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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예수가 사랑한 남자는?

등록 2011-06-13 19:05

 신학자 제닝스 교수 <예수가 사랑한 남자> 책 내

다빈치 성화 <최후의 만찬> 속 `중요인물‘에 주목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화 <최후의 만찬>엔 예수와 12제자가 나오는데, 가운데는 요한으로 보이는 제자가 예수와 함께 상당히 ‘비중있는 위치에 비중있는 모습으로’ 앉아있다. 마치 `당신이 세상을 떠난다면 나도 세상을 살 수 없다'며 기절이라도 한듯한 모습으로. 2006년 영화로 만들어진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는 이 모습을 들어 이 인물을 막달라 마리아로 그리고, 그를 ‘예수의 부인’으로 묘사함으로써 보수 기독교인들의 분노를 샀다. `하나님'인 예수가 보통의 인간들처럼 막달라 마리아와 섹스를 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상정은 `교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불경'으로 간주한 것이다. 댄 브라운 ‘다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부인’ 암시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유독 예수와 육체적으로 친근해보이는 이 인물을 여성으로 그리는데 대해 분노한 보수 기독교인이 이 인물을 남성으로 묘사해 ‘예수가 게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세계적인 신학자인 미국 시카고신학대의 테드 제닝스 교수가 이런 가능성을 들고 나왔다. 최근 펴낸 <예수가 사랑한 남자>(동연 펴냄) 에서다. 이 책은 <최후의 만찬> 속 `중요인물'이 예수의 남자 애인이었다고 유추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김수현 작가가 동성애를 표현했던 에스비에스의 <인생은 아름다워>란 드라마가 방영될 때 시청거부운동 및 광고안내기 운동까지 펼쳤던 개신교 보수단체들로선 ‘펄쩍 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방대한 성서 어디에서도 예수가 이성애건, 동성애건 사랑을 했다거나 결혼을 했다거나 또는 사랑을 하지않았다거나 결혼을 하지않았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언급되어있지않다. 그런데 3세기 이후 성화와 조각과 예술품을 통해 예수의 신성성을 고양시켜온 이탈리아에서도 추앙받는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성화에서 그런 포즈의 인물을 그렸기에 소설가와 진보파들은 상상력의 나래를 편다. 반면 보수파는 그림 속의 `다정한 짝'을 여자라고도, 남자라고도, 그렇다고 중성이라고도 할 수없어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답답하다고 해도, 그들의 편견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거두고 자살을 선택하는 많은 동성애자들의 답답함만 할까. 보수 기독교의 게이와 레즈비언 마녀사냥 이유 명쾌하게 답  <예수가 사랑한 남자> 출간 차 이번에 방한한 저자 제닝스 교수는 1년 전 동성애드라마 논쟁이 뜨거웠던 지난해 6월에도 방한해 서울 충정로 한백교회에서 강연을 했다. 그 때 지켜본 제닝스 교수는 어느 신학자도 쉽게 견주기 어려울만큼 성서 전반에 걸쳐 깊은 통찰력을 지닌데다, 용기와 사랑의 미덕까지 겸비한 ‘드문 인물’이었다.
 그는 ‘왜 보수 기독교가 하고 많은 일들을 다 제쳐놓고, ‘때려잡자 공산당’식으로 게이와 레즈비언 등 `성적 약자'들을 린치하는데 혈안이 된 것일까’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힘 있는 자들, 즉 기득권과 싸우며 고통받는 약자와 소수자들을 껴안았던 예수와 달리 교회가 돈과 권력을 쥔 힘 있는 자들 편에 선 ‘타락’이 그 이유라고 그는 꼬집었다. 보수교회가 특권층의 죄를 대신할만한 ‘보통 사람의 성(性)’을 대타로 등장시켰고,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약자인 동성애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흑인 노예제나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킨 것과 같이 동성애자를 차별하기 위해 성서 텍스트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동성애혐오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단 여섯구절 밖에 안되는 동성애 혐오 텍스트를 부풀리고 또 부풀려 동성애 사냥에 나서는 이들에 맞서 제닝스 교수는 성서 속에서 동성애에 호의적으로 볼만한 더 풍부한 텍스트들을 제시한다. 예수, 동성애 남자친구 치료 간청하는 로마장교 내치지 않아  가령 예수가 ‘(동성애자인) 남자친구를 치료해달라고 간청하는 로마군 백부장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는 점에서 예수가 상대를 동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거머리처럼 느끼거나 쳐죽여야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텍스트들이 아니라도, <다빈치코드>의 ‘요주의인물’로 보이는 요한은 12제자 중 유일하게 십자가 형장에서 예수의 최후를 지켜본 인물이니, 예수와 남다른 관계로 유추해볼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책은 ‘꼭 봐야될 사람들은 절대 안보고, 안봐도 좋을 사람들만 보게 되는’ 것이 문제다. 하긴 이런 책을 볼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동성애자가 부모 죽인 원수도 아닌데, 그렇게 미워할 리가 있을 것인가.  2천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장을 다시 가볼 수 없으니, 예수가 여자를 사랑했는지, 남자를 사랑했는지, 그런 종류의 사랑은 꿈조차 꿔본 적이 없었는 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는 예수는 고통 받은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인데, 그와는 반대로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돌팔매질을 하는 기독교인들도 적지않다는 것이다. 물론 테드 제닝스 같은 기독교인도 있지만.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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