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수도원공화국, 아토스산2.그리스신화 12신은 어디로 갔나-신들의 고향, 올림포스산3.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하늘에 걸린 수도처,메테오라4.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우주의 배꼽 델피신전5.엘리트들이 우리를 지켜주는가-전사의 나라,스파르타6.인간은 무엇으로 위대해 지는가-소크라테스의 아테네 7.어디에서 길을 벗어났는가-에개해의 섬들
8.왜 속고 살까-트로이의 목마
터키 차낙칼레 항구 해안에 있는 트로이의 목마
트루바의 박물관에 있는 트로이성 그림
트루바박물관에 있는 그림 속에서 트로성을 기어오르는 그리스군
트루바의 트로이성 유적지에 있는 트로이의 목마
트로이성 유적지
트로이성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들
에개해를 동쪽으로 건너면 지금은 터키땅이다. 하지만 고대엔 이곳 소아시아도 그리스세계였다. 쿠사다스 항구에서 북쪽으로 달린다. 동방의 패권을 놓고 한민족과 다퉜던 돌궐(투르크)이 훗날 해지는 쪽을 향해 이곳까지 달려와 오스만제국을 세운 땅이다. 졸리듯 침상에 오르는 황금빛 노을을 보며 가고 있는 곳은 바로 트로이다. 호머 <일리아스>의 주무대다.
일리아스는 나관중(1330? ~ 1400)의 <삼국지 연의>보다 무려 2천년도 더 전인 기원전 800년쯤에 쓰여졌다. 그런데도 아킬리우스나 헥토르의 전투 묘사는 관우와 조자량의 무예 못지않게 역동적이며 생생하다. 그러나 매번 인간이 전장을 장악하면, 꼭 신들이 나타나서 전세를 뒤집는다. 올림포스산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들이 두는 장기에 의해 인간이란 ‘졸’(卒)이 꼭두깍시처럼 움직여 영웅이 되기도 하고, 힘없이 죽어 나빠진다. 영화 <트로이>는 이런 훼방꾼 신들을 스크린 밖으로 내보냈다. 그래서 열번을 보아도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그 트로이로 달린 지 7시간. 버스는 밤 9시에 차낙칼레터미날에 내려준다. 들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새로 지어진 터미날이다. 한대 남은 셔틀버스를 타고 차낙칼레 시내에서 잡은 숙소의 이름이 ‘헬렌’이다. 트로이전쟁의 발단이 됐다는‘나라 말아 먹은 미녀’ 헬레나를 딴 것이다. 이 여인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정분이 나 데려온 스파르타 메넬라로스의 왕비였다.
미녀 왕비를 빼앗긴 메넬라오스가 열불이 나서 그리스 세계의 최강자로 자기 형인 미케네왕 아가멤논을 움직였다. 그래서 그리스연합군은 함대 1천척을 이끌고 에개해를 건너 트로이를 침공한다.
어쨋든 지상 최고의 미인호텔의 품에 안겼다. 여독을 풀고 트루바로 향한다. 차낙칼레에서 20km 떨어진 곳이다. 트루바다. 영화 <트로이> 이후 이곳도 뜬 모양이다. 유럽의 관광객들이 성시다. 서양문학의 아버지이자, 서양 정신을 낳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리아스>의 주무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트로이의 목마’다.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가 그리스의 전사 아킬리우스의 손에 죽고서도 결코 함락되지 않던 철옹성을 무너뜨린 바로 그 미끼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막을 내리고, 호메로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지은 <아이네이스>에 나온다.
모사꾼 오디세우스가 그리스군이 모두 퇴각한 것처럼 꾸미고, 특공대원들을 숨겨 트로이성안에 잠입시켜 트로이를 멸망시킨 바로 그 목마를 재현해놓은 것이다. 목마 속에 오디세우스와 아킬리우스 등이 숨어있다는 걸 모르는 트로이에선 적의 특공대원이 숨어있는 대형 목마를‘신의 선물’이라며 트로이성으로 끌고 들어온 뒤, 진탕 마시며 축제의 밤을 즐기다가 한밤 중에 트로이성이 불타고, 도륙당했다. 관광객들은 흉물이 마치 디즈니랜드의 목마나 되는양 반기고, 앞다투어 안으로 들어가 밖을 내다보며 손을 흔든다.
