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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낮은데로 임하소서

등록 2019-05-21 19:08

 
  #아침마다 먹는 생야채가 내겐 보약입니다. 유기농산물을 믿고 먹을 수 있도록 해 한살림생활협동조합의 뿌리는 원주의 무위당 장일순(1928~94) 입니다. 무위당의 25주기를 기념하는 생명협동문화제가 지난 16일 시작돼 6월4일까지 일정으로 원주 일원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이  쓴 <장일순 평전>(두레 펴냄)도 출간되어 그의 면모를 좀 더 깊숙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암담한 시대 마음이 외롭거나 영혼이 적막할 때면 무위당을 찾던 리영희는 ‘다시는 장일순과 같은 사람이 나오기 힘들것’이라고 아쉬워했지요. 대통령도, 고관대작도, 법조인도 추기경이나 주교도 아닌, 변변한 직업조차 없던 그를 말이지요. 무위당은 시골마을에서 시내까지 20분이면 갈 길을 2시간 걸려 다녔다고 합니다. 풀섶의 여치와 귀뚜라미와 민들레와 토끼풀과도 인사를 나누고, 개구리 소리와 뜸북이 소리에 응답도 해줬겠지요. 동네 아이들, 노인들, 장돌벵이와 말동무도 했고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갔더랍니다.  
  
  #선방에서 수행하던 수경 스님은 1990년대 환경운동에 투신해 환경운동을 주도했지요. 그런데 문수스님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소신공양을 한뒤 2010년 모든 활동을 접고 잠적했습니다. 선승의 활발발한 기상과 특유의 인간적 매력으로 ’운동’의 에너지원이었던 그의 부재는 환경운동판에도 깊은 상실감을 주었지요. 그런데 그가 사라진지 9년만에 그의 이름이 달린 작은 책자가 배달되었습니다. 50여쪽에 불과한 <공양>이라는 소책자입니다. 그는 머리말 ‘수챗구멍 속의 우주’에서 충남 예산 덕숭산 정혜사에서 출가한지 한달만에 밥을 짓던중 수챗구멍에 쌀을 흘려보냈다가 쫓겨날뻔한 일화를 들려줍니다. 숨은 도인이면서도 평생 일만하던 벽초 스님이 어느날 공양간의 수챗구멍에서 내려 보낸 쌀, 콩나물대가리, 밥풀들을 바가지에 주워 담아 행구고 그 자리에 그걸 먹었다고 했습니다. 책자 속엔 장일순의 제자인 이철수 판화가가 새기고 수경 스님이 쓴 ‘공양송’이 담긴 엽서가 들어있습니다. ‘이 밥은/숨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이 밥으로/땅과 물이 나의 옛몸이요/불과 바람이 내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수경 스님이 밥상에서 대하는 ‘진지(眞知)’가 아닐 수 없습니다. 
 
  #홍승완 감독의 <배심원들>을 보았습니다. 지난 2008년 국민이 참여하는 역사상 최초의 재판이 열리는 날에 대한 영화입니다. 일당 10만원을 받기 위해 온 배심원 8명은 ‘저 높은 곳에 계신’ 지금까지의 심판자들과는 많이 다른 이들입니다. 모친살해 피의자와 같은 임대아파트에 살던 20대 여성,  파산신고해 ‘신용불량’ 상태에 있는 청년, 30년간 장례식장에서 주검을 닦은 염장이, 10년간 남편 병수발을 들던 노인 등이었습니다. 배고프고, 넘어지고, 아프고, 서러워본적이 별로 없는 높으신 분들과과 달리 찢겨지고 넘어진 자들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은체 살인범으로 낙인 찍힌 피의자가 있던 아주 아주 낮은 곳으로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껴봅니다. 으르렁대는 개를 무조건 두들겨패기보다는 ‘개가 짖는 것도 무서워서 그런거잖아요’라는 배심원들의 감수성 점수를 사법고시 합격 점수보다 높게 쳐주고 싶습니다. 배심원에 의한 재판에서는 일반 재판보다 무죄율이 3배나 된다고 합니다. 무지란 명문대나 고시에 낙방한만큼 지식이 부족한게 아니라 작은 이들의 신음소리에 둔감하고 아픔에 대한 이해의 결핍이 아닐까싶습니다. 
 

 

 #감로수는 불교에서 고통중생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진리의 생명수’입니다. 조계종이 지난 2010년 수익사업을 해 승려노후복지기금으로 쓴다는 명목으로 하이트진료음료에서 공급하는 ‘감로수’란 생수를 종단내 사찰에서 판매케하고있습니다. 약수물이 좋은 산사에조차 반환경적인 패트병들이 나뒹구는 것부터 모양새가 좋지않습니다. 그런데 상표사용료 가운데 5억원이 넘는 돈이 자승 전총무원장 관련자가 내부이사로 등록된 단체에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조계종 총무원 노조에 의해 제기됐습니다. 그러자 종단은 노조원 3명을 징계했습니다. 수사가 진행 중이니, 사실관계를 확인한 이후 책임을 따져 물어야할 사안임에도 미봉만 서두르고 있습니다.

 조계종은 지난해 11월 원행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취임했지만, 여전히 자승 스님이 상왕으로 군림하다고 있다고합니다. 위만 쳐다보면 낮은 곳의 목소리들이 들릴리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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