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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경배받는 자와 경배하는 자

등록 2014-03-26 09:08

조현의 통통통경배받는 자와 경배하는 자

알렉산더는 그리스의 변방 마케도니아 출신이다. 그는 힘으로 아테네를 장악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의 본산'에 대한 경의를 잊지 않았다. 동방 원정 때마다 전리품을 챙겨 아테네에 올려 보냈다.

그는 권좌에 앉아 거드름이나 피우기보단 부하들과 풍찬노숙을 함께 하고 적진을 향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왕이었다. 그런 그도 호화로운 궁궐의 권좌에 앉아 엎드린 신하들의 경배를 받으며 신처럼 군림하는 페르시아의 왕을 보고는 그 맛에 취하고 말았다. 그가 페르시아인들뿐 아니라 그리스인들에게까지 엎드려 절하게 하자 클레이토스는 "감히 자유민인 우리에게 노예나 할 짓을 시키다니! 엎드려 절하는 노예들과 잘 살아보라"며 대들었다. 그러자 분노한 알렉산더는 창으로 몸을 꿰뚫고 만다.

*왕 앞에 엎드린 신하의 모습. 영화 <관상> 중에서

그는 자신을 길러준 유모의 아들로 형제처럼 지내온 클레이토스를 제 손으로 죽였다며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지만, 제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이번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카 칼리스테네스가 "절 받는 게 그리 좋으냐"며 비난하자 사자 우리에 던져 죽였다. 알렉산더는 그 직후 불과 33살에 열병에 걸려 죽었다. 이에 대해 자식 같은 조카를 죽인 데 앙심을 품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독살을 사주했으리란 추측도 있다. 2천년 전 플루타르크가 쓴 알렉산더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르네상스를 통해 그리스 정신의 부활로 근대가 탄생하고 시민의식이 싹트면서 전제군주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 '통촉하시옵소서'식의 부복문화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화려한 권좌에 앉아 무릎 꿇은 자들의 경배를 받는 '바티칸의 황제'를 통해 전근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

*소년원생의 발을 씻어준 후, 발에 입맞춤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AP뉴시스

그런데 1년 전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배를 받기는커녕 납작 엎드린 모습을 선보였다. 그것도 감옥 죄수의 발을 씻어주면서. '주 예수'와 같은 식으로 죽는 것조차 호사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초대 교황)를 잇는다는 교황들에게 '전제군주 스타일'은 애당초 부적절했다. 그런데 이 스타일의 변화로, 세례를 받고도 성당엔 나가지 않은 '냉담자'가 급증하던 전세계 가톨릭의 위기에 급반전이 일어났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추기경들이 죽어가는 가톨릭을 살리기 위해 고심 끝에 선택한 구원투수가 위기의 팀을 구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가 찾는 한국의 주류 종교 불교에선 여전히 부복문화가 남아 있다. 스님에게 엎드려 큰절을 세번 하도록 한 것은 성철 스님으로부터 확산된 바가 크다. 조선 500년 동안 도성 출입도 못 하며 종 취급에다 하대를 당한 데 대한 승가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전근대적 이미지로 거부감을 부채질하는 상징이 됐다. 신자에게 반말투를 예사로 하는 스님들에게 큰절까지 하는 분위기에, 고즈넉한 절집에 가고 싶어도 그런 '승가 스타일'이 싫어 안 간다는 '불교식 냉담자'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경배받는 자와 경배하는 자 가운데 어느 쪽을 대중이 존경해 진정한 권위를 갖게 될까. '프란치스코 신드롬'이 말해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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