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장 마지막 날 뉴욕 맨하탄에서 국립미술관 메트로폴리탄을 들렸다. 메트로폴리탄은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 중의 한 곳이다.
하지만 모든 미술 작품 가운데 단연 내 마음을 끈 것은 고흐의 작품이었다. 고흐 이외 모든 작품을 다 합쳐도 고흐의 그림 몇점에 주는 강렬한 에너지를 당해내는 것은 없었다.
성직자의 길을 열망했지만 성직자도 못되고, 반편이 화가가 되어 미쳐가다 결국 서른일곱 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미친 화가가 오히려 나의 광기를 잠재운다. 대부분 화가들의 작품이 누구에게나 보이는 현상적 시각물을 그렸다면, 고흐의 그림 속엔 사물이 가진 에너지가 담겨 있다. 나는 화병에 꽂아놓는 꺾꼿이를, 단두대에 걸린 목마냥 싫어했는데, 고흐의 정물화에 이르러서는 `사(死)의 찬미'가 절로 나온다.
세상에 결국은 떨어져 죽지않은 꽃이 어디있으랴. 하지만 절망의 낙화가 아니라 마지막 에너지를 폭발해 빛을 뿜어내는 고흐의 정물화는 단절을 영원으로 승화시킨다. 젊은날 져버린 고흐가 오늘날까지 찬란한 빛을 발산하듯이.
그처럼 발산하는 에너지의 한 켠에 숨어있는 고흐의 그림을 보고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다갔다'는 칭호를 받은 고흐의 마음 한 구석에도 `평범한 삶의 행복에 대한 갈구'가 있었구나.
그림 한 점 팔지 못한 채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 몇푼으로 목숨을 연명하며 살다간 고흐가 살지 못했던 일상의 삶이 그 그림 속에 있었다.
그날 메트로폴리탄을 나와 커피숍에서 또 다른 광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일찍 떠나는 것에 대해 아내와 네명의 자녀에게 사과했고,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자서전 출간을 허락했다. 하지만 그 조차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 것이 아니라, 고흐가 꾸었던 행복한 단꿈을 삶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더욱 더 아쉬워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그를 또 하나의 구루로 만들고 있고, 광기에 미쳤을 때도 그 또한 이를 즐겼겠지만, 죽음을 앞 둔 순간에 그가 꾼 것은 더 각광 받는 구루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아니라 아래 그림과 같은 단꿈이었을 지 모른다.
▶관련 글: 내가 만난 고흐
![](http://img.hani.co.kr/imgdb/original/2011/1009/well_201110090143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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