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처음 여는 ‘김대건길’ …고산성당서 출발 12㎞ 코스
교인 700명 학살 ‘고통의 길’ 이시돌목장의 ‘십자가의 길’…
2년동안 모두 6개 길 열 예정…“성인 아픔 보며 치유하는 길”
아래 사진들은 김대건길
바다 바라보는 김대건신부 입상
김대건긴부가 표류하다 도착한 해안
김대건신부가 타고온 라파엘호를 실물크기로 재현해놓은 배
해안가에 라파엘호와 함께 있는 김대건표착기념관
제주는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곳이다. 지난해 874만명에 이어 올해는 1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제주 관광객의 증가엔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올레길과 숲길 등 순례길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순례 문화를 선도한 제주에 이번엔 ‘천주교 성지 순례길’이 열린다.제주는 이제 7만여명(제주도)의 신자를 거느린 거대 종단으로 성장한 천주교에도 근대사에서 남다른 아픔이 밴 곳이다. 제주교구는 ‘박해 속에 피어난 신앙의 꽃’들의 자취를 묵상 순례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성찰할 수 있는 6개의 순례길을 개장한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1822~1846) 신부의 첫 번째 미사와 성체성사가 이뤄진 김대건길을 시작으로 하여 내년에 2곳, 2년 뒤 2곳 등이 연차적으로 개통된다. 김대건길 개통식은 오는 15일 오전 11시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고산성당에서 열린다. 4~5일 제주교구가 미리 공개한 순례길을 돌아보았다.
출발지는 제주시내 중심부 삼도2동에 있는 관덕정이다. 제주교구 주교좌성당 건너편에 있는 한옥건물은 보물 제322호다. 1901년 제주민란군에 의해 천주교인들을 비롯한 700명이 학살당한 현장이다. 천주교가 다른 순례길을 영광의 길, 환희의 길, 은총의 길, 빛의 길이라고 명명한 것과 달리 이곳을 ‘고통의 길’로 부르는 이유다. 제주교구는 당시 한국 천주교회가 전통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교활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빚어진 역사적 고통을 넘어 화해를 모색하는 순례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관덕정에서 시작된 ‘고통의 길’의 끝은 제주시 외곽의 한적한 공원묘지 황사평이다. 관덕정에서 희생된 31명이 합장된 대형 봉분 외에도 천주교를 빛낸 인물들이 숲 속에서 영생의 묵상에 잠겨 있다. 순교자 외에도 선교사이자 식물학자로서 제주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을 밝혀내고, 원주밀감을 최초로 들여온 엄다케 신부와 성서학박사 1호로 성경을 번역한 임승필 신부도 순교자 묘 옆에 누워 있다.
다음에 찾은 곳은 ‘현대판 제주의 신화’를 일군 이시돌길의 출발지인 ‘새미은총의 동산’(이시돌목장)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콜룸반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제주에 온 아일랜드 출신의 임피제(84·맥그린치) 신부가 황무지 100만여평을 개간해 한때 양과 돼지, 소 등 100만마리를 키운 아시아 최대 목장이다. 특히 제주 축산농민들을 교육시켜 제주의 축산업 수준을 크게 높인 곳이다.
아래 사진은 이시돌목장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십자가의 길’이 있다.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과정이 100여미터 간격으로 야외에 조각되어 있다. 아일랜드의 수의사 출신인 이어돈(58·미카엘) 신부는 예수가 사형수 바라바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조각상 앞에서 “예수와 바라바가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그는 “둘 다 애국자이고, 사형수인데, 바라바는 폭력을 써서라도 목적을 이루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늦더라도 사랑의 힘으로 한 것이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십자가에서 내려져 축 늘어진 예수의 주검상 앞에 선 이 신부는 “얼마 전엔 순례중이던 남자가 이곳 예수상을 안고 우는 모습을 보았다”며 “노동운동을 하면서 고문당한 아픔이 깊은 그는 예수의 아픔을 보듬고 울며 치유를 체험했다”고 말했다.제주는 3만여명의 양민들이 학살당한 현대사 최대의 비극 4·3사건에 이어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재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돼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아픔의 땅이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를 통해 개인과 역사의 아픔을 깨어 바라보고 치유하는 길이다.
관덕정
황사평 성지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제주주교좌성당에 걸려 있는 순례하는 예수의 그림
순례길을 마치고 오니 노신부가 기다리고 있다. 임 신부다. 지난 2005년 아일랜드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이 찾아올 만큼 임 신부는 아일랜드에서도 ‘신화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노래 ‘강남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말춤을 따라하는 노신부는 “왜 그렇게 1등과 금메달만 찾는지, 그러면서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남다른 한국인 사랑을 표했다. 그가 있기에 역사유적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지길이 된다.이어 김대건길. 고산성당에서 출발해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12.6㎞ 코스다. 해안을 따라 김대건길 순례에 나선 이탈리아인 여성 군살리아 몬신(55)은 “지진으로 퇴적된 수억년의 이곳 역사만큼이나 아름답고 역사가 깊은 땅에서 성인의 길을 걸으니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용수성지엔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뒤 귀국길에 풍랑을 만나 28일 동안의 표류 끝에 도착한 것을 기념한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함께 그가 탔던 라파엘호를 재현해 전시해두었다. 우리는 격랑을 헤치고 고국을 향했던 저 작은 라파엘호를 타고, 이제 어디로 향해 가야 할까.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예수님은 세상의 한복판에서 살다 갔다. 교회가 세상과 유리돼 유아독존하는 것은 예수님의 교회가 아니다”라며 “제주 지역의 아픔을 함께 느끼면서, 순교 영성을 함께 느끼는 순례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제주/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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