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스님 ‘잠적’ 파장
뭇생명 섬겨온 ‘거리의 수행자’
문수 스님 소신공양 뒤 길 떠나
불교환경계 “함께 짐 나눠져야”
“수경 스님!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만 흐릅니다. 화계사 사부대중은 스님의 글을 접하고 놀라움과 안타까움에 모두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했습니다.”
불교계의 환경운동을 이끌어오다 지난 14일 모든 직함(화계사 주지, 불교환경연대 대표)과 승적을 내려놓고 홀연히 떠난 수경 스님의 복귀를 호소하는 불교계 내의 목소리가 간절하다.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 몇 줄을 남기고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신도들이 화계사 누리집에 올린 글들은 그의 복귀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남아 있는 저희 대중들은 그동안 믿고 따라왔던 스님의 크신 원력과 행을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기엔 아직 너무 어렵고 먼 길이다”라며 “돌아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원력 기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의 분향소가 있는 서울 조계사 앞마당도 적막하긴 마찬가지다. 수경 스님은 떠나기 직전까지 이곳에서 도법·법륜 스님과 함께 ‘대화마당’을 열어왔다.
수경 스님을 그림자처럼 뒤따르던 서울 한강선원장 지관 스님과 ‘4대강사업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명호 상황실장은 “왜 스님을 떠나도록 두었느냐” “빨리 찾아오라”는 질책성 전화를 받기에 바쁘다. 낙동강을 지키고 있던 지율 스님도 한강선원으로 달려왔고, 삼보일배 등을 함께했던 문규현 신부도 서울로 올라와 “어떻게 스님이 저렇게 떠날 수밖에 없도록 했느냐”고 호통을 쳤다. 수경·도법 스님과 함께 ‘실상사 3총사’로 불렸던 연관 스님은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하안거(여름철 특별참선정진) 결제 중에 선방을 나와 강원도까지 수경 스님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불자들은 그의 갑작스런 떠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혹스러워하고 있지만, 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명호 실장은 수경 스님의 행보를 ‘제2 출가’라고 규정했다. “권력이나 권위나 소유에 집착이 없었던 그의 성품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수경 스님은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안방을 스스로 박차고 늘 첫마음에 섰던 사람이었다. 그는 선방에서 무려 35안거(3500일)를 나 선방 구참으로서 ‘어른’ 대접을 받을 시점에 선방을 박차고 세상으로 나왔다. 화두를 탐구하는 선방에서 사구(死句)를 들고 돌부처처럼 앉아 있던 한 선승이 ‘살아 있는 현실의 문제’인 활구(活句)에 온몸을 던지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는 특히 관념적 환경운동의 틀을 박차고 삼보일배, 오체투지 등 온몸을 대지에 던지는 수행가적 운동의 장을 열었다.
밖으로는 이웃 종교인들과도 생명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행동하고, 안으로는 해인사의 세계 최대 청동불상 조성이나 종단 부패상 등에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다. 불교계 안의 기득권 세력에도 눈엣가시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자신이 부서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거리의 실천’을 일단락짓고 나면 그는 다시 선방에 들어가곤 했다. 어느 해엔 선방이 아닌 봉암사 공양간으로 가 3개월간 직접 장작불로 선승들의 밥을 해 먹이는 시봉을 자처하기도 했다. 2006년 ‘거리의 운동가’가 주지가 된 데 마뜩잖아하던 화계사 신도들에게 그는 100일 넘게 아무 말 없이 기도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주지였음에도 대중방에서 다른 스님들과 함께 잠을 자는 불편함을 스스로 택할 만큼 늘 권위에 스스로 제동을 걸었던 그에겐 하루하루가 출가였다.
수경 스님이 떠나기 전 수경·도법 스님과 함께 3일 동안 문수 스님 분향소에서 생명대화마당을 열었던 법륜 스님은 “짐이 무거우면 멀리 가기 어려운데 너무 혼자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웠다”며 “우리 모두 수경 스님의 짐을 나눠 지고 함께 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법 스님은 “단순한 도피나 잠적이 아니라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결연한 몸짓으로 보인다”며 “그렇게 떠나는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처럼 홀가분한 첫마음이 되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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