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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뉴스

황금을 버린 재벌가의 후계자

등록 2011-11-24 03:52

[유럽영성순례서 본 가톨릭 힘의 뿌리] 1.버림: 탐욕의 전차에 맞선 자발적 가난 2.공동체: 함께 먹고 기도하고 일한다 3.순교: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믿음 4.기적: 신앙의 불꽃을 피우는 신비 5.순명: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 2천년간 끊어지지 않고 단일한 맥을 이어온 종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발간한 <2011년 연감>에 따르면 세계 가톨릭 신자수는 2009년말 기준 11억6500여만명이다. 세계인구의 17.4%다. 이슬람이 약 15억, 개신교도 8~9억, 불교 4억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가톨릭 외 다른 종교는 수많은 종단으로 나눠져 있다. 반면 가톨릭은 바티칸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정치·군사의 최강국인 미국과 함께 가톨릭은 지구의 ‘양대 슈퍼 파워’로 불리기도 한다. 가톨릭은 종교적 광기가 합리적 이성을 구속했던 암흑기와 부패의 시대, 종교개혁을 통한 교회 분리 등의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계몽주의와 민주주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아성을 더욱 더 굳건하게 하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국가톨릭주교회의가 14~24일 진행한 유럽영성순례에 함께하며 그 비밀을 엿본다. 이 시리즈엔 사제와 평신도의 계급을 넘어선 초종파적 경향의 포콜라레운동 등 새로운 흐름은 포함되지 않았다. 주교회의의 순례 여정이 전통을 고수하는 수도원 등에 초점을 맞춘만큼 가톨릭 전통의 힘에 초점을 맞췄다.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 이탈리아 아시시 지방 토굴같은 거처 등에서 ‘무소유 삶’ 흔적 오롯이 그의 유해 안치된 곳은 ‘천국의 언덕’이라 불려 

욕망을 타고 달리는 자본주의 전차가 전복될 수 있다는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이탈리아다. 지난 21일 로마에서 차로 2~3시간 떨어진 목가적인 지방 아시시로 향했다. ‘제2의 예수’라고 불릴 정도로, 성자 중의 성자로 꼽히는 프란치스코(1182~1226)가 태어나고 죽은 곳이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어린시절을 보낸 프란치스코는 스무살 때 기사가 되기 위해 전쟁에 나가지만 포로가 되고 만다. 1년동안 포로로 잡혀있다가 풀려나 병을 앓고난 뒤 회심한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무소유의 탁발승이 된다.

성문 입구에서 10여분 가량 걸으니 프란치스코가 모든 것을 버린 광장이 나온다. 회심한 뒤 한센병 환자들과 걸인들에게 집안의 금전과 옷감을 퍼내준 아들의 배은망덕함을 주교에게 고발하는 부친 앞에서 프란치스코가 입고 있던 옷까지 실오라기 하나 남김없이 벗어버리고, 빈 손으로 태어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곳이다. 모두가 더 가지려고 안달하는 세상에서, 그가 모든 것을 벗어버리자 주교가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망토로 프란치스코를 가려주었던 현장이다.

그러나 그 망토는 이미 모든 걸 버려버린 프란치스코의 ‘무소유’를 가릴 수 없었다. 그의 모습에 부모와 주교와 귀족들은 괴로워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의지했다. 그는 광장 인근 다미아노성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하던 중 “프란치스코야, 쓰러져가는 나의 집을 수리하여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는 처음엔 말 그대로 건물을 복구하라는 뜻으로 알았으나 나중에 쓰러져가는 집이 무엇이고, 수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제비뽑기를 통해 복음서를 세번 펼쳐보았다.

이렇게 해서 뽑힌 세 구절이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서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9장21절) △여행 중에 아무것도 지니고 다니지 말라(루가복음 9장3절) △나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6장24절) 였다.

프란치스코는 이 구절대로 세상적 욕망을 포기하고 가장 가난하고 약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누더기만을 걸치고 맨발로 다니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광장 부근엔 말구유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의 생가터가 있다. 그의 어머니가 산통이 심해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기도하라는 사제의 말을 듣고 말 구유로 가 기도하던 중 프란치스코를 순산했다는 곳이다.

그가 머물던 ‘천사들의성모마리아대성당’의 토굴같은 거처와 ‘가장 작은 자’를 뜻하는 포르치운쿨라성당이 그의 겸손한 삶을 말해준다.    
   

