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 스님이 지난 4월 27일 어머니와 함께 찍은 영화 <불효자> 시사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우리에게 어머니란 어떤 존재일까. 신이 모든 가정에 갈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는 속담이 있다. 글자를 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출가의 길을 간 수도자들에게 어머니는 더욱 아픈 이름이다.
스님과 어머니가 주연을 한 영화 <불(佛)효자>(최진규 감독)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공개됐다. 불교계의 대표적인 명상가이면서, 유머를 섞은 활달한 법문으로 유명한 자비명상 대표 마가(62) 스님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출연한 영화다. 지난달 27일 서울 장충동 동국대 중강당에서 열린 시사회에서도 스님의 활달한 모습은 여전했다.
모자 주연한 영화 ‘불(佛)효자’ 시사회
출가 40년만에 고향 고흥 찾아가 ‘동행’
마곡사·봉정사·선암사 등 7대사찰 순방
부처님오신날·어버이날 8일 전국 개봉
“부친 딴살림에도 자비로웠던 어머니”
은혜 갚고자 ‘박종순장학회’ 만들기로
영화 <불효자>에 등장하는 모친 박종순(왼쪽)씨와 마가 스님. 자비명상 제공
영화는 어머니의 편지 한 통을 받고 40년 만에 전남 고흥의 속가로 찾아가 어머니를 뵙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흔살이 넘어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등에 업고 유네스코 7대 사찰인 공주 마곡사·보은 법주사·영주 부석사·안동 봉정사·순천 선암사·해남 대흥사·양산 통도사 등 전국의 사찰을 도는 ‘마지막 여행길’에서도 예순이 넘은 아들 마가 스님의 장난기는 멈추지 않았다. 시종일관 개구쟁이 같은 스님의 모습에 관객들은 많이 웃었다. 그러나 마침내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마가 스님의 어머니 박종순씨는 <불효자>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지난 4월3일 93살로 열반에 들어 장례식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되었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문제를 풀어주고 가신 듯하다.”
영화 <불효자>에서 어머니를 업고 있는 마가 스님. 자비명상 제공
영화 <불효자>에서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사찰 경내를 돌고 있는 마가 스님. 자비명상 제공
마가 스님은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하지만 부친은 그의 곁에 없었다. 부친은 고향인 전남 고흥에 가족을 버려두고 광주에서 다른 여자와 딴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스님이 광주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어머니는 그를 부친에게 보냈다. 그는 죽기보다 싫었던 ‘딴 집’에서 지내며 어린 가슴에 깊은 멍울이 졌다. 마음 둘 데 없던 청춘기를 신에게 의존하며 버텨내면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하려던 그는 스무살 때 부친에게 ‘지울 수 없는 한’을 남겨주기 위해 죽음을 시도했다. 강원도 오대산 눈밭에 쓰러져 있던 그는 한 스님에게 발견돼 사흘 만에 깨어났고, 이를 인연으로 출가했다. 그뒤 처절한 수행 과정에서 일주일간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 그는 훗날 팔순이 넘어서야 본가로 돌아온 아버지를 자신의 절에서 1년간 모시기도 했다.
“한평생 아버지는 어머니를 힘들게 했지만, 어머니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홀로 키우는 자식들이 버릇없다고 타박이라도 들을까봐, 우리가 깊이 잠든 밤에야 흐트러질까 동여매었던 마음을 풀고, 몰래 안아 뽀뽀를 해주었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지구별 마지막 여행을 하며 그런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불교 승려들이나 가톨릭 신부들의 가정은 사랑하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제는 성속의 경계가 낮아져 출가자들도 가족들과 좀 더 자유롭게 지내지만 불과 30~40년까지만 해도 절집 출가자가 가족을 자주 만나거나 속가에 드나드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니 견우직녀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가슴으로 울면서 고맙다며, 마가 스님의 손을 잡아준 ‘불 효자’ 스님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도 속가 가족들과 떨어져 수행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속가 가족들이 오고 가는 것에 그다지 매이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감)하듯 부모님과 고향으로 향해도 된다. 가족들과 얽힌 내면의 상처를 해소하지 못하고 승복 속에 덮어두면 껍데기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면의 응어리를 철저히 풀고 증오를 감사로 바꾸면 형식과 권위와 체면의 틀을 깨고 자유로울 수 있다. 나도 너무 멀리 찾아다녔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은 가장 가까운 곳에 계셨다. 어머니였다.”
마가 스님의 어머니는 염불을 하면서 잠자듯 편안하게 떠났다고 한다. 개인적인 고난 가운데도 자비심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 장례식을 마친 뒤 마가 스님의 누나와 형은 부의금을 부처님께 바치겠다며 그에게 맡겼고, 스님은 어머니의 이름을 딴 ‘박종순장학회’를 만들어 더 큰 어머니인 세상의 은혜에 보답하기로 했다.
마가 스님은 아픈 가족사를 담아 자비명상가답게 말했다. “‘미안해요’라는 한마디에 과거에 얽힌 문제가 풀어지고, ‘고마워요’라는 한마디에 현재의 문제가 풀어지고, ‘사랑해요’라는 한마디에 미래의 문제가 풀어진다.”
<불효자>는 ‘부처님 오신 날’이자 ‘어버이날’인 8일 전국 상영회를 한다. 서울과 수원, 대전, 청주, 전주와 대구, 광주, 울산, 창원과 부산, 춘천, 제주 등 12개 도시 씨지브이(CGV)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