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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소크라테스를 사랑한 올림픽 우승자

등록 2012-07-25 18:45

1.이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수도원공화국, 아토스산2.그리스신화 12신은 어디로 갔나-신들의 고향, 올림포스산3.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하늘에 걸린 수도처,메테오라4.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우주의 배꼽 델피신전5.엘리트들이 우리를 지켜주는가-전사의 나라,스파르타

6.아테네:인간은 무엇으로 위대해지는가

7.어디에서 길을 벗어났는가-에개해의 섬들8.왜 속고 살까-트로이의 목마

 
 아테네 고대 유적지 가운데 솟아있는 필로 파퓨 언덕. 뒤로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사진 조현

아토스산에서 만나 트레킹을 하고 아테네를 안내해준 그리스 청년 파이돈/ 사진 조현

파르테논신전에 관광을 와 춤을 추는 북유럽의 소녀들/ 사진 조현

파르테논신전/ 사진 조현

파이돈이 찾아왔다. 수도원공화국 아토스산 순례 때 만나서 아테네를 안내해주겠다던 말이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자’는 한국식 공약인줄 알았더니 진짜 온 것이다. 

이름도 알려지지않은 플라카지구의 좁은 골목안 호텔까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그는 그리스에선 더 이상 일거리를 찾기 어려워 타이 치앙마이 영어학원으로 간단다.  다음날 떠날 이삿짐을 싸는 중에 시간을 냈다. 

그가 처음 안내한 곳은 숙소에서 10분 거리인 뉴아크로폴리스뮤지엄이다. 박물관 옥상 식당에 앉으니 코앞에 고대 민주정치의 산실인 아크로폴리스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다. 파이돈은 자기가 어릴 때만해도 파르테논 신전 안에서 공을 차고 놀았다고 했다.

그만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관리가 허술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뿐 자기가 왕족이었던처럼 뻐길만한 친구가 아니다. 친가는 알렉산드로스, 외가는 스파르타의 피를 이어받았다. 조상들 찬사에 입이 열개라도 모자랄 법한데 “싸움질로 날을 새는 사람들 아니냐”란다. 쿨하다. 입만 열면 ‘애국’을 부르짓으면서도 세금은 쥐꼬리만큼 내거나 아예 배째라식이던 부유층들은 여전히 호사를 누리는데, 이런 착한 젊은이들이 ‘게으르고 놀기만 좋아하는 그리스인’으로 찍혀 고통을 받는다는 게 가슴이 아린다.

게으르지도, 놀기만 좋아하지도 않은 이 청년은 돈 안되는 일에도 열과 성을 다해준다. 델피의 신전에 애초에 새겨져있던 격언이 무엇이었는지 그리스 문헌들을 뒤져 찾아봐달라는 부탁도 잊지않고 메모해온 것이다. 델피신전엔 고대 일곱명의 현인들이 한 말을 종합한 금언이 새져져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써서 그가 창작인 것처럼 오인된 ‘너 자신을 알라’는 말 이외엔 알려진 게 없고, 이를 소개한 책자들마다 문구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1.Know yourself.(너 자신을 알라) 2.All things in moderation.(중용을 지켜라) 3.commitment brings misfortune.(집착은 불행을 가져온다)

이 격언들은 그리스 현자들의 나침반이었다. 그들이 이런 ‘진리’를 지키기 위해 아토스산이나 메테오라의 수도자들처럼 아예 은둔을 하지않고, 리얼한 삶의 현장에서 이를 실현했다는 점이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아테네항구. 왼쪽으로 아테네올림픽 스타디움이 보인다/ 사진 조현

부활절 파티. 부활절이 되면 레스토랑들은 거리에서 양고기 바베큐를 판다./ 사진 조현

아테네에 있는 제우스 신전/ 사진 조현

아테네 유적지가 있는 플라카지구의 골목의 노천 레스토랑들/ 사진 조현

지상 최고의 건축물의 하나로 꼽히는 저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한 인물은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끈 페리클래스(기원전 495~429)다.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는 ‘페리클래스가 죽은 뒤 아테네인들은 그처럼 위엄이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온유하면서도 진지한 사람은 일찍이 태어난 적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쓰고 있다. 그처럼 칭송 받는 위인이기에 아무런 바이러스가 침입할 수 없는 유리병 속에서 신격화만을 기대한 사이비 교주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계적으로는 그보다 오히려 더 유명해진 인물 소크라테스처럼 그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오해와 불신의 늪을 헤치며 도전하는 용기를 잃은 적이 없었다. 페리클래스와 소크라테스는 여러모로 인연이 많다.

