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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육신 부활 마음에 안 들어, 복잡한 사업

등록 2008-12-03 11:53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정양모신부 즉문즉설(2)

영혼 불멸은 성경 신앙이 아니고 그리스 철학

여교우들 너무 얌전, 사제서품 위해 투쟁해야

 

 

 

-마산교구 이제민 신부가 여성의 사제 서품 의사를 피력했다가 교회로부터 경고를 받아았는데, 여성의 사제 서품에 대해 어떤 의견인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시다.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담벽을 허물었다고 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 사이엔 세가지 차별이 있을수 없다고. 유대인과 이방인, 자유인과 노예,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가톨릭에서 인종 차별은 상당히 극복했다. 다인종 마을에서 보면 주일미사에 오는 분들 골고루 다 있다. 인종 차별이 상당히 극복이 됐다. 230년 전에 한국에 가톨릭이 들어올 때 가장 놀라운 것은 양반과 상놈이 동석하더라는 것이었다. 신분차별 없애는 것도 상당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끈질지게 지속되는 게 남녀차별이다.

 

여성 서품 불가 이유가 예수 12제자 중 여자가 없다는 것

 

원천적으로는 예수님도 바오로도 없애야 한다고 했지만, 가톨릭에서 없어지느냐. 주교직, 사제직은 고사하고, 부제직분조차 여자들에게는 허락하지 않는다. 너무 허락하지 않으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스스로 주교로, 사제로 자처한 여성 신부 주교들이 여러명 있다. 10년전 어느 여학생이 ‘언제쯤 여자들의 사제 서품을 허용할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2천년 교회사의 역사를 봐서는 네 시대에도 딸 사대에도 손녀시대에도 가망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300년쯤 뒤에 깨달음이 온 교황님이 올까. 나를 앉히면 5분내에 해결되겠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일 뿐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돌아가시기 10년전 쯤 천주교에 사제 서품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를 쓴 7페이지짜지 공안을 돌렸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예수는 제자 열두명을 발탁했는데 여기에 여자가 없고, 2천년 역사에서 사제는 커녕 부제품을 받은 여자도 없다는 것이었다. 내 대에 바꿀 생각 없고, 앞으로도 바꿀 생각이 없으니 다시는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여교우들은 얌전하다. 캐나다나 미국, 벨기에 네덜란드에선, 그런 지역에 교황님이 가면 시도 때도 없이 이런 문제를 거론한다. 그러나 나는 10세대 안에는 꿈쩍도 안하리라고 본다. 천주교는 덩치가 커 11억명이나 된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도 나오지 않는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묄세’라고 했다. 덩치가 크고 뿌리가 깊으면 그만큼 흔들리지 않는다. 성공회는 7천여만명으로 가톨릭의 20분의1 정도다. 그래서 성공회는 로마보다는 새로운 사조에 적응해 미국에서 여성사제가 먼저 배출되고, 영국에서 서품받은 여성사제가 10년 동안 천명이 넘어섰다.

 

안 고치면 헌금 안 낸다고 하면 제일 무서운 것 아닌가

 

그래서 여자로서 꼭 사제가 되고 싶다면 빨리 성공회로 개종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가톨릭에선 전혀 가망이 없다. 역사에서 저항하거나 투쟁하지 않고 인권을 쟁취한 역사가 없다. 여자들의 권익을 쟁취하려면 여자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안 고치면 헌금 안 낸다는 것이 제일 무서운 것 아닌가.

 

천주교에 몸담고 있으면서 저도 많은 복락을 누렸다. 이미 조상 4대 전에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천주교 때문에 속도 많이 상하고, 번뇌와 고민도 겪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인간 조건이다. 제가 고발하고 고발 당하고, 앞으로도 고발 당할지도 모른다. 개신교로 가면 불교로 가면 시원할 것 같은가. 인간 조건이 있어서 거기는 거기대로 문제가 있을 것이다. 개성의 시대, 민주화 시대로 가고 있는데, 교회는 너무 고루하다. 로마 교황청에 보면 수십명 추기경이 교황님 모시고 어쩌다 기적적으로 50대가 있을 뿐, 70 대 80대에서 90대까지다. 일본인으로 교황청 포교성 장관하신 분은 워낙 연로해 정신 자체가 흐려지고, 업히다시피 해 출근 서류를 읽어볼 수도 없고, 도장을 찍을 힘도 없어서 비서가 손을 얹어 찍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 그토록 연로한 추기경들에게 은퇴하고 편히 쉬라니 90이 넘은 바티칸의 추기경들이 전부 ‘이 목숨 다할때까지 봉사하겠습니다’라며 은퇴를 사양했다. 그러다보니 교황도 교황 선거권도 없는 80살 이상이 당선된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기동력 떨어지고. 무사안일주의에 떨어지고, 세상에 민감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천주교는 좀처럼 변하지않을 것이란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불교 집안에 태어났다면 오대산으로 출가했을지도

 

-왜 사제가 됐는가.

