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해묵은 신학논쟁 재점화…‘WCC 총회’ 쿠오바디스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기독교의 유엔’ 부산총회 9개월 앞
다원주의 배격·반공주의 등 4개항
준비위쪽-‘보수’ 한기총 공동선언
“교회일치 정신 버리고 암흑기 회귀
분단 치유 등 시대적 과제 논의 찬물”
기장·신학교수·단체 등 비판 잇따라*쿠오바디스 : <어디로 가시나이까>
지난 13일 공동선언을 한 김영주 총무, 김삼환 목사,길자연 목사, 홍재철 목사(왼쪽부터) 사진 WCC부산총회 준비위
‘기독교의 유엔’이라는 세계기독교회협의회(WCC·세교협) 총회를 앞둔 한국교회에서 돌발적 사건으로 인해 신학적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세반협 10차 총회는 오는 10월30일부터 11월8일까지 부산에서 전 세계 기독교회 지도자와 신학자 등 7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사건은 ‘부산총회 한국준비위원회’(준비위) 상임대회장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교회협) 김영주 총무가 지난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전·현 대표회장인 길자연·홍재철 목사와 함께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 비롯됐다.이들은 △종교다원주의 배격 △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애 등 반대 △개종 및 전도 금지주의 반대 △성경 66권의 무오류성 인정 등 4개항을 담았다. 이 내용을 전제로 해 보수 쪽이 세교협 총회 개최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준비위는 보수 쪽이 세계적 행사에 재를 뿌리려는 것을 막고 행사에 동참하게 했다고 자위했으나, 이 선언이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정신을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WCC회원교단 간담회에서 공동선언을 성토하는 목사들. 사진 조현
교회협은 기장·통합·감리회·성공회 등 세교협에 가입된 4개 교단이 주축을 이룬 협의체다. 지난 17일 열린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선 세교협에 가입하지도 않은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무런 협의 절차도 없이, 에큐메니컬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선언에 동참한 김영주 총무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는 이 선언을 “쓰레기”라고 했고, 배태진 기장 총무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세교협 준비위와 교회협 관련 직책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무가 눈물로 사죄하고, 교회협 의장 김근상 (성공회) 주교 등 의장단이 “협의회에서 그 선언을 논의한 적도 허락한 적도 없어 폐기란 말을 쓸 가치조차 없다”고 밝혔지만 비난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감신대 교수들, 한신대 교수들,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들, 에큐메니컬기독여성, 한국문화신학회, 기장 생명선교연대 등 각 단체와 교수들의 비판 성명도 이어졌다.
한국기독교협의회 회장 김근상 성공회 주교가 가맹 교단장들과 함께 공동선언 사태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조현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는 “공동선언문이 ‘복음에 반하는 사상’으로 간단히 정죄해버린 사안들은 앞으로 인류가 공동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성찰할 주제들”이라며 “세교협을 여는 목적은 이런 주제들을 함께 의논하자는 것인데 소수의 편협한 시각으로 소통을 차단하는 배타적·자기중심적 선언은 21세기 인류 보편의 지성과 함께 할 수 없는 반지성적 주장들”이라고 꼬집었다.기장 생명선교연대는 “타종교에 대한 배려를 다원주의라고 한다면 절간에 들어가 땅 밟기를 하고 불상 목을 잘라야 하느냐,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면 사회주의권 내 정교회도 반대하는 것인가, 개종 전도 금지는 개신교·가톨릭·정교회가 교인 뺏기를 하지 말자는 것인데 교인의 수평이동을 계속하자는 것인가, 성경무오설 주장자들은 성서를 들어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데 기독교를 암흑기로 돌리자는 것이냐”고 물었다. 성서무오설을 어겼다는 데 대한 정죄가 발단이 돼 설립된 기장 쪽에선 “또 한 번의 교단 살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WCC부산총회 점검차 방한한 울라프 픽스 트베이트 WCC총무(왼쪽)과 WCC준비위원회위원장인게나디오스 그리스정교회 추기경이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부산총회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 조현
이와 관련해 2월 4일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에큐메니컬 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인 생명평화마당 집행위원장 김영철 박사(통합 소속)는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신자들에겐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는 못하지만 학문적으로 폐기된 지 오래인 성서무오설을 고집해야 한다면 신학대학교 커리큘럼의 70~80%도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며 “그동안 세계교회는 발전했는데 한국교회는 ‘합동’과 ‘통합’이 분열된 1959년의 신학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부산총회 준비를 위해 내한한 울라프 픽쉐 트베이트 세교협 총무는 29일 기자회견에서 “세교협과 관계없이 발표된 이번 공동선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전제하고 “부산총회는 세계교회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가고, 분단된 한반도의 분열과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화해의 사도적 사명을 감당할 것인지 등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한국교회에서 오랫동안 곪았던 신학적 화농이 터짐으로써 부산총회의 신학적 논의가 9개월 앞서 시작된 셈이다.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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