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3일) 오후 4시30분 서울 냉천동 감신대 웨슬리채플 소예배실에서 작은 예배모임이 있었습니다. 채희동 목사 4주기 추모예배였습니다.
제 친구였던 채희동은 충남 아산의 신자 20명도 안되는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권정생, 이현주 목사,최완택 목사 등 영성가들의 글을 실은 <샘>이란 잡지를 내 기독교에 생명의 자연의 영성을 불어넣었던 목사였지요. 그가 불현듯 세상을 떠난 것은 2004년 늦가을이었습니다. 너 밖에 기독교의 생명 운동을 주도할 사람이 없다는 주위의 강권으로 기독교환경연대 사무총장에 내정된 직후였습니다.
그는 아산의 강 둑방 아래 있는 마을에 살았는데 그 길 횡단보도에서 봉고차를 끌고 정차해있다가 뚝방 길을 고속으로 내달리던 유조차에 치였습니다. 만약 그가 유조차를 맞이하지않았다면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됐을지 모를 상황에 그는 쓴 책 <걸레질하는 예수>처럼 자신의 몸이 걸레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유조차를 맞았습니다.
생전의 채희동 목사와 가족.
그는 그렇게 조용히 살다가 40대 초반의 나이에 가버렸지만 그가 남긴 향기는 지금도 제 코끝을, 아니 가슴을 울립니다.
그는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란 시처럼 스스로 길이 되어 걸어간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봄길 목사'라고 불렀고, 그가 간 뒤 감신대에선 1천여명이 모여 그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 학술제를 갖기도 했습니다.
이날 추모예배에도 무려 그가 간지 4년이나 됐지만 농사짓는 어떤 친구는 햅쌀로 만든 떡을 가져오고, 어떤 이는 자신의 밭에서 지은 고구마를 쪄오고, 어떤 이는 사과 밭에서 딴 사과를 가져와 나누며 채 목사의 삶을 기렸습니다.
추모예배에서 채희동 목사가 작사한 찬송 <하늘아 온땅들아>를
부르고 있는 이정배 교수(왼쪽)과 김영동 목사.
채목사의 선배로 감신대에서 변선환의 뒤를 이어 기독교가 도그마를 깨고 이 세상과 소통하는 기독교 신학을 열어가는 이정배 교수, 그의 친구로서 그가 가버린 바람에 그를 대신해 기독교환경연대사무총장을 맡아 기독교환경운동을 이끌고 있는 선봉장 양재성 목사, 감리교 감독회장직을 놓고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감리교단 행정총무로서 중심을 잡고 정의에 입각해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있는 김영동 목사, <당당뉴스>라는 기독교인터넷대안매체를 만들어 '깨어나는 기독교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필완 목사(한반도대운하반대 종교인 100일 순례단단장) 등 요즘 한국 기독교의 새로운 희망들이 그곳에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채 목사의 절친한 선배이거나 친구입니다.
추모예배에서 기도하는 채목사의 친구 양재성 목사와 친구들.
홍천 동면교회에서 아름다운 농촌 목회를 하는 채 목사의 친구 박순웅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에서 이정배 교수는 "조직에 순응해 생명력을 잃어버린 99마리의 양이 되지 말고, 홀로 서서 광야에서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잃어버린 한마리의 양'이 되자"는 역설로 설교를 대신했습니다.
남편을 추모하는 기도중인 이진영 목사.
채 목사의 아내 이진영은 감신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올해부터 채 목사가 이끌던 시골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채 목사가 갈 때 다섯살 세살이었던 윤기와 율미도 초등학교 3학년과 일곱살 꼬마로 예쁘게 자라고 있습니다.
추모 예배 제단 앞에는 누군가 해변가에서 주워온 조가비들을 늘여놓았습니다. 윤기와 율미는 "이걸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채 목사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채 목사는 죽지않는게 분명했습니다.
채 목사가 남긴 글입니다.
"당신은 왜 자꾸 하늘만 바라보고 있나요.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가난한 이들과 병든 세상을 돌보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당신의 가난한 이웃은 차가운 땅에서 따스한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 민족은 당신의 평화와 통일의 외침을 바라고 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사람들의 탐욕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는데, 당신은 여전히 선녀처럼 하늘로 올라갈 생각만 하고 있구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