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수도원공화국, 아토스산2.그리스신화 12신은 어디로 갔나-신들의 고향, 올림포스산3.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하늘에 걸린 수도처,메테오라4.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우주의 배꼽 델피신전5.엘리트들이 우리를 지켜주는가-전사의 나라,스파르타6.인간은 무엇으로 위대해 지는가-소크라테스의 아테네
7.어디에서 길을 벗어났는가-에개해의 섬들
8.왜 속고살까-트로이의 목마
제우스 헤라 히포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요한…현지인도 잘 모른 피타고라스동굴, 어둠의 빛
에개해에서 가장 큰, 제주도 4배 크기의 크레타섬과 제우스가 태어났다는 이다산의 설봉
미노아문명을 연 미노스왕이 지은 미궁
크레타출신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 크레타섬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무대다
카잔차키스가 그린 자화상
크레타역사박물관에 꾸며놓은 카잔차키스의 서재
크레타섬에서 쾌속선으로 두시간 거리의 산토리니섬의 이아의 전경
산토리니의 하얀 지붕 위에서 개와 망중한을 즐기는 남자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나고 의술을 편 코스섬
사도요한이 귀양 가 계시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쓴 파트모스섬
아테네를 떠나면 에개해다. 그리스 본토와 터키 사이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다. 이 바다의 이름은 바다에 몸을 던진 아테네의 아이게네스를 땄다. 크레타섬 미궁의 괴물에게 조공으로 바쳐진 소년소녀 7쌍을 구하러 간 아들 테세우스가 거사를 성공하고도, 승리의 흰 돛을 달고 오겠다는 약속을 잊고 검은 돛을 단 것을 보고 ‘성급히’ 죽은 왕이다. 그래서 에개해에선 성급해선 더욱 안될 일이다. 하지만 느리게 돌아도 눈이 시리다. 너무도 푸른 바다와 화려한 신들과 문명과 현자들의 면면에.
제우스가 보쌈해 데려온 에우로페가 유럽의 어원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인 크레타섬은 제우스의 탄생지다. 또한 유럽 문명의 시원이다. ‘유럽’은 제우스가 보쌈해서 이 섬으로 데려온 ‘에우로페’가 어원이다.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미노스가 태어난다. 그가 바로 기원전 3650~기원전 1170년의 미노아 문명을 연 장본인이다. 크레타섬에서 쾌속선으로 두 시간 거리엔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일지도 모른다는 산토리니가 있고, 조그만 섬 코스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나고 의술을 펼친 곳이다. 파트모스는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저술한 곳이다. 외부세계와 닫히기 십상인 섬들이 어떻게 세상의 중심인물의 활동지였던 것일까. 오디에우스의 탐험기와 아르고호 원정기를 듣고 읽으며 바다를 닫힌 벽이 아니라 열린 길로 여긴 사고의 지평 덕이리라.
사모스섬 전경
피타그레온 항구의 피타고라스 동상
피타그레온의 젊은이들
사모스섬의 헤라신전 터
사모스항에서 필자
에게해 섬들을 유랑한 지 일주일만이다. 사모스섬의 피타고리온항구다. 스스로를 최초로 철학자로 부르고, 지금까지도 교과서를 장식하는 수학자이자, 음악 7음계의 창시자인 피타고라스의 고향이다. 삼각형을 가리키는 피타고라스의 동상이 서있다. 사모스섬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들의 여왕인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고향이자 <이솝 우화>의 그 이솝(아이소포스)과 ‘쾌락주의자’로 불린 자족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살았던 곳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모스 연구>라는 책을 쓸 만큼 주목하던 곳이다. 피타고리온 인근 분지는 헤라가 태어난 곳에 지어졌다는, 거대한 헤라신전터다. 평화로운 곳이다. 폭풍같은 헤라의 질투와 시기심은 순전히 바람기 많은 제우스로 인한 것이리라. 사모스섬의 대표 인물은 뭐니뭐니해도 피타고라스인데, 유물은 없다. 유일한 흔적이 그가 도를 닦았다는 ‘피타고라스 케이브(동굴)’다. 우리나라에서도 원효대사를 비롯한 옛 도인들이 수도했던 동굴들을 샅샅히 찾아다니던 내가 어찌 이 동굴에 오르는 노고를 마다하겠는가. 택시 기사에게 그 동굴을 물으니 “안다. 문제 없다”란다. 통상 100유로 받는데, 비수기니 80유로만 받겠단다. 다음날 아침 7시 예약택시를 타고 출발. 40여 분 간 몇 개의 고개를 넘더니 어느 해안가 마을에 이른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에게 길을 묻는다. 60 평생 이 섬에 산 그도 초행이었던 셈이다. 마라포캄보시 마을의 케드키시산길로 오른다. “문제 없어!…문제…없어…문제…문제 있어!” 산길은 1천 미터쯤까지는 시멘트포장 도로더니, 그 다음엔 울퉁불퉁한 돌들이 삐져나온 험로다. 말 수가 없던 택시기사가 “문제다 문제야”란다. 