페리클래스는 사교계의 여왕 아스파시아를 사랑했다. 리얼하게 말하면 창녀촌의 포주다. 페리클래스는 처와 합의이혼하고 아스파시아와 살았는데, 외출 할 때와 집에 돌아올 때는 반드시 입맞춤을 했다고 한다. 페리클래스가 아스파시아에게 사로잡힌 것은 성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아시파시아는 아테네에서 가장 많은 연설을 해야하는 페리클래스의 연설문을 직접 써줄 정도로 변증법과 수사학에 탁월했다. “행복은 자유에서 나오고, 자유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철학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아테네 최고의 지도자가 창녀를 데리고 살 수 있었을까. 용기 있는 자는 페리클래스만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도 ‘창녀 아스파시아’를 스승 삼아 ‘언어의 마술’을 전수 받았으니까. 우리가 문어요리와 스파게티를 먹는 사이 우리 주위에선 뭇 연인들이 페리클래스와 아스파시아의 사랑처럼 밀회를 즐긴다. 파이돈과 함께 박물관을 돌아보고, 조망하기 좋은 필로 파퓨 언덕에도 올라갔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에 대해 “깊이는 모른다”고 말했다. 잘 알지도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고 아는 체하는 것만큼 ‘밥맛 없는 이’는 없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그런 자를 가려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했고, 그 댓가로 미운 털이 박혀 죽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잘 모른다는 그의 솔직함이야말로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소크라테스 감옥까지 그와 함께 동행해야 할 이유는 없어졌다. 굿 바이! 그리고 소크라테스 감옥이 있는 공원으로 향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년 다비드의 그림에선 독배를 받기 전 소크라테스는 노인이지만 씩스팬 복근을 자랑한다

소크라테스의 석상

소크라테스 감옥으로 가는 길 벤치에 누워있는 노숙인과 개/ 사진 조현

소크라테스 감옥을 바라보는 관광객들/ 사진 조현

 소크라테스가 투옥돼 독배를 마시고 죽은 감옥은 바위산의 자연동굴이다/ 사진 조현

공원 숲 속에 들어서니, 남자들끼리 무리지어 여성들을 흘긋거리기도 하고, 남녀 커플들이 산책을 하기도 한다. 또 마치 소크라테스를 닮은 듯한 노숙자가 벤치 위에 늘어져 있고, 그 옆엔 개 한마리가 앉아 있다.

소크라테스는 맨발로 돌아다니고, 여름에도 겨울에도 늘 같은 옷을 걸치고 다녔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를 애정촌 출입은 금기시했던 출가 승려와 같은 류의 인간으로 본다면 오산이다.

“아가톤, 날 좀 도와주게. 이 사람의 사랑은 적지 않게 부담이 되네. 처음 이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된 순간부터 이 사람의 질투와 시기 없이는 다른 잘생긴 젊은이들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말도 한마디 건너보기 어려웠네. 내가 그러려고만 하면 이 사람은 화가 나서 내게 욕을 퍼붓고 사납게 손찌검까지 하니 말일세. 여기서는 알키비아데스가 그런 행동을 못하게 좀 말려주게. 그가 손찌검을 하려고하면 나를 지켜주게. 그의 미친 듯한 행동과 강력한 애착에 정말 몹시 겁이 나네.”

질투와 시기심에 가득차 앙탈을 부리는 연인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을 ‘새로운 연인’에게 호소하는 인물이 누구일 것 같은가. 이건 소크라테스의 열광적인 추종자 플라톤이 <향연>에서 그린 스승 소크라테스의 멘트다.

