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이광정 상사가 말하는 남북상생의 길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 이후 남북간의 극한 대치로 전쟁위기까지 고조되면서 국내 6대 종단 지도자들과 시민사회 원로들까지 ‘한반도 전쟁 방지와 평화 정착’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6·26전쟁 이후 최고조에 달한 남북 대치 갈등에서 원불교 최고의 수행자로서 남북문제에서 탁월한 식견을 보여온 좌산 이광정(75) 상사를 찾았다.
전북 익산 금마면. 백제 무왕이 미륵산과 용화산 아래 만든 동양 최대의 사찰 미륵사지가 있는 곳이다. 미륵은 미래에 세상을 구해줄 구세불이며, 용화세계는 이상향을 말한다. 이상세계는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미륵산이 병풍처럼 외호하고 앞에 미륵사지가 펼쳐진 상사원에서 4일 새벽 좌선으로 아침을 함께 연 좌산 상사와 눈 쌓인 미륵산을 오른다. 흰 눈썹 휘날리며 430m의 미륵산 정상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가뿐히 오른 모습이 20대 이후 간경화 때문에 적혈구·백혈구 등 모든 수치가 정상인의 절반에 불과한 75살 노구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미륵산 정상에서 그의 눈길을 따라가 보니 아래편 강줄기의 모습이 영락없이 한반도기를 펼쳐 놓은 것 같다.
그는 “국민의 뜻과는 달리 강대국들의 세에 밀려 분단된 나라들이 모두 통일됐는데,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쳐 60년 넘게 대치하며 이렇게 용렬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하느냐”며 “올림픽 때 남북한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입장하니 전세계에서 온 관객들이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면 그들의 눈에도 동족이 싸우는 것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고, 동족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게 얼마나 보기 좋았으면 그러겠느냐”고 말했다.
좌산 상사는 지난해 5월 방북신청을 했다. 북쪽 지도부에서는 허가했지만, 정작 남한 정부가 허락지 않았다. ‘그때 만약 갈 수 있었더라면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도록 일조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담긴 눈길이 한반도 모양의 강물에 머문다. “이제 목숨을 아까워할 나이는 아니지 않으냐”라는 그는 “북에 가서 갇혀 죽더라도 이런 말을 했을 것”이라며 방북이 실현돼 김정일 위원장을 목전에 둔 것처럼 일갈했다.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금지 라인을 넘어갔다면 벌금을 준다든지 구류를 살게 하면 될 것을 총으로 쏘아 죽이니 사람이 파리 목숨인가. 그러니 잘해줘봐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연평도를 포격해 민간인까지 죽게 하니 북을 동정했던 사람들까지 돌아서게 하고 적대감정을 키운 게 아니냐. ”
그는 “김신조 일당을 보내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을 비롯해 푸에블로호, 판문점 도끼살해, 아웅산, 칼기 폭파, 천안함 사건을 누가 저질렀느냐”며 “그런 짓을 반복해 함으로써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불러일으킨 게 누구의 책임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보기엔 불신을 받으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다”며 “남북관계를 화해로 이끌어보려고 노력하고 밤낮 고심하는 이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짓을 반복해서 북에 무슨 득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할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햇볕정책을 펼친 민주당이 남북화해를 얘기하면 보수 쪽에서 반대해 국론이 분열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면 민주당도 반대할 수 없어 국론이 통일되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 실용’을 표방해 큰 기대를 했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당시 혼찌검을 내줘야 한다는 국민적 분노에 부응하려면 북의 한 지역을 초토화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무고한 북한 주민들도 죽고 다칠 수밖에 없고 북한 인민들까지 남한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칠 텐데 무서운 인내력을 발휘해 보복전을 감행하지 않은 것은 거시적 관점에서 잘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평화통일과 흡수통일, 전쟁통일 가운데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은 평화통일밖에 없다고 믿는 그는 “설사 무력통일을 하더라도 상대방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는커녕 경계심리를 부추겨 모두 적으로 만드는 것은 병법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남북문제는 늘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있다. 지혜롭고 원숙한 사람은 긍정적 요인을 신장시켜서 부정적 요인도 긍정적 요인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이미 있는 긍정적 요인까지 부정적으로 만들어버린다. 북이 이렇게 거칠게 나오는 것은 북을 다루는 솜씨가 원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남북화해와 통일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 분란을 야기하는 드라마 <아이리스>의 내용을 예로 들면서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남북관계를 전방위로 올스톱시키면 우리는 늘 긴장과 전쟁 분위기에서 살 수밖에 없다”며 “현안은 현안대로 밀고 나가되 전체 관계까지 완전히 차단시키는 것은 자충수”라고 꼬집었다.