=4대째 천주교 집안이어서 그 분위기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누가 권고한 것도 아닌데 사제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진학할 때 서울 용산 원효로 4가에 있는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내가 만약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오대산으로 출가했을지 모른다. 신학적으로는 성소와 섭리이고, 불교식으로는 인연이다.

 

-도마복음에 관한 신부님에 대한 생각.

=기독교 복음서 4개. 도마복음은 1947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집트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농작물이 자랄 수 있는 곳인 나일강변이다. 강물이 닿는 곳까지만 살고, 나머지는 칼로 자르듯이 사막이다. 나일강 중부지대에 나그함마디란 마을이 있다. 평생 밭을 갈던 지역이다. 청동기시대엔 밭을 깊게 갈지 못했다. 좋은 쟁기가 들어와 1947년 더 깊게 밭을 갈다보니 양피지 문서가 가득 든 항아리를 발견하게 됐다.

 

1,2,3세기 기독교 최대의 적은 영지주의였다. 서기 100년부터 600년 사이 500년간 교부들이 영지주의를 논박하는 논문들이 있었다.영지주의는 밀교다, 자기들 신앙을 노출시키지 않는 비밀결사다. 영지주의 문서 중에 국제적 관심을 끄는 게 도마복음서다. 거기엔 예수님의 일화는 없고, 전부 예수님의 말씀이다. 배경 설명은 일체 없다.

 

예수님의 말씀의 기록은 서기 50년~60년 사이 시리아에서 쓰여졌고, 그것을 마태오와 누가가 베꼈다. 도마복음은 서기 200년경에 쓰여졌을것이다. 영지주의 입장에서 예수님 말씀을 변질시켰을 것이라는 게 통설이다.

 

부활이나 죽음 이후에 대해선 유구무언

 

-최근 다석의 제자 박영호 선생의 <잃어버린 예수>라는 책에서 ‘부활이란 육체가 부활한 게 아니고 깨달음’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책에 보면 깨달음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면 세상사람들의 삶의 의미는 뭔가.

=부활, 죽음 이후에 대해선 유구무언이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예수를 이해하는 데 역사적 예수의 실상을 열심히 천착하면 상당히 접근할 수 있다. 예수의 죽음도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비교해서 유사하게 밝혀낼 수 있다. 공간을 넘어서 편재한 세계, 한계를 넘어서서 무한한 세계가 가물가물하게 보일 수 있다. 부활을 빼놓으면 기독교는 쓰러진다.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박영호 선생은 다석학회 고문이다. 다석의 제자로 또 한 분이 김흥호 목사다. 연세가 90이 돼서 이제는 정신도 희미하다. 박영호 선생님은 나보다 두달 위인데 아직도 정정하다. 모임이 한달에 한번 있는데 꼭 참석해 직제자가 아닌 사람들을 가르쳐준다. 그가 다석 낱말 사전을 편찬 중이다. 앞으로도 3,4년 정도 걸릴 것이다. 지금까지 다석의 직제자가 대여섯명 살아있다. 다석의 사상은 고매하지만 난삽하다. 우리말 철자법도 잘 모른다. 스물여덟자 가지고 표현 못한다고 새 글자를 자꾸 만들었다. 이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읽기도 어렵다. 신조어를 남발했다. 한자도 한학자도 모르는 자기만의 한자를 써서 직제자가 아니면 근접하기 어렵다. 그런데 제자들 가운데  박영호 선생 혼자 독야청청하다.

 

그래서 사전 편찬하는 일을 도맡았다. 사전 편찬하고 나면, 사람들이 다석 글을 해독하려고 머리를 빠갤 것이다. 사전 못 마치면 끝이다. 박영호 편찬 다석 낱말 사전이 될 것이다.

 

정욕 못 다스리고 퀘이커교 수입했다고 함석헌 제자에서 내쳐

 

제자들도 각양각색. 함석헌씨가 수제자고 애제자였는데, 서울 종로2가 세운상가 꼭대기에서 요한 1,2,3서 강의하는 함석헌을 찾아간 다석이 막대기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이놈이 내 수석 제자였지만, 이제 결별한다’고 했다. 다석이 격분한 이유는 첫째는 선생님의 고매한 것을 배우러온 반반한 여자를 건드려 정욕을 못 다스렸고, 둘째는 성당 예배당 갈 것 없이 혼자 믿어라고 했는데, 함석헌이 미국 가서 퀘이커 교도가 되어 수입해왔기 때문이었다.