현대인들에겐 절망의 상징이 되어버린 가난이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일까.  프란치스코의 삶을 따라살겠다고 51년 전 수도회에 들어온 구알 티에로(67) 수사는 “바깥 사람들은 이 세상은 잠깐 지나는 순례의 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잃어버리곤 한다. 재산같은 소유는 잠시뿐 영원한 행복은 소유 너머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의 삶에서 단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구알 수사의 동료로 새성당수도회의 원장인 프란치스코 데 라자리(68) 신부는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따랐다”며 “성경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성경 말씀 그대로 살았다”고 프란치스코를 기렸다.

프란치스코는 생전에 사제서품도 받지 못한 채 겨우 부제품만을 받았지만 이미 빛나는 성덕으로 인해 생전부터 세상의 빛이 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고을에서 사형수들의 처형장이던 서쪽 ‘죽음의 언덕’에  묻히기를 원했다. 아시시 사람들이 죽어서도 가기를 원치않던 곳을 그만은 원했다. 서쪽 언덕은 이제 성프란치스코대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안치된 이곳을 희망을 주는 ‘파라다이스(천국) 언덕’이라고 부른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그가 기득권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들의 친구가 된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아시시(이탈리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한국 가톨릭 환경운동에도 영향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자연과 우주까지 영성 확장    세상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끝없이 낮아졌던 프란치스코의 겸손은 곧 이타적 사랑으로 이어졌다. 프란치스코의 공식명칭인 ‘작은 형제회’는 겸손과 형제애라는 영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특히 형제애는 ‘맏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식을 기르고 돌보는 이상으로 형제들 서로간에 기르고 돌본다’는 것이다.

이런 형제애 정신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크리스찬이든 이교도든, 원수이든 강도이든, 성한 사람이든 병자들이든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인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이런 정신에 따라 1986년 티베트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개신교, 이슬람 등 세계 23개 종단 지도자를 아시시로 초청해 세계종교인평화기도회를 열었다. 이 기도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이후 중단됐다가 재개돼 지난해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참석해 연설하기도 했다.

늑대처럼 경원하던 동물 뿐 아니라 별과 달과 바람과 과일과 꽃 등 자연물까지 찬미했던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가톨릭의 영성을 자연과 우주로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 가톨릭이 환경 생명운동에 발벗고 나선 것도 그런 영성이 뒷받침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훗날 19~20세기 들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빈자나 병자들과 더불어 살며, 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활동수도회들의 설립과 자선에도 프란치스코의 영성이 끼친 공로는 적지않다.    조현 기자

       ‘정결’ 상징하는 사제 독신주의 깨질까 성직자 지원 감소·성추문 늘어 대책 부심  
      가톨릭에서 청빈, 순명과 함께 복음의 세가지 권고 중 하나로 중요시하는 것이 정결이다. 가톨릭에선 사제와 수사, 수녀 등 어느 수도자에게도 결혼을 허락하지않는 독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가톨릭 독신주의는 11세기 후반에 도입됐으며, 1945년에 공식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동시대 인물이었던 프란치스코 성인과 성녀 클라라(1193~1253)는 영화 등을 통해 로맨틱한 사이로 그려져왔다. 프란치스코가 세운 천사들의성모마리아대성당 정원엔  ‘가시 없는 장미’가 실재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가 타오르는 욕정을 이겨내기 위해 가시 달린 장미덩쿨에 몸을 던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자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 가시를 없애주었다는 전설 속의 그 장미다.   프란치스코보다 700년가량 선배인 베네딕토 성인(480~547)도 목석은 아니었다. 독일의 영성수도자인 안셀림 그륀이 쓴 전기엔 ‘사랑의 불길에 마음을 태워 없애 버리고 싶을 만큼,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이 불타올랐다’는 베네딕토의 고백이 나온다. 베네딕토는 성욕을 감추기보다는 직시해 영성의 원천으로 변화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성욕을 이겨내고 정결을 지킨 성인들의 일화는 가톨릭 수도자들이 따라야할 교범이 되었다.

가톨릭의 독신주의는 일반인들에게 사제는 세속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결혼을 하는 개신교의 목회자들에 비해 훨씬 정결하고 신비주의적 인상을 갖게 한 요인이 되어왔다.

하지만 성개방 풍조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금욕과 독신주의 고수는 의외의 문제를 낳고 있다. 우선 유럽에서 가톨릭 성직 지원자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또 잇따라 터지는 성직자들의 성추문 사건도 가톨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3년 전 교황으로선 29년만에 미국 순방길에 올라,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추문 사건을 사죄해야 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에서 잇따라 성추문 사건이 터져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제의 결혼을 허용할지, 전통을 고수할지도 가톨릭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했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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