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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서소문역사공원의 정의는

등록 2019-06-04 18:48

 서울역 옆 서소문역사공원이 3년4개월의 공사를 끝내고 1일 개방됐다. 지상1층~지하4층 4만6천여㎡에 국비·시비·구비 596억원이 투입됐다.

 그런데 이 공원은 이름과 달리 ‘가톨릭 성당 겸 순교자기념관’과 다름 없다. 개관을 앞둔 지난달 29일 공원 지하3층 콘솔레이션홀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50여명의 사제와 1천여명의 가톨릭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축성·봉헌 미사’를 거행한데서 공원의 점유권이 서울시민에서 사실상 천주교로 넘어갔음을 말해준다.

 
  국민이 낸 세금인 국가와 지방자치제의 예산을 종교계가 세력확장을 위해 쌈지돈처럼 쓰는 것은 비단 가톨릭만은 아니다. 불교계를 필두로 개신교 등 주류 종교들이 앞다투어 예산 빼내기에 나서고, 표심을 노린 정치인과 관료들은 자기 돈처럼 인심을 쓰고 있다. 가령 불교문화역사기념관은 정부 예산으로 지었기에, 조계종 총무원으로 쓰면서도 그 이름도 넣지못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적어도 조계사 부지에 지었다.

 서울대교구는 서소문 밖 네거리가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 124위 복자 가운데 27위가 순교한 성지라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활용해 성역화사업을 가속화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단체협의회’와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범국민대책위원회’는 조선말 사형집행장이었던 이곳이 천주교인들만이 아니라 반외세 반봉건 반부패를 외치며 민중을 위해 싸운 동학지도자 김개남 성재식 안교선 최재호 안승관 김내현 등이 효수당한 곳인만큼 명실공히 역사공원으로 만들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동학지도자들에 대한 유물은 이곳에 없다. 고려시대 여진족을 물리치고 남경(서울)건설의 주역이서 이곳에 설치됐던 윤관장군의 동상마저 사라졌다. 대신 한국 천주교 사료 140여종이 전시됐다. 이 중엔 ‘어서 함대를 끌고와 조선을 쳐부셔줄 것’을 요청한 황사영의 백서도 있다.

 외세가 물밀듯 밀려든 조선후기 백성들과 함께 싸운 동학도들은 가톨릭에 대해 외세의 서학이라며 발발했다. 그러나 가톨릭은 정의구현사제단 등의 민주화 헌신으로 외세와 일제의 앞잡이 종교라는 불명예를 씻고, 민중들의 종교로 거듭났다. 원주에서 지학순과 함께 천주교 변화의 주역이 된 장일순이 동학 지도자 해월 최시형을 사사해 생명운동을 펼침으로서 마침내 서학과 동학은 역사에서 하나되는 듯도 했다. 그 소중한 악수가 서소문에서 다시 두 동강이 났다. 
 
 
 

 서소문 공원의 상징물로 선 대형 순교자 현양탑엔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란 글귀가 새겨졌다. 이것은 누구의 의(義)를 말하는 것일까.

 약한자들은 힘에 굴복해 평화를 얻으라던 ‘팍스 로마나’를 외친 제국의 의인가. 십자가를 앞세운 침략자가 아니라 피수탈민들의 현실적 구원을 위해 헌신한 남미 해방신학의 토대에서 나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일까. 일제 때 피맺힌 백성들의 신음을 외면하고 안중근을 살인자로 매도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일제 장군에게 밀고해 일망타진시킨 조선가톨릭의 수장 뮈텔 주교의 의일까. 
  불가항력적인 서양총의 위협 앞에서도 노예로는 살수 없다고 외치다 죽어간 동학교도들의 의일까. 민주화운동가들을 검거하러 명동성당에 온 독재의 공권력 앞에서 ‘나를 밟지않고는 갈 수 없다’고 한 김수환 추기경의 의일까. 가톨릭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사제인 한스큉은 <왜 나는 아직도 기독교를 믿는가>에서 ‘정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가치 위기에서 가치에 대한 최소한도의 의견일치마저 없다면, 갈등으로 인해 국가가 제대로 기능할 수도, 윤리나 도덕이 존재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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