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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200만 다문화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온정’ 나눠요”

등록 2021-12-14 18:47수정 2021-12-15 02:30

[짬] 원불교 김대선 교무

한국종교인연대 상임대표 김대선 교무가 지난 8일 서울 당산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가난해도 나누며 사는 보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현 기자
한국종교인연대 상임대표 김대선 교무가 지난 8일 서울 당산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가난해도 나누며 사는 보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현 기자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 추위는 더욱 가혹하다. 따스한 온정을 나누는 것은 부자들만의 특권일까. 가진 게 없어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가 바로 원불교 김대선(68) 교무다. 김 교무는 7대 종단 모임인 한국종교인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또한 한국생명운동연대, 생명존중시민회의 공동대표로서 자살 예방과 사형제 폐지에 앞장서온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열정을 쏟는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소외된 다문화인들이다. 지난 8일 서울 당산동 원다문화센터에서 김 교무를 만났다.

부모 이어 두 아들도 교무로 ‘3대 신심’
종교인연대·생명운동연대 등 대표 활동
15일 ‘갈등 해법’ 주제로 토론회 개최

인천 함박마을 ‘원고려인문화원’ 마련
기숙형 북향민공동체 ‘금강학교’ 지원
“의지할 데 없는 이들에게 이웃되고자”

아파트 상가 4층 대여섯평의 사무실이 김 교무의 나홀로 아지트다. 그를 보조해줄 직원도 없다. 거대 종단의 뒷받침도, 독지가의 후원도 별로 없는 종교인의 소박한 공간이지만, 생각은 넓고 크다. 지난 2월 한국종교인연대 상임대표를 맡은 이후 기후위기, 한반도 평화, 미래사회의 종교 등을 주제로 5차례의 평화포럼과 11차례의 생명운동포럼도 이곳에서 기획했다. 15일에도 ‘갈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하지만 거대담론의 시선은 곧 가장 작고 낮은 자들에게로 향한다.

“국내 다문화인이 200만명에 육박해요. 언어장벽을 극복하고 정착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들에겐 의지할 만한 이웃이 별로 없어요.”

그가 이웃이 되기 위해 자주 가는 곳은 고려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 함박마을이다. 보증금 없이 월세로 거주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고려인들이 수천명 모여 산다.

“요즘은 한 방에 형제자매들 여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모습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함박마을 고려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대부분의 자녀가 초등학생들인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요.”

그래서 김 교무는 지난해 6월 원불교여성회와 함께 고려인들과 힘을 합쳐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70만원을 내는 조건으로 100㎡(30평) 규모의 ‘원고려인문화원’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에게 한국어, 러시아어, 영어, 수학 등을 가르치며 돌봄 기능도 한다.

김 교무는 서울 개봉동 금강학교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금강학교는 기숙형 북향민공동체다. 다른 지역으로 몇개월씩 돈을 벌러 간 부모의 자녀들이 기숙하는 곳이다. 그는 “역시 북향민으로 남한에 연고가 전혀 없는데도 수십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주명화 교장을 보면, 종교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8일 나눔국민운동본부의 나눔축제 행사장에서 나눔 선물 상자를 꾸리는 봉사활동 중인 김대선 교무. 원다문화센터 제공
지난 8일 나눔국민운동본부의 나눔축제 행사장에서 나눔 선물 상자를 꾸리는 봉사활동 중인 김대선 교무. 원다문화센터 제공

김 교무는 다른 교단이나 큰 자선단체처럼 풍족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교단 내에서 교무를 맡을 때도 월 100만원이 최고 용금(월급)이었고, 7년 전 원다문화센터를 열면서부터는 그마저도 없이 쥐꼬리만한 국민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난할수록 콩 한쪽이라도 나눠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큰 교단의 나눔 행사에 봉사 활동을 하러 가서 얻어온 김치와 쌀을 금강학교와 원고려인문화원에 가져다 줄 때가 가장 신난다.

막장에 내몰린 다문화인들이 어찌어찌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오기도 한다. 2년 전엔 서울 외곽 길거리에서 유사석유를 팔다 경찰에 잡혀간 북향민이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리 다툼을 벌이던 외국인이 조직폭력배라고 경찰에 고발해 동료 2명이 구치소에 갇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말에 외면할 수 없었던 김 교무는 원불교 교도 변호사를 찾아가 무료 변론을 부탁했다. 그들은 2년 넘는 재판 끝에 다행히 무혐의로 석방됐다. 최근엔 재중동포가 건설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다쳤는데, 여권 만기가 며칠밖에 남지 않아 치료도 보상도 받기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안산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안산의 지인들을 수소문해 행정사를 소개받아 여권을 한달간 연장하고, 병원도 안내해줬다.

그는 그나마 지금은 나아진 편이라고 했다. 그는 원불교 중앙총부 문화사회부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불교, 개신교, 가톨릭과 더불어 처음으로 원불교 참여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교무들의 기도 장면이 방송된 뒤 한 교무가 ‘은행에 갈 때마다 아주머니라고 부르던 은행원이 처음으로 교무님이라고 불러줬다’고 한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던지….”

그의 두 아들 동원(36)·동국(35)씨도 원불교 교무로 출가했다. 아버지를 보고 물질적 풍요보다 더 소중한 삶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 자식들의 결단이었다. 김 교무의 부모가 교조인 박종빈 대종사와 인연으로 입교한 데 이어 3대가 신심을 이어가게 된 셈이다.

김 교무는 원불교 교전의 많은 글귀 중에서도 ‘처처불상 사사불공’(곳곳이 부처님, 일마다 불공)을 늘 새긴다고 했다. “나눔국민운동본부에서 여는 나눔축제에서 사랑의 선물 상자를 쌓는 봉사를 하기로 했다”는 그는 고려인과 북향민들에게 선물 상자를 가져다줄 생각에 상기된 표정으로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 길을 나섰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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