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유일신교와 유일신교의 싸움
북에서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김일성 동상
박태선(1917~90) 장로가 설립한 천부교 신앙촌이 지난해 기자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다. 천부교와 신앙촌을 언급한 두 건의 기사에 대해서였다.
한건은 지난 2008년 9월에 쓴 평양 현장 르포 기사였다. 당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방문단으로 참여한 조계종 스님들, 가톨릭과 성공회 신부와 수사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금강산은 몇차례 갔지만 평양에 간 것은 기자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말로는 수 없이 들었지만 평양 순안공항에서부터 대형건물엔 어김없이 내걸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형 초상화와 김부자를 칭송하는 펼침막들, 하늘 높이 홀로 솟구친 주체탑 등을 보니, 평양 전체가 하나의 ‘신앙촌’이란 느낌을 받았다. 한 성공회 수사는 ‘박태선장로의 신앙촌에서 살던 할머니 장례식 때 3일간 머문 신앙촌 경험’을 회고하며, 평양에 대한 느낌을 술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천부교 신앙촌은 ‘일반적으로 남한사회에 이미지가 부정적인 평양과 자신들을 비교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한 것이다.
천부교 신앙촌은 이 기사 외에도 지난해 1‘월 <에스비에스>의 <그것이 알고싶다>가 방영한 ‘대해부-H정신수련원 사건의 진실’프로에 대한 리뷰 기사에서 ‘우리나라에서 교주가 메시아나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신흥종교의 대부분이 통일교 문선명 교주나 천부교 박태선 장로로부터 분파되어 나왔듯이 이 단체는 마음수련원에서 분파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대목을 시비삼았다.
천부교쪽은 인터넷에서 해당 기사를 모두 내리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이를 거부했다. 신앙촌이 언급되면 고소부터 해서, 아예 비판에 자갈을 물리려는 의도에 휩쓸리지않기 위해 재판에 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최근 재판을 하루 앞두고 천부교쪽에서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
대동강 건너 높이 솟은 주체탑
당시 평양 방문 일행중 신앙촌을 경험한 수도자가 우연히 끼어있어 각자가 평양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던 중 소개한 수도자의 멘트가 기사화되긴 했지만, 기자가 평양에서 느낀 것은 어떤 특정한 종파의 특정 장소라기보다는 평양 자체가 ‘하나의 종교 집단 도시같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거나 ‘위대한 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모시고 수령님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는 구호들을 보는 순간, ‘영원한 어버이 수령’(성부), 그의 아들 김정일 장군(성자), 주체사상(성령) 등 삼위일체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종교학회가 연 ‘한·중·일 삼국의 종교정책’에 관한 학술대회에서 ‘북한 정권이 배타적 유일신교’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대일 북한종교문화연구원이 발표한 ‘북한의 종교정책’에서다. 북한정권을 종교로 본 분석이 그가 처음은 아니다. 미국의 종교 관련 통계사이트인 어드히런츠닷컴도 지난 2007년 북한의 주체사상을 세계 10번째 종교로 발표한 바 있다.
김일성은 애초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있다. 어머니 이름이 강반석이다. ‘반석’은 기독교적 이름이다. 가톨릭에선 예수께서 반석으로 초대 교황인 베드로를 세웠다고 한다. 강반석은 기독교 장로이자 권사였으며, 교육자였던 외할아버지 강돈욱은 칠골교회 장로였다고 한다. 6·25 전 김일성대학 외과의사였던 장기려 박사가 김일성의 목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수술 직전 함께 기도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지난 91년 문선명 통일교 교주와 김일성
기독교에선 해방 전 북에 있는 기독교인구가 30여만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뒤 가장 큰 고초를 당한 이들 중 대표적인 집단이 기독교인들이었다.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많인 기독교인들이 6·25때 공산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몰수 당하고, 탄압을 피해 남하했다. 이들이 이승만 정권 이후 반공의 선봉에 섰으며, 남한 우익의 축을 담당해왔다.
북에서 기독교의 바울이 되어 주체사상이란 김일성교 교리를 만들어 권력을 누리고 후에는 남에 내려와 우익의 입이 되어 또 호의호식하다 간 황장엽이란 인물도 있긴하지만, 북한 출신 기독교인들의 상당수는 북에선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순교당하거나 쫓겨나고, 남에선 반평생을 증오심에 불타서 살았기에 황장엽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적 배경에서 자란 김일성이 왜 그토록 기독교를 탄압했을까. ‘종교는 아편’이라는 마르크스로 부터 시작된 공산주의와 종교는 애초 양립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6·25때 미국과 싸운 북한에서 주로 미주에서 파견된 선교사에 의해 전파돼 미주 기독교와 단단히 결합돼 있는 한국 기독교와 대립을 피할 수 없기도 했다. 하지만 김일성교가 현실화한 현 북한정권에서 보자면 유일신교로서 최대 경쟁자는 기독교가 아닐 수 없기에 제거에 더 집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원래 상대가 자신과 비슷할 때 경쟁의식과 위기 의식이 커지는 법이다. 방언이나 예언과 치유 기적등을 내세워 ‘무속스런’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무속을 가장 미신시하며 증오심을 내보이는 것이나 김일성교와 다름없이 가부장적 권위주의 교주 체제를 가진 종파들이 그런 집단에 대해 더욱 더 큰 증오심을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렵지않다. 훗날 김일성과 형제의 우의를 과시했던 문선명 통일교주는 멸공과 승공을 앞세워 오늘의 통일교를 일구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평양에 심장병원을 지으며 북쪽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평양에 복음을 전할 사람은 조용기 목사 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종파와 교회들이 100미터 출발선에서 용수철처럼 튈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북에서 북한그리스도연맹 강영섭위원장과 악수하는 조용기 목사
지금도 아무런 대가 없이 굶주리는 동포들을 돕는 개신교 목사를 비롯한 많은 종교인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붕괴될 경우 이들보다 오히려 `김일성 유일신교'와 유사성을 띤 종파들이 가장 먼저 북한상륙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도 ‘김일성 유일신교’의 공허감을 메울 종교는 자신들이 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 주민들은 맹수의 손에서 놓여난 즉시 다른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수많은 종교를 선택할 자유, 아무런 종교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 보수든 진보든 자신과 세상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선택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빵보다 더 귀한 자선을 ‘김일성교’와 유사한 종파들에게서 과연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김일성교’ 유고시 북한동포에 대한 아무런 보호책 없이 방치된다면 땅투기꾼보다 더 앞서 용수철처럼 북으로 튈 이들이 바로 이런 종교인들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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