“북을 너무 코너로 몰면 갈데없는 북한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벌써 중국을 끌어들여 압록강과 청진을 개발하고 위화도를 100년간 임차해준다고 하지 않는가. 표면적으로는 독립국가라고 하지만 사실상 중국의 속국이 되어버리고 나면 우리가 중국과 싸울 것인가.”
그래서 그는 남한이 북에 다양한 도움을 줘 남에 의지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도 편하고 통일도 앞당기는 길이라고 믿는다. 또 그는 북한에 대해서도 “남한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만큼 발전한 사실이 북한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면 동반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는 것”이라며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미륵산에서 맑고 밝은 구룡마을에 내려오니 정결한 모습이 극락정토가 따로 없다. 4년여 전 좌산 상사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이 일대는 등산객과 마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지천이었다. 그런데 매일 좌산 상사가 손수 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치우자 어느날 마을 이장이 스피커를 통해 “우리 마을 사람들도 이제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쓰레기를 줍자”고 호응하고 나서며 마을 전체의 인상이 일신됐다. 좌산 상사의 미소가 묻고 있었다. 예토(穢土·정토의 반대인 고통의 세계)와 정토는 누가 만드는가.
좌산 이광정 상사는원불교 ‘최고 어른’…남북문제 정통
삶의 실천적 구도자
좌산 이광정 상사는 현존하는 원불교 ‘최고 어른’이다. 그는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정산 송규(1900~1961)-대산 김대거(1914~1998)에 이은 네번째 지도자였다.
1994년 58살로 최고지도자인 종법사에 올라 12년 동안 원불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는 2006년 스스로 물러났다.
상사는 종법사에서 물러난 이에게 붙인 칭호다. 이미 종법사 재임 시절 <분단역사 극복의 길>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그는 ‘자연 속에서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를 떠났다.
그는 종법사 퇴임 뒤 백두산 천지를 비롯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남북화해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해 왔다. 지금은 익산 외곽 미륵산 아래 상사원에 머물고 있다. 애초 충남 논산 삼동원에 거처를 마련했으나 퇴임 뒤 장협착증 수술을 받으며 원광대병원과 가까운 이곳에 한 지인이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곳이 (전남 영광군) 대마(大馬)면인데 이곳은 금마(金馬)면이고, 그가 12년간 종법사로 머문 중앙총부가 신룡(新龍)동인데, 이곳 역시 한자까지 같은 신룡리여서 기연지로 여겨지고 있다.
독신수도자로서 평생 살아온 그는 이곳 상사원에서 교무(원불교 교직자)들을 비롯한 6명의 상사원 식구들과 함께 새벽 5시 좌선으로 아침을 연다.
20대에 얻은 간경화로 간의 절반이 고사된 상태에서 40대에 당뇨병까지 얻어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그는 잘 먹고 푹 쉬어야 하는 간경화와 조금 먹고 많이 운동해야 하는 당뇨병의 ‘상극’ 사이에서도 철저한 좌선과 등산, 사상의학에서 터득한 섭생법으로 40~50대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도담(道談)에 머물기보다는 수행을 통해 얻은 지혜와 신생종단 원불교를 오늘의 대교단으로 이끈 경험과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일과 삶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해준다. 따라서 그는 지금도 원불교 교무와 신자들에게 건강의 비법부터 정치와 경영과 삶의 길까지 자상하게 안내해주는 ‘미륵산 할아버지’로 통하고 있다.
조현 기자
익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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