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성 천곡산서 법문 펼쳐
조사상·벽화엔 고행 흔적
이번 순례의 백미는 무상선사의 흔적을 찾은 것이었다. 무상선사(684~762)는 신라 성덕왕의 셋째아들로, 달마의 선맥을 이은 당대의 고승이었으나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그의 존재는 1907년 영국의 탐험가 스타인이 돈황에서 무상오경전을 발굴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무상은 중국의 근대 최고 학자인 후스 박사가 무상오경전에 실린 <역대법보기>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선종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무상은 중국 선종의 5대 조사인 홍인의 법을 이은 지산선사의 제자 처적선사의 수제자로서 석가모니로부터 전래된 가사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무상이 처적으로부터 법을 물려받은 영국사 법당엔 지선선사, 처적선사, 무상선사 등 3대 조사상을 모셔두고 있었다. 또 왼쪽 거대한 벽체엔 무상이 자신의 손가락을 태우며 강고한 의지를 보여 처적의 제자로 입문하는 과정과 산발한 채 고행을 해 깨달음을 얻고 널리 법을 펴는 내용을 담은 웅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중국 4대 선사의 한명으로 꼽히는 영국사 방장 청덕 스님(88)이 건네준 ‘사찰역사’에 신라왕자인 무상이 2년 정도 처적의 곁에 머문 뒤 이곳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천곡산 어하굴에서 홀로 고행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성도 자중현 영국사(옛 덕순사)를 거쳐 시골길 40분을 걸어 당도한 어하굴은 깊이 10여미터 정도의 넓은 바위굴이었다. 인근 농민들이 농사용수로 쓰기 위해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 무상으로 보이는 불상이 동굴호수 속에 목 아래가 잠겨 있다.
무상과 관련해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무상이 티베트에 최초로 불교를 전해준 인물이자 마조 도일의 스승이었다는 점이다. 육조 혜능을 이은 남악 회양의 법제자로 알려진 마조가 무상의 제자라는 내용이 규봉 종밀의 <원각경대소초>와 후스 등의 고증에 의해 새롭게 밝혀졌다. 마조의 제자인 백장 회해가 ‘강서의 선맥이 모두 동국으로 옮겨가는가’라고 한탄할 만큼 우리나라로 선맥이 옮겨진 것도 마조가 제자 서당 지장에게 신라승들을 잘 지도해 주도록 특별히 부탁한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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