대꾸하면 못 간다고 할까봐 못들은 척 할밖에. 이런 산길을 3~4km 가니 막다른 곳이다. 험준한 바위산을 300~400미터쯤 오르니, 철문이 달려 있다. 더 오르니 동굴이 보인다. 겉에서 보기보다 내부가 상당히 크다. 10여 명도 너끈히 지낼 수 있을 성싶다. 그 옆에 다른 동굴이 있다. 그런데 동굴 안쪽으로 철조망이 쳐있다. 안쪽은 위험하니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고 돼 있다. 어둠 너머로 보니 깊은 물웅덩이다. 용이나 구렁이나 다른 괴물들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같은 섬뜩한 어둠 속이다.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다. “신들에 대해서는 산 제물을 바치는 것을 그만두고 피가 흐르지 않는 제단에서만 예배를 하라. 신들에게 맹세하지 마라. 대신 자기 자신을 신이 신뢰할만한 자로 만들어라. 시간상으로 자기보다 먼저 태어난 자를 연장자로 존경하라. 다이아몬드(돈) 보다는 신쪽을, 인간보다는 영웅 쪽을 존경하라. 인간들 가운데서는 우선 첫째로 부모를 존경하라. 교제할 때는 내 편을 적으로 만들지 말고, 적을 내 편으로 만들어라. 무엇 하나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법을 지키고 불법에는 도전하라. 재배된 식물을 마르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지 말라. 인간에게 해를 주지 않는 동물에게는 해를 입히지 마라. 자지러지게 웃지도 말고 불쾌한 표정도 짓지 말라. 지나친 비만을 피하라. 기억력을 훈련시켜라. 화가 난 상태에서는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 주문 사항이 많은 분이다. 피타고라스 공동체는 영혼의 윤회사상을 가르치며 육식을 금하면서 채식을 하게 했다. 또 하얀 옷을 입고 이불도 하얀 것만 덮게 했다. 공동체 내에선 신들과 부모, 친구, 계율에 대하여 절대적 신실과 자제, 복종을 요구했다. 그는 위에 가스가 차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은 멀리하고, 소금이나 설탕에 절인 음식과 떫은 것을 먹으라고 했다. 또 예언 능력이나 영혼의 순수함과 순결함 또는 절제와 선행의 습관을 방해하는 음식은 삼가라고 했다. 아울러 학식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제자들에게는 육식과 술을 금했다.
이 동굴의 아우라가 말해주듯이 피타고라스는 장막 뒤에서 말했다. 추종자들은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인도의 석가와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피타고라스공동체는 엄격한 계율과 채식, 절제가 기본이었다. 3년간 이런 과정을 거치고 5년간 침묵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그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 동굴이 있는 케드키시산과 에게해
술이 일정한 양 이상이 들어가면 아래로 빠지게 만들어진 피다고라스컵
피타고라스 동굴
피타고라스 동굴에서 본 에개해
이 섬의 시내에 가면 어느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상품이 피타고라스의 잔이다. 이 잔은 피타고라스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술을 마셔야 한다며 더 넘치도록 따르면 아래로 술이 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런 평등 애호론자가 왜 차별적 배제의 원칙을 그토록 앞세웠는지 모를 일이다. 엄격함이 화근이 돼 종말…그래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자 결국 너무도 엄격한 배제의 원칙이 이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화근이 되었다. 피타고라스가 이탈리아에 이주해 운영한 공동체의 입회를 거절당한 시바리스의 왕자 키론이 앙심을 품었다. 그는 시민들을 선동해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피타고라스를 죽였다.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다. ‘자기 집에 들어갈 때마다 `어디에서 나는 길을 벗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또 해야 할 일 가운데 무엇을 하지 못했는가‘라고 소리내어 말하라.’ 동굴에서 장막 속의 피타고라스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에피쿠로스처럼 자족하고 싶다. 피타고라스까지 나서지 않아도 지금 세상은 너무나 달리고 있다. 나도 스스로를 달달 볶고 있다. 그래서 곱추이자 노예였던 이솝의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하면서, 지금은 느긋하게 에개해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다.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자.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