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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델피신전의 무녀, 황홀경의 비밀은

등록 2012-07-04 20:04

 

    <1> 이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그리스정교회수도원공화국 아토스산     <2> 그리스신화 12신은 어디로 갔나-신들의 고향 올림포스산     <3>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하늘에 걸린 수도처, 메테오라    <5>엘리트들이 우리를 지켜주는가-전사들의 고향, 스파르타   <6>인간은 무엇으로 위대해지는가-소크라테스의 아테네    <7>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에개해의 섬들   <8>왜 속고 살까-트로이의 목마        <4>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우주의 배꼽, 델피 신전

   소크라테스도 “무녀의 광기는 하늘이 내린 축복”   무녀의 방의 비밀은 땅밑에서 올라온 ‘환각가스’?

델피로 올라가는 길에서 보이는 설산/ 사진 조현

델피마을과 올리브숲과 바다 저 건너는 펠레폰네소스반도. /사진 조현

안개에 싸인 페르나소스산 /  사진 조현

페르나소스산 동쪽 기슭의 아폴론신전터/   사진 조현

 우리가 한 달 뒤, 또는 1년 뒤의 삶과 운명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미래만 안다면 불운을 피하고, 복만 챙길 수 있을까. 운동경기와 선거의 승패도 뒤집고, 주가를 예측해 떼돈도 벌 수 있을까. 그런 예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고의 예언능력’을 지녔다는 아폴론신을 대신한 무녀 파티아가 미래로 가는 비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 파티아는 지금의 교황이나 달라이 라마 못지 않은 명성을 누렸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영향력 측면에선 이들을 훨씬 능가했다.

  세상의 중심인 우주의 배꼽이라고 믿는 곳에 자리 잡아  파티아는 그리스인들이 ‘세상의 중심인 우주의 배꼽’이라고 믿는 옴팔로스가 있는 페르나소스산 동쪽 기슭 델피의 아폴론신전에 머물렀다. 아테네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170km 지점. 펠레폰네소스반도와 본토를 가르는 바다를 지나 설산의 손짓을 따라 델피의 고원으로 오른다. 바다에서 델피까지는 시야가 아득해질 만큼 드넓은 올리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올리브는 지중해 세계인들에게 생명수다. 영어로 그 이름을 풀이해봐도 ‘올(all)+리브(live)’로 ‘모두를 살리는’ 생명수가 될만하다. 그러나 너와 내가, 내 나라와 네 나라가 공존하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금은보화를 싸들고, 이 고원을 올랐을 리는 만무하다. 나와 내 쪽이 승리하리란 신탁을 얻으려 이 길을 달렸을 이들에게 ‘올리브’가 보였을 리 만무하다.

 고즈넉한 산간마을 델피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아폴론신전 터가 있는 험준한 산이 위태롭게 서있다. 90도 이상의 직각 경사로에 바위들이 불규칙하게 얹혀 있어서 금방 거대한 바위가 길 아래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폴론이 이곳에 살던 괴물 여신 피톤을 죽인 뒤 아폴론을 숭배하는 성소가 되었단다. 과연 괴물이 살 만한 협곡이다.

 많이 허물어지긴 했지만, 2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뚝 서 있는 신전의 기둥과 극장 터가 옛 위용을 말해준다. 신전 터 입구에 팽이모양으로 1미터가량 높이의 옴팔로스가 있다. 이 보잘 것 없는 것이 지구의 배꼽이라니. 하지만 그리스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아폴론신전의 기둥과 신전터/  사진 조현

아직도 우뚝 서 있는 아폴론신전의 기둥/  사진 조현

신전터에 있는 우주의 배꼽 옴파로스/  사진 조현

춤을 추면서 황홀상태에 빠져드는 무녀 파티아/  사진 영화 <300>에서

 실제 이곳 무녀의 말 한마디는 그리스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다. 아테네가 페르시아 대군과 맞설 때도,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이 300명의 전사를 이끌고 텔레오필레 계곡으로 나가기 앞서서도,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침략에 나서기 전에도, 이곳에서 아폴로 신에게 자신들의 명운을 먼저 물었다. 무녀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을 놓고 해석하며 각 나라는 전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할지, 신의 뜻은 과연 무엇인지를 놓고 살 방도를 마련하곤 했다.

