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반대 100일 순례] ②
한강 둔치에서 500여명 모여 시민대행진 행사
강바람이 정말 춥더군요. 일요일인 17일 오후 1시 서울 잠실대교 남단으로 갔습니다. 지난 12일 경기도 김포 애기봉을 출발해 경부대운하 예정 코스를 따라 한강가를 걷고 있는 ‘생명평화 100일 도보 순례단’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날 잠실 한강둔치에선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이 주최하는 ‘생명의 근원 강지키기 시민대행진’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곳에 온 순례단의 얼굴은 추위에 부르트고 야위어 며칠새 몇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 자리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 종교 성직자들과 엔지오 실무자를 비롯한 시민 5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의 윤준하 공동대표와 서울환경운동연합의 양장일 사무처장, 관동대 토목학과 박창근 교수 등이 경부대운하의 문제점을 얘기했고, 순례단원인 박남준 시인은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는 시를 낭송했습니다.
“한 시간만도 추위 견디기 어려운데, 어떻게 100일을…”고행 걱정
시민들은 행사가 열리는 동안 강바람에 언 손을 호호 불면서 “한 시간만 강가에 있어도 추위를 견디기 어려운데, 어떻게 100일 동안 이 길을 가느냐”면서 종교인들의 고행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순례단 가운데 지난 2004년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때 병든 다리를 세 번이나 수술했던 수경 스님과 연관 스님, 이필완 목사 등 연장자들은 추위 말고도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수경 스님이 주지로 있는 화계사 신자들은 “평소 절에서도 지팡이를 짚은 채 절뚝절뚝 걸어야 했던 스님이 어떻게 하루 40~50리 길을 걸어다니다는 말이냐”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제가 5년째 전국을 걸어다니고 있는 도법 스님을 향해 “스님께서 걸어다니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더니, 이렇게 모두 몇년씩은 늙어버린 것 같으니 어찌된 것이냐”고 항변 아닌 농담을 했더니,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이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시민들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순례단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이 순례단의 꽁무니를 따라나서면서 잠실 한강 둔치엔 1천여미터의 긴 순례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순례단들은 첫날 영하 20도의 추위에서 천막을 치고 잠을 잔 이후 한강둔치공원에선 야영을 할 수 없다는 공원 규정에 따르느라 둔치 인근의 교회와 사찰에 머물며 잠을 청했으나 서울을 벗어난 19일부터 다시 강바람을 맞으며 천막 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종교계에서 존경 받는 목사님과 신부님, 스님, 교무님들이 무엇 때문에 이 추운 날씨에 이런 고행을 자처하고 나선 것일까요.
해탈과 생명과 민주주의 관점에서 대운하 반대한다
[문경 봉암사 수좌들 성명]
1년내 산문을 폐쇄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조계종 유일의 특별종립선원인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주지·함현 스님) 대중들은 18일 한반도대운하 건설에 반대하고 종교인생명평화 순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사실상 조계종단의 정신을 이끄는 대표적인 수좌집단이 경부대운하를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불교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는 평생 참선 정진만 해온 봉암사 수좌(선승)들이 쓴 글입니다. 개구즉착(開口卽錯). '입 벙긋 하는 순간 어긋난다' 하였으나, 이는 오로지 '해탈'과 무관한 희론(戱論)을 경계한 것인즉, 무너져 내리는 세간을 바로잡을 언어의 방편을 쓰는 일에 주저할 까닭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봉암사 대중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대운하 건설을 반대합니다.
1. '해탈'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 산천초목이 다 부처의 현현이라 한 것은, 자연의 산물은 '구경무아(究竟無我)' 즉 개체로서의 존재 의식조차 없이 이 세상을 장엄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할 바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저마다 궁극적 가치로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의 터전을 허물 것이며, 국토의 근간을 훼손할 것입니까. '환경 재앙' 이전에 '돈'의 노예가 되어 영원히 자유로운 삶과는 멀어질 것입니다.
2. '생명'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 불제자로서 지켜야 할 바의 으뜸은 '불살생'입니다. 이는 세간의 불자들도 지켜야 할 바입니다. 하지만 출가자들은 소극적 불살생에 머물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땅을 파는 비구를 보고 "출가 사문으로서 어찌 부끄러움도 모르고 남의 목숨을 끊는가. 겉으로는 정법을 안다고 말하지만 지금 손수 땅을 파 남의 목숨을 끊는 것을 보니 어찌 정법이 있겠는가"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이에 비구들이 남을 시켜 파자 "만약 비구가 손수 땅을 파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땅을 파게 하면 바일제(波逸提, 참회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업이 되는 죄)니라' 하고 거듭 이르셨습니다. 대운하 계획은 대량 살상 계획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가치는 동등합니다.
3.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합니다.
― 인류 역사상 '자유, 평등, 박애'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장 먼저 주창하고 실천한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그런데 대운하 건설 계획을 보노라면 절차적 민주성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민자를 명분으로 상위 5개 건설사를 들먹이는 것은 철저한 시장 개입으로,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철학과도 모순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민주주의는 국가 경영의 고삐를 쥔 사람은 궁극적으로 국민임을 분명히 한 정치사상입니다. 그런데 어찌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일부 권력자들이 국가를 개인 소유물인 양 함부로 하려 드는 것입니까? 국민의 반대도 불사하겠다는 투의 대운하 계획은 사실상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입니다.
조화와 절제·돌봄과 공존의 문화로 승화되기를
[문경 봉암사 대중의 뜻]
무릇 선문(禪門)에 든 납자(衲子)의 궁극처는 구름과 짝한 청산의 초막이 아닙니다. 적멸(寂滅)의 즐거움도 탐착하지 말아야 하거늘, 어찌 세간 밖을 노니는 일로써 한도인(閑道人)인 양 하겠습니까? 다만 노심초사 공부 길을 점검하며 처신을 삼갈 따름입니다.