목마 뒤쪽에 소형 박물관이 있다. 트로이성을 재현해놓은 조감도 인상적이다. 외관상으로 보아도 쥐새끼 한마리 침입할 틈을 허용하지 않을만큼 견고해 보인다. 지금부터 3천~4천년 전에 저런 성이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더구나 신화속의 이야기를.
1천여대의 함선을 동원해 에개해를 건너 트로이성으로 침공하는 그리스군연합군 사진 영화<트로이>
트로이 해안에 가장 먼저 내려 선봉에 서서 공격하는 아킬리우스의 전사들 사진 영화 <트로이>
그리스세계 최고의 파이터인 아킬리우스 사진 영화<트로이>
강의 여신 테티스가 아들 아킬리우스와 마주하고 있다. 트로이 신전에 납치한 브리세이스를 그리스군총사령관 아가멤논왕이 뺏어나분개하는 아들을 위해 테디스는 한때 자신을 연모했던 제우스신에게 사정해 트로이군에 의해 그리스군이 도륙당하게 한다.
사랑에 빠진 트로이 여사제 브리세이스와 그리스군 아킬리우스 사진 영화 <트로이>
아킬리우스와 결투를 앞두고 무구를 챙겨입는 트로이성 총사령관 헥트르 왕자 사진 영화<트로이>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왕 사진 영화 <트로이>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그의 동생인 스파르타의 왕으로 왕비 헬렌을 트로이에 빼앗긴 메넬라오스. 사진 영화 <트로이>
헥트르왕자의 왕자비 안드로 마케. 아버지와 7형제를 모두 죽인 아킬리우스에 의해 남편 헥트르까지 잃고 그리스군에 끌려가는 비운의 여인 사진 영화 <트로이>
아칼리우스의 일전을 앞두고 부인과 자식과 작별하는 헥토르. 전투에서 헥토르는 죽고, 부인은 그리스군에 의해 끌려가고,아이는 오디세우스에 의해 불구덩이에 던져진다.사진 영화 <트로이>
트로이의 목마를 기획해 9년 동안 무너지지않은 철옹성 트로이성을 함락한 오디세우스 사진 영화(트로이>사진 영화 <트로이>
좀 더 걸어가니 둔덕 위에 돌성이 나타난다. 신화만이 아니고 트로이성이 실제로 존재한 것이다. 가로 180미터, 새로 35미터, 높이 18미터의 돌성의 상당부분이 허물어졌다지만, 튼튼한 성이다. 과연 그리스 연합군이 1천대의 함선을 타고 저 에개해를 건너와 해안가에 진을 치고 9년을 끊질지게 공격했어도 무너트릴 수 없는 성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이 보낸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인간들과 요정들의 요새 ‘미나스티리스’(감시자의 탑이라는 뜻)의 성처럼 빼어나 보인다.
이 돌성을 돌아가 풀숲을 지나면 간간히 돌무더기들과 돌층계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둔덕 위에서 보니, 6키로 미터 떨어진 에개해 해안까지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트로이>에서 미처 본선이 해안에 당도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안에 상륙하는 아킬리우스와 그의 전사들이다.
아시아 정복에 나서면서 늘 <일리아스>를 옆에 끼고 잠들만큼 전사 아킬리우스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알렉산드로스도 이곳에 들려 제를 올린 뒤 전장으로 나갔다.
아킬리우스는 사자처럼 날래다. 그는 영화 속에서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어느새 아폴론신전에 이른다. 신전에서 가차없이 사제까지 베어버린다. 그의 심복은 그가 신전을 모욕한 것을 두려워하며 “아폴론신을 모독하면 진노를 살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 때 아킬리우스는 에개해의 그리스연합군쪽으로 활을 겨누고 있는 황금으로 된 아폴론상의 목을 가차없이 칼로 싹둑 두동강 내버린다.