 그처럼 무녀와 델피는 그리스의 운명에도 너무 중요한 구실을 했기에 기원전 6세기 무렵엔 그리스의 열두 도시가 인보동맹을 맺어 스물네 명의 대표단을 구성해 신전을 관리했을 정도였다. 인보동맹은 신전이 무너지면 재건사업을 했는데, 이집트 왕인 아마시스도 막대한 기부금을 낼 정도로 델피의 영적 영향력은 대단했다.   일곱 개의 신탁 실험 끝에 최고로 꼽은 파티아 예언 믿다가 멸망 자초  이 무녀의 영적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가 리디아왕국의 크로이소스의 실험이다. 기원전 560년 경부터 서부 아나톨리아(현대 터키에서 보스ㅡ포러스 해협의 서쪽인 유럽 대부분을 뺀 지역)의 리디아왕국을 지배한 크로이소스왕은 지중해 세계의 여러 신전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게 ‘점을 치는’(신탁) 곳이 어디인지 알아낼 시험을 시작했다. 크로이소스는 가장 신뢰할 만한 곳 7곳을 꼽았다.

 세 곳은 아폴론 신탁이었다. 다른 두 곳은 제우스 신탁. 또 하나는 리비아 사막의 오아시시인 시와에 있는 아몬의 신탁, 에게해 해안선에 있는 디디마 신탁, 또 델피 인근의 레바데아에 있는 트로포니우스동굴 등이었다.

 크로이소스 왕은 사절들에게 100일 동안 이 일곱 개의 신탁으로 찾아가 특정한 날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을 하게 했다. 사절들이 답변을 듣고 왔을 때, 왕은 델피 신탁이 가장 정확히 맞췄으며, 암피아라우스가 큰 격차로 2위에 머물렀다고 선언했다.

 헤로도투스가 인용한 피티아의 답변은 이렇다. “나는 해변의 모래알을 세어 바다를 측량한다. 나는 벙어리의 말을 이해하며 벙어리의 말을 듣는다. 솥과 뚜껑이 모두 청동으로 만들어진 냄비 속에서 등딱지가 단단한 거북이가 양의 살코기와 함께 부글부글 거품을 일으키며 끓고 있는 냄새가 난다.”

 크로이소스왕이 택일한 날 양고기와 거북이의 찜 요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왕답지 않다. 그러나 왕은 바로 그날, 정확히 피타아가 묘사한대로 그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왕은 감격한 나머지 금괴 117개, 금으로 만들어진 사자상, 거대한 금과 은 그릇, 황금조각상, 은으로 만들어진 통들, 정한수를 뿌리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장치, 왕비의 목걸이 등 많은 선물을 델피에 보냈다고 전한다. 선물을 보낸 뒤 크로이소스왕은 ‘페르시아를 공격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파티아는 가장 유명한 답을 했다. “그가 만약 페르시아로 진격한다면 강력한 제국 하나를 멸망시킬 것이다.” 그러나 왕은 페르시아를 공격하고 철저히 패배해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이 예언에 대해 헤로두투스는 “파티아는 ‘왕이 페르시아를 진격할 경우 자신의 제국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한 말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파티아를 옹호했다.    델피 신탁이야말로 소크라테스 철학의 실제적 출발점  하긴 그리스 최고의 현인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조차 파티아를 옹호했으니 말해 무엇할까.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서 델피신탁에 대해 “가장 큰 축복은 광기를 통해서, 하늘이 내린 진정한 광기를 통해서 온다”고 했다.

 “광기란 하늘이 내린 특별한 재능이며, 인간 세상에서 가장 소망되는 재능일세. 왜냐하면 예언 능력도 일종의 광기이며, 델포이 신전의 무녀는 광기에 젖어 있을 때는 공사를 가리지 않고 그리스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지만, 그들이 정상적인 상태일 때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세. 아니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세. 광기가 그 고귀함과 완전함에 있어 정상적 상태의 정신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고대인은 입증하고 있네. 정상적 상태의 정신은 단지 인간의 능력일 뿐이지만, 광기는 신이 내린 능력이기 때문일세.”

황홀상태의 무녀 파티아 / 사진 영화 <300>에서

 

아폴론신전에서 800여미터 떨어진 아테나 신전/  사진  조현

 플라톤도 이렇게 신탁 무녀의 우상화에 깃발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객관자적인 입장에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델피 신탁이야말로 소크라테스 철학의 실제적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심취한 한 제자가 델피에 와 무녀에게 “이 세상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무녀는 “없다”라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소크라테스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그리스세계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현자들을 찾아다니며 과연 그들이 자신보다 현명하지 않은지 탐구의 길을 떠났다. 

 델피 신탁 무녀는 소크라테스의 철학 기행의 출발점이자, 소크라테스에게 지상 최고의 찬사를 증언해준 공로자인 것이다. 플라톤은 말할 것도 없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절대적인 추종자다. 그러므로 스승을 그처럼 찬양했고, 공인해준 무녀의 능력을 파기했을 리 없는 셈이다.