정녕 선문 납자의 일대사는 '두 손을 펴고 저잣거리에 드는 일'인즉, 이른 바 '입전수수(立廛垂手)'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신 대로 "모든 중생의 거처가 바로 보살의 정토"인 까닭입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이에 종교환경회의는 반생명적 개발의 광풍을 생명과 평화의 숨결로 되돌리고자, 100일 동안 대운하 예정지를 걷는 순례의 길에 나섰습니다. 하여 우리 봉암사 대중들은 이들의 생명평화순례를 온 마음으로 지지하면서, 이번 순례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한 반목과 질시, 탐욕을 부채질하는 무한 경쟁의 냉랭한 기운이 자비의 온기로 승화되기를 기원합니다.
스스로 살펴 보건대 아직 일대사를 마치지 못한 입장에서 감히 '입전수수'를 운위할 때는 아닙니다. 하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 명백한데도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세간이 무너지는 데 출세간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예토가 없으면 정토도 없는 법, 모름지기 우리 대중은 부처님께서 밝히신 연기법(緣起法)에 비추어 우리의 행동이 불조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투철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중의 뜻을 밝히고, 위기에 처한 모든 유정?무정과 더불어 아픔을 나누는 것을 법희선열(法喜禪悅)로 삼고자 합니다.
1. 불살생(不殺生)을 계율의 으뜸으로 삼는 불제자로서,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을 것이 분명한 대운하 건설 계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대중의 뜻입니다.
2. 조계종단의 스님들께서는 부디 밝고 깊은 가르침을 내리시어, 이 땅에 자비의 당간을 세워주십시오. 세간의 일이라 하여 침묵하는 것은 불조를 외면하는 일임을 일깨워 주십시오. 반생명의 현장을 묵인하는 것은 출가 수행자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3. 아무리 불살생의 계율에 투철해도 육신을 유지하는 일은 본시 다른 생명에 빚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참회와 금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환경 재앙마저도 불사하며 국토를 훼손하는 행위는 법신(法身)에 위해를 가하는 일입니다. 사사물물이 법신의 현현이기 때문입니다.
4. 우리 봉암사 대중들은 지난 해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제2의 결사를 다짐하며 3대 실천 지침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수행의 생활화와 사회화'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수행력을 사회에 되돌리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결의의 연장선상에서 대운하 계획이 백지화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우리는 대운하 계획과 관련된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업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현대 문명이 처한 '대량소비의 위기'와 '욕망의 위기'가 문명 전환의 관점에서 조화와 절제, 돌봄과 공존의 문화로 승화되기를 발원합니다.
불기 2552년 2월 18일
조계종립특별선원 희양산 봉암사 대중 일동
[순례 동참 박남준 시인의 시]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이 야만은 어디에서 왔나
이제 손짓하는 강 언덕에 서서 바람의 춤을 추던
억새며 갈대밭들 흔적도 없어질 것이다
하늘거리며 푸른 숨을 쉬던 강물 속 물풀들은 숨이 막혀 사라지고
금모래, 은모래는 옛날의 기억으로만 쓸쓸하게 남을 것이다
재두루미와 큰기러기와 하늘을 비상하는 가창오리 떼, 새들 새들은
어디로 그 어디로 떠나갈 것인가
모래무지와 쉬리와 흰수마자와
저기 맑은 조약돌과 모래톱에 산란의 몸 부풀던
물고기들에게 어떤 희망이라는 내일이 찾아올까
주검이 되어 떠다닐 것이다
어쩌자는 것이냐
누가 대체 이토록 잔인한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냐
산허리를 잘라 철조망을 치고
이쪽과 저쪽, 앞산과 옆산을 뒷산과 그 앞강을
생명의 이동통로를 막아버린 거미줄 같은 도로망과
죽음의 갯벌 새만금으로도 정녕 모자란단 말이냐
뉘우칠 줄 모르는 것이냐
운하를 파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냐
모든 경제가 파탄될 것이란 말이냐
산을 뚫고 들판을 자르며 강바닥을 파헤쳐
이 나라를 온통 재앙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창조적인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냐
갈대숲과 모래사장이 있는 강길을 따라 걸었다
그 풍경으로 인해 즐거웠으나 미안해, 미안해요 마음 편치 않았다
걸음 걸음마다 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먹이를 먹거나 햇살에 몸을 말리며 단잠 꾸벅이는
새들의 안방을 방해했다 여겼기 때문이다
갈대숲과 모래사장을 엎애고
콘크리트 성벽으로 높이 쌓아올려 분단한 강 길을 따라 걷는다
풍경은 삭막했으나 미안한 마음 일지 않았다
날아오를 새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강가로는 새들이 찾아오지도 깃들어 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 된다 이렇게는 안 된다
너희가 무슨 오만한 권리가 있어 강물을 사리사욕으로 바꾼다는 말이냐
운하는 악몽이어야 한다
잠 깨고나면 다시 새들이 날고
알록달록 조약돌을 간질이는 맑은 물결이 찰랑 거리며
은빛 모래밭과 갈대들이 너울거리는
평화와 고요한 아침이 오는 한바탕 악몽이어야 한다
수많은 수중보와 갑문으로 막혀 가두어진 채 썩어가는 운하가 아니라
작은 물고기들이 반짝이는 자맥질을 하며 흐르는 숨 쉬는 강이어야 한다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탐욕과 무지몽매와 기만으로 뒤덮여 죽어가는 운하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 함께 춤추는 푸른 강이어야 한다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