하지만 실상 서사시들은 영화와는 딴판이다. 훗날 전쟁이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났음에도 트로이 여신의 신전에서 여신상을 손상시킨 전우, 로크리아의 아이아스를 돌로 내려쳐 죽일만큼 신의 보복이 두려워 덜덜 떤 그들이었으니, 신상의 목을 단칼에 날린 영화 속 아킬리우스의 모습은 나가도 너무 나간게 아닐 수 없다.
<일리아스>에 그려진 트로이전쟁은 신들의 꼭두각시 놀음에 불과하다. 아킬리우스는 최고의 전사이기도 하지만, 마마보이다. 이 전쟁도 애초 그의 부모가 결혼식에 에리스여신을 왕따시킨 것에서 발단됐는데, 오지랖 널은 아킬리우스의 어머니 테티스 여신이 전쟁을 좌지우지해 양쪽에 엄청난 살생을 야기한다. 아폴론신전에서 보쌈해온, 예쁜 여사제를 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왕이 뺏어가버렸다고 외아들 아킬리우스가 칭얼대자, 그녀는 처녀시절 자신을 사랑했던 제우스에게 달려가선 트로이군이 그리스군을 도륙하도록 부탁한다. 아가멤논이 아킬리우스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아들의 체면을 위해 아군을 도륙해달라고 부탁할만큼 인간의 목숨은 개미나 다름 없이 여기는 신이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아가멤논이 아킬리우스에게 싹싹 빌어, 테티스가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자 제우스는 헤라와 아테네의 요청대로 이번엔 그리스군쪽에 트로이군 살해권을 준다.
이 전쟁에선 테티스 뿐 아니라 그리스연합군편인 헤라와 아테나, 포세이돈이 그리스연합군편이 되고, 트로이군편인 아폴로와 전쟁의 신 아레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양쪽으로 나뉘어 북치고 장구 친다. 인간들은 왜 갑자기 전세가 불리해지고, 힘이 쏙 빠져 상대의 칼과 창에 맥없이 죽어야하는지도 모른채 그저 죽어갈 뿐이다.
트로이의 옛 유적지 위에선 사라져버린 목 위에 쏟은 핏빛 넋인듯 꽃들이 애닮다. 19세기에 이 유적지를 발굴했을 때 성채엔 매장되지 않은 유골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전시에 남자는 남김 없이 죽였고, 여자는 노예로 삼았고, 아이들은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렸다.
트로이성 멸망 후 화근의 싹을 제거하려는 잔인한 오디세우스에 의해, 헥토르의 어린 아들은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그리고 부인 안드로마케는 전후 분배에서 아킬리우스의 아들에게 주어져 끌려간다.
과연 누가 승자인가. 오직 명예와 복수를 위해 싸우는 아킬리우스도 죽었고, 국가와 가족을 위해 싸운 헥토르도 죽었다. 에개해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항해에 앞서 포세이돈을 달래기 위해 자기 딸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와 트로이성을 장악한 아가멤논도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딸을 죽인데 앙심을 품은 아내에 의해 살해됐다.
비극이 그런 영웅들만의 것이었으랴. 싸움에 살고 싸움에 죽는 싸움꾼 아킬리우스조차 ‘전사는 신과 영웅의 불쏘시개일 뿐’이라는 진실을 간파했다. 영화 속 아킬리우스는 말한다.
“인간은 불쌍한 존재야. 누굴 위해 싸우는거지? 얼굴도 못본 왕을 위해? 그런 개죽음은 하지마!”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 유부녀인 스파르타의 왕비 헨렌과 정분이 나 트로이성에 데려와참화를 불러온 왕자. 사진 영화 <트로이>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헨렌을 데려와 트로이성에 입성하는 모습 사진 영화 <트로이>
차낙칼레 헨렌파크호텔에 걸려있는 헨렌의 그림
트로이전쟁 마지막 50일을 기록한 시인 호메로스
트로이의 묘지 부조.