 그런데 과연 무녀의 예언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19세기부터 신전을 발굴한 과학자들은 파티아가 머물렀던 방인 ‘아티톤’과 그곳에 놓여있던 옴팔로스를 주목했다. 그리고 이 일대를 세심히 조사해 단층과 지형을 수십 년간 분석한 결과 당시 무녀가 지층에서 올라오는 증기를 흡입했는데, 이 증기는 가스층에서 올라와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에틸렌 성분을 지녔다고 보고했다. 땅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아폴론의 ‘신비한 성령’이 실은 환각가스였다는 것이다. 환각가스를 마신 파티아가 지중해 세계에서 권력자들과 국가의 운명을 점치고 걸정했다면 ‘이성’의 출발지라는 그리스 세계에 대한 판단도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꾸벅꾸벅 졸다 깨니 동양 최고의 백발백중 점쟁이 일화가 생생  경사진 신전 터를 지나 거친 숨을 몰아쉬고 중턱으로 가니 옛 경기장이 나온다.  기원전 586년부터 4대 범그리스 경기 중 하나인 피티아 경기가 열린 장소다. 이곳에선 4년마다 모든 그리스 세계에서 온 운동선수들이 실력을 겨루었다. 경기의 승자는, 피톤의 살해를 재현했던 소년이 템피 계곡의 월계수를 잘라와 그 월계관을 쓰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경기장에서 내려올 때쯤 비가 흩뿌린다. 관람객들이 급히 아래쪽으로 내려가 박물관으로 들어가 비를 피한다. 하지만 아폴로신전 옆 자그만 홈에 앉아 졸았다. 옛날과 같은 가스는 나오지 않지만 졸음을 환각제로 삼아 여사제의 춤사위 속으로 들어가본다.

 ‘여사제의 가슴이 오르내린다. 그녀가 신음하며 흐느끼는 동안 신이 그녀에게 깊숙이 들어가 다른 모든 생각을 절멸시켜 미래의 통찰력을 스며들게 한다. 신의 황홀경에 사로잡힌 그녀는 인간의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고양된다. 모든 시간과 공간과 하나가 된다. 그렇게 영원한 진리를 흘끗 보고 돌아와 인간의 의심을 풀어준다.’

 서정시인 핀다로스는 델피의 공덕을 기리는 10여 편의 시를 써서 델피의 무녀가 어떻게 아폴로와 무아경의 합일상태로 들어가 예언을 하는지 썼다. 비를 피해 앉아 조는 비몽사몽간에 30여 분이 지났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그치더니, 축복 같은 햇살이 쏟아지며 정신은 안개가 걷힌 듯 맑아진다. 그러자 선사의 일화가 생생히 떠오른다.

부활절을 앞두고 퍼레이드를 벌이는 델피 사람들/ 사진 조현

델피의 기로스 피타 구이집/ 사진 조현

아폴로신전 야외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고 그 옆 박물관 안에 있는 진품 옴파로스/사진 조현

 동양에서 점을 최고로 잘 쳐 백발백중으로 파티아 못지않은 명성을 얻은 점쟁이가 있었다. 선사는 점쟁이를 불렀다. 점쟁이가 오자 선사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점쟁이는 “방에 있다”고 답했다. 이어 선사는 문지방을 넘어 마루로 나와선 “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점쟁이는 “문 밖에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엔 선사가 문지방에 서서 한쪽 발은 방으로, 한쪽 발은 밖으로 내놓은 상태에서 “내가 문 밖으로 갈 것인지, 문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예언하라고 했다. 만약 점쟁이가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선사는 밖으로 나가고, ‘밖으로 나간다’고 하면 안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점쟁이의 말문이 막혔다.   명성을 얻는 길 물은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에게 “당신 천성대로 살아라”  신전의 옴파로스를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델피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기로스 피타집이다. 우리 돈 3천~4천원 정도로 싸면서도 눈물나게 맛있는 집이다. 비가 올 때는 비를 피할 곳이 나의 중심이더니, 배 고플 때는 이 집이 나의 중심이다. 나를 떠난 중심은 없다. 

 그런데 어디에서 중심을 찾고, 어디에서 내 운명을 구할 것인가. 그렇지만 환각에 취한 신녀에게서 나온 신탁 중에서도 한 마디만은 잘 새겨듣고 싶다.

 로마의 웅변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기원전 106~43)가 파티아를 만나 “어떻게 하면 큰 명성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자 신녀가 모처럼 지금도 귀에 담을만한 신탁을 해주었다.

 “당신 천성대로 살아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려서는 안된다.”

 델피/조현 종교전문기자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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