공부냐?”고 하는 청년들조차도 내면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삶의 진리를 알고 싶은 구도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당엔 의사와 명문대생이 특히 많다. 김 교무는 그들을 통해 소위 ‘공부를 잘하는 이들’이 공부 외엔 별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보았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김 교무는 단박에 “자력심이 없다”고 답했다. 성적 잘 받는 것만 배웠지 ‘홀로 서기’가 안 되고, 일상사가 엉망진창인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성적은 잘 받으면서도 자기 방은 폭탄 맞은 자리처럼 어지럽게 해놓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자력심이 없는 상태에서 공부만 잘해 명문대 의대나 법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자기보다 뛰어난 이들 틈새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도 쉽게 무너져내리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청소년들에게 길러줘야 할 것은 정작 ‘마음의 힘’임을 통감해 왔다. 정신병에 걸리거나 자살에 이른 것은 외부에서 어떤 충격이 왔을 때, 이를 이겨나갈 마음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름없던 교당 마음도량 변신…몰래 장학금도
그는 성직자이지만 ‘신앙’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무조건 신앙으로 극복하라고만 채근할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확한 진단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우울증인지, 충격을 받은 것인지, 본래 심약해서인지 판단이 서서 우울증이라면 빨리 병원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완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의 특정부위를 심하게 움직이는 틱장애아들도 많은데, 이에 대해 이해가 없는 교사들이 무조건 그런 아이들을 뒤에 벌 세우는 식으로 대응함으로써 오히려 병을 키우고 돌이킬 수 없게 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김 교무는 어떤 외부 환경에도 능히 대처할 수 있으려면 마음의 힘뿐 아니라 체력과 신앙의 힘 등 세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본다.
김 교무는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아는 그의 장학금 수여방식은 남다르다. 어려운 학생을 대중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장학금을 주는 방식은 오히려 은혜가 아니라 쪽 팔리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하는 일임을 그는 잘 안다. 그래서 이곳에선 장학금을 내놓는 이도 자기 돈이 누구에게 가는지 묻지 않고, 장학금을 몰래 받는 학생도 누구에게 온 돈인지 모른다. 다만 김 교무는 “훗날 너처럼 어려운 사람에게 되돌려주라”고 말할 뿐이다.
김 교무가 문화재급으로 멋진 교당을 지어보려는 꿈을 접은 것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때문이었다. 교당을 지으려고 마음을 작정하고 보니 돈을 내놓을 만한 사람은 크게 보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소홀하게 여겨지는 마음을 보고서는 그 계획을 백지화해버린 것이다. 그가 청년들에게 내놓고 막말을 해도 서로 웃을 수 있는 것은 그런 마음이 통한 때문일까. 모처럼 이심전심이 화통하게 열린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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