트로이 묘지의 부조에서 전투 장면
트로이군과 그리스군이 싸웠을 해안
트로이성 앞에서 대치중인 트로이군과 그리스군 사진 영화 <트로이>
트로이성이 있는 트루바 인근의 양떼들과 양치기
차낙칼레항구 여객선터미널 벽에 그려진 대형벽화 속 바다의 신 포세이돈
어디나 독일 관광객들이 많지만, 이곳엔 유난히 더 많은 듯하다. 아마도 이 유적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이 독일인이어서 그들에게 더욱 더 각별히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도그럴것이 슐리만이 아니었다면 트로이는 여전히‘전설따라 삼천리’속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 속의 성으로 남아있었을 지 모른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슐리만은 크리마스 때 선물로 받은 <일리아스>를 읽은 감동을 잊지 못하고 신화 속 트로이를 찾아낼 꿈을 꾸었다. 그는 훗날 사업가로 대성한 뒤 46살부터 어린시절의 꿈을 현실화하는데 쏟는다.
그는 마흔여섯살에 <일리아스>의 헬레나 같은 그리스 미인 처녀 소피 엥가스트로노메스와 결혼한다. 그는 한해뒤인 1870년부터 헌신적인 아내와 함께 이 일대를 발굴하기 시작한다. 3년간 일군 100여명과 함께 37미터 높이의 언덕에서 1톤 트럭 25만대 분의 흙을 파냈다. 그가 흙을 파내려가자 트로이 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시대의 유물이 켜켜히 쌓여있는게 무려 9개의 층이었다. 역사 이전에 더 많은 역사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면서.
그는 이곳에서 보물상자를 챙겼다. 휘황찬란한 보물 8700점이 든 상자였다. 죽도록 궁전을 파헤쳤어도 일꾼들은 금붙이는 구경조차 못하고 쫓겨났듯이 재주는 곰이 넘지만, 돈통을 차지하는 이는 따로 있는 게 세상이다.
나라가 망해 백성들이 적군에게 도륙을 당해도, 백성의 수호신인양 행세했던 왕족과 귀족은 보물을 들고 튀어 살아남아 다른 곳에서 영화를 이어가는 게 숨은 역사다. 보물상자의 원래 주인은 궁전에서 급히 보물들을 상자에 넣은 뒤 자물쇠에서 열쇠를 빼지고 못한 채 재앙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트로이성에도 적들이 만든 저런 목마를 성 안으로 끌여들여선 안된다고 외치다 죽음을 당한 라오콘 같은 사제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양심적인 종교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신의 축복’과 ‘신의 저주’를 빌어 대중을 현혹하거나 겁박해 제 주머니를 챙기는 종교인들이 어디 한둘이든가. 그리고 정치인은, 기업가는, 금융인들은?
트로이 유적지의 목마 말고도, 차낙칼레 항구에도 영화 <트로이> 제작사로부터 기증 받았다는 거대한 ‘트로이의 목마’가 전시돼 있다. 이제 차낙칼레의 상징물이 된 트로이의 목마는 가장 몫좋은 해변 공원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찾아 두리번 거리니 목마 앞 벤치에 앉은 한 여자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헬레나의 화신인 듯 아름다운 그녀가 나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목마 주위에 꽃뱀들이 적지않다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이게 웬 ‘신의 선물’이냐고 좋아했으려나.
신화 속에서 나온‘트로이의 목마’는 갈수록 생명력을 발한다. 실체가 없는 대량 살상무기를 찾는다며 애국과 정의의 이름으로 5만여명을 죽음으로 내몬 이라크에서, 나만이 축복을 줄 수 있다는 사이비 종교에서, 내가 바로 당신의 미래를 책임진다며 주머니를 노리는 보험과 금융사의 광고에서.
그래도 차낙칼레서 ‘트로이의 목마’를 찾는 사람들은 날로 늘고 있다. 3천년간의 경고를 무색하게. 여전히 ‘신의 선물’일지 모른다면서.
글 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