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영화 한 장면] 비투스
피아노 천재에다 5개 국어 능통하고 주식도 귀재
사랑의 이름으로 '틀'에 가둔 부모의 욕망 거슬러
<카핑 베토벤>과 <어거스트 러쉬>에 이어 세 번째 음악영화다. 주로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을 많이 상영하는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비투스>를 보았는데, 세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극장은 관객들로 가득 찼고, 극장 문을 나서는 이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베토벤과 어거스트 러쉬에 이어 이번엔 천재소년 비투스가 등장한다. 베토벤이나 어거스트 러쉬를 비롯해 세상의 천재들이 특정한 분야에서 천재성이 두드러지는 데 반해 비투스의 천재성은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 '베토벤+빌 게이츠'라고나 할까. 그러나 영화를 논하면서 그런 픽션의 현실성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비투스는 천재를 그린 영화가 아니라 꿈을 그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떤 성장과 성공의 꿈이라기보다는 '자유'의 꿈이다.
가정교사와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장면 몰카에 잡혀
피아노 신동인데다 5개 국어를 할 줄 아는 테어 게오르규가 연기한 비투스는 눈매에서부터 총기가 넘쳐난다. 비투스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다. 비투스의 부모는 집에 남편 회사 간부 등을 초청한 파티에서 비투스의 천재성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 부모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온 비투스는 처음엔 '바보스럽게' 피아노를 쳐서 부모를 몹시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천재의 특기는 반전. 비투스는 어눌한 손놀림을 갑자기 빠르게 하더니, 어느새 자유자재로 슈만을 연주한다. 이를 본 파티장의 사람들은 "어쩌면 저렇게 대단한 아들을 두었느냐"는 찬사로 부모를 붕 뜨게 만든다.
부모의 욕심과 기대가 급상승하면 그때부터 자식은 부모 틀의 감옥 속에 갇히기 시작한다. 머리가 비상하기는 하지만, 비투스는 여느 소년과 다름없이 마음껏 신나게 놀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어린이일 뿐이다. 비투스는 부모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숙제를 돌봐주는 10살 위 가정교사 누나와 함께 빗자루를 마이크 삼아 응접세트 위까지 폴짝폴짝 뛰어오르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리고 몰래 냉장고에서 포도주까지 꺼내 분위기를 즐긴다. 비투스를 감시하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던 엄마는 그 모습을 카메라 필름으로 보고는 비투스가 좋아하는 가정교사 누나를 '해고'해 버리고는, 자기가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비투스를 '자신이 원하는 천재'로 담금질하기 위해 나선다.
머리 다친 것처럼 속여…눈치 챈 할아버지와 ‘공모’
이제 비투스의 좋은 시절도 다 간 것이다. 그런데 그대로 있을 비투스가 아니었다. 비투스는 사고가 나 머리를 다친 것처럼 해서 아이큐 180이 아닌 아이큐 120짜리 평범 소년으로 둔갑하는 데 성공한다. 부모를 감쪽같이 속이는 데 성공했지만 할아버지는 비투스가 천재성을 감추고 있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그것을 발설하기보다는 비투스에게 오히려 자유와 꿈을 키워준다. 그래서 비투스는 할아버지를 자신의 진정한 벗으로 여긴다.
비투스는 아빠의 회사가 위기에 처하고, 아빠가 해고당할 처지에 놓인 것을 보고는 주식을 공부해 대주주가 되는 데 성공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주식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하는 비투스의 성공 신화를 말하는 것이라면 3류 영화겠지만, 이 영화는 인간의 꿈과 자유를 얘기한다.
욕망은 늘 목표 지향적이다. 그래서 자식을 사랑이라는 변명으로 그 욕망의 목표 속에 가둔다. 그러나 욕망은 외형적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보게 되면 인간을 정상적으로,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자라게 하는 게 아니라 암처럼 비대하게 하고, 뒤틀리게 하고, 터지게 하고, 병들게 하기 십상이다. 욕망과 집착은 목표가 분명하기에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직 안전한 그 성공의 한 길만을 원한다. 수 만개의 길 중에서 오직 한길을.
그러나 늙어 죽음을 앞두고도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할아버지와 비투스는 위험하다는 경비행기 정비사에게 말한다.
"비행기도 날 때보다는 땅에 있을 때가 안전하지. 그래도 날아야 비행기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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