 

다석의 직제자들은 다석을 구세주처럼 모시기도 한다. 이해 안되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다석 제자들과 식사하는데. 한 분이 우리 선생님은 인류의 4대 성인과 견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말을 듣던 한분이 핏대를 내며 ‘4대 성인과 비겨! 거, 무슨소리. 우리 선생님은 4대 성인보다 한수위야!’라고 소리쳤다. 직제자들 중에선 다석을 종교 창시자로 신봉하기도 한다. 다석은 그렇게 사람을 끄는 흡인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석의 원문이 어렵고 그 분의 글을 쓴 제자들의 글을 봐도 어디가 다석의 말이고 어디가 본인의 해석인지 경계가 없다. 박영호 선생이 다석에 대해 20권 낸 것 가지고, 박사 학위 받은 분들이 많은데 그들은 강의록 원문 정리한 텍스트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애로라고 한다.

 

쓸만큼 쓰면 폐품 처리되는 게 세상 만사

 

박영호 선생은 부활을 깨달아서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한 것으로 본 것 같다. 여러분 대부분이 성경에 심취한 분이다. 그러면 영혼 불멸 신앙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 불멸은 구약·신약 신앙이 아니고, 그리스 철학이다. 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철학이다. 그 신앙에 따르면 육신은 썩고 영혼은 영혼 무궁한 세계로 가는 것이다. 인간 속엔 불멸적 요소가 하나 있다. 그게 영혼이다. 소크라테스는 영혼 불멸 신앙이었다. 영혼이 육신 감옥 속에서 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탈옥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날 독배를 마시는 모습을 봐라. 저녁에 해가 떨어질 때 죽기로 돼 있었는데도 아침나절부터 여자들이 통곡하니, ‘철학을 모르는 여자들 사이에서 죽을 수 없군!’하며 내보내라고 했다. 저녁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점심 먹고 나서 독배를 대령하라고 했다. 독배를 마시고 침대에 누우면서 제자들이 엉엉 우니 ‘영혼불멸 신앙이 제자들에게 안먹혀 들어갔구나’라며 통탄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특질은 유한성이다. 하느님은 무한하고. 영원하다. 그런데 어쩌자고 인간에게서 불멸성이 있다고 주장하게 됐는가. 서기 200년 전부터 순교자들이 ‘저렇게 썩어문들어지겠는가. 하느님께서 살리실 것이다’라는 사상이 있었다.

 

그러나 쓸만큼 쓰면 폐품 처리되는 게 세상 만사 아니냐. 강철로 냉장고 만들어도 수십년 쓰면 그렇게 된다. 내몸도 70여년 써왔다. 결국에 가면 내 몸도 폐품 처리되는 것이다. 이것을 되살려야 될 건덕지가 어디 있느냐.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영감 시절 있는데 부활하면 어느 시절로 되살리는가. 장애인들은 다시 장애인으로 재생되는 것인가. 인간 세포는 4년마다 99%가 아니고 100%가 바뀐다고 한다. 어느 세포를 거두어서 조립할 것인가. 사업도 너무 복잡한 사업이다.

 

육체로 살다가 영체로 변하는 것

 

영원 불멸 ,육신 부활 다 마음에 안 든다. 예수님은 육체를 지니고 계시던 분이다. 육체를 다해 하느님이 거두어가실 때 이승을 살면서 사람됨, 인간성을 거둬간 것이다. 그래서 신령한 영체로 재생이 되는 것이다. 내경우도 육체로 살다가 영체로 변하는 것이다. 애벌레가 나비처럼 변해 하느님 동산을 나는 것이다. ‘내가 잘못 살아서 이 꼴로 어떻게 하느님께 다가가는가’라는 게 심판이고 연옥이다.

 

해석학적 성찰을 하면 그렇게 된다. 최근엔 미국에서 임종환자들만 돌봐온 스위스 여의사 퀴블러스의 책이 널리 읽히고 있다. 미국의 환자들 가운데도 의학적으로는 죽었다고 판정 내렸는데 몇시간 후에 소생한 이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숨이 넘어갈 때부터는 새까맣더냐’, ‘어떻더’냐’고 물었다. 그러면 예외없이 저승 체험이 있다. 보통은 친구 가운데 가까운 사람,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놀랍게도 수호천사가 마중 나오더라. 정교회 신도들과 가톨릭 신자들에겐 성모 마리아가 나오기도 한다. 퀼블러 노스가 임종환자들 병상일지를 보면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례 5천건을 분석해봤는데, 개신교 신자들에겐 성모님이 마중 나온 사례가 한 건이 없었다. 개신교 신자들은 괜히 성모 마리아를 욕하는데, 아마도 성모님이 정나미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

 

-4대 성인에 대한 우상화는 문제 아닌가.

=하느님도 비밀스럽고 신비라고 하잖은가.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님의 신성이 정해졌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얼마나 높았으면 그랬겠는가. 불교 경우에도 석가모니도 인간이지만 부처로, 화신불로 추대하는 것은 존경심과 사랑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중국 곡부에 가보면 공자님의 묘비는 초라하지만 대성(대성인), 지성(지극히 거룩한 분), 문화를 선양한 임금님이라고 칭송해 놓았다. 하느님, 진여, 공의 세계를 알려준 어른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은 동서를 막론하고 다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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