파티장에 술 취해 뒤늦게 나타난 ‘주폭’은 바로 알키비아데스다. 그가 바로 아테네 최고 지도자 페리클래스의 양아들이다. 그는 장동건이나 원빈을 능가하는 ‘그리스 최고의 미남자’이자 고대 올림픽의 마차경주 대회에서 1~4위까지 휩쓴 스타였다. 

그 청춘스타가 뭣 때문에 늙은 철학자에게 사랑을 구걸한단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예수나 석가처럼 독신남이 아니다. 그의 처 크산티페는 3명의 자녀를 낳았다. 또 그가 크산티페 외에, 정치가 아리스테이데스의 손녀 뮈르토라는 처를 한 명 더 둔 중혼자였다는 설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역사적인 악처로 그려지는 크산티페의 불명예를 상당히 해소할 수도 있겠다. 시앗(첩)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우리네 속담도 있으니.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여성들과만 사랑한 게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나이든 남자가 젊은 남자와 동성애를 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둘은 연인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장년인 사랑하는 자, 에라스테스가 소년인 사랑받는자, 에라스테스에게 삶의 지혜를 소년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리스에선 이 둘의 관계를 파이데라스티아, 즉 ‘소년애’라고 했다. 그래서 소년이 사춘기가 지나 성인이 되면 의형제 같은 관계로 발전했다. 소크라테스는 당대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멋있게 생겼느냐. 아니었다.

 아카데미에 있는 못생긴 소크라테스 좌상/ 사진 조현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설립한, 고대 학문의 요람인 아카데미/ 사진 조현

아테네인들이 민주광장이 있던 아고라 구역/ 사진 조현

파르테논신전 아래 있는 아크로폴리스 극장/ 사진 조현

아테네 시내 아카데미에 서 있는 좌상이 말해주듯 이마는 툭 튀어나오고 코는 들창고인 천하의 추남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향연>에서 자신이 초청해 붙잡은 첫날밤에 소크라테스가 자기를 얼마나 ‘쪽팔리게’ 했는지 전하며 “선생님이 괴물처럼 못생겼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들을 때면 나의 심장은 종교적 열광에 사로잡혔을 때보다 더 빨리 뛰고 얼굴엔 눈물이 흐른다”며 “그의 성격과 자제력과 용기를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알키비아데스는 또 소크라테스가 자기와 포테이다이아 전투에 참전했을 때 “우리가 포위당해서 식량 없이 지내게 되었을 때, 누구도 소크라테스만큼 잘 참지 못했고, 보급이 충분할 때는 누구도 소크라테스만큼 잘 먹는 사람이 없었고, 그는 강권당할 때만 마시지만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으며, 내가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 나를 살려주었다”면서  그가 얼마나 침착하고 용기있는지를 찬양했다.

공원 메인 길에서 왼쪽 샛길을 따라 올라가니 소크라테스 감옥이 나온다. 범인을 가두기위한 건물을 지은 게 아니라 천연 동굴이다. 그 동굴에 철창을 만들어 감옥으로 쓴 것이다. 어쩐지 소크라테스와 꼭 어울려보이는 감옥동굴이다. 철장 너머엔 누군가 던져놓았을 꽃 한송이가 있다.

감옥동굴 앞에는 서유럽에서 수학여행을 온듯 수십명의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이 설명을 하고 있다. 동굴 옆으로 윗쪽으로 올라가는 급경사로가 보인다. 동굴 위쪽으로 올라가니, 숙박비가 없는 키스족이 소크라테스 감옥 위에서 열애중이다. 감옥 위에서 파르테논 신전과 아테네의 구시가지들이 펼쳐져 있다. 눈 앞은 절경이고, 이 근처는 잡풀이 우거져 있다. 아베크족들이 숨어서 키스를 하기엔 그만이다. 더구나 지상 최고의 철학자라는 소크라테스도 남녀를 가리지않고 사랑을 했다니.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자신의 도그마에 가둬 육체적 사랑 같은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박제를 만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지만, 그를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정도로만 여기는 것은 더욱 우스운 일이다.

독배를 마시면서도 육신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소크라테스다. 동굴 감옥도 가둘 수 없고 독약으로 죽일 수 없는 자유혼이 묻는다.

 “너 자신을 아는가. 육신이 그대의 전부인가. 그대는 육체의 노예인가.”

    아테네/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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