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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이유없이 죽어간 유토피아의 노예들

등록 2012-07-12 00:25

 

      <1> 이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그리스정교회수도원공화국 아토스산    <2> 그리스신화 12신은 어디로 갔나-신들의 고향 올림포스산    <3>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하늘에 걸린 수도처, 메테오라    <4>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우주의 배꼽, 델피 신전        <5>엘리트들이 우리를 지켜주는가-전사들의 나라, 스파르타      <6>인간은 무엇으로 위대해지는가-소크라테스의 아테네     <7>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_에개해의 섬들   <8>왜 속고 살까-트로이의 목마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 동상/ 사진 조현

 플라톤의 이상국가 모델…기형아는 죽이는 등 엘리트주의   노예 등 약자 왕따하던 그들, 지금은 그리스 안에서도 왕따      그리스 사람들은 스파르타에 대해 뜨악했다. 어떤 이들은 “왜 가려고 하느냐”고 물으며 “가봤자 별 볼 게 없을 거”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와 함께 패권을 겨뤘던 그들에 대해 테살로니키에서도, 아테네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의아하다. 그리스 1천만 가량의 인구 가운데 절반이 모여사는 중심부인 아테네보다 더 세계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아테네의 현자 플라톤이 이상국가로 여겼던 스파르타가 아니던가.

 그런데 스파르타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별 볼 일이 많다. 아테네의 버스터미널에서 스파르타행 버스에 오르려는 순간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갑자기 쓰러진다. 간질 발작이다. 잠시 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일어나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저 청년이 고대 스파르타에서 어린시절 발작을 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파르타에선 아이가 불구나 기형이거나 간질병이 있거나 병약할 경우 타위게톤산기슭에 있는 깊은 구덩이인 이른바 ‘아포데타이’, 즉 ‘내다버리는 곳’에 버렸다. 처음부터 건강과 체력을 타고나지 못한 아이는 아이 자신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죽는 게 낫다는 게 스파르타 국가 지도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들만이 7살이 되면 부모와 떨어져 ‘아고게’라는 소년학교에 들어가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달리기와 씨름, 검술, 승마부터 도둑질까지. 훈련은 30세까지 계속됐다.    
스파르타로 들어가는 길/ 사진 조현   
  스파르타 시립경기장 앞에 있는 레오니다스왕의 동상/ 사진 조현  
  스파르타 시내의 건물 벽에 붙어있는 영화 <300> 포스터. <300>은 스파르타 레오니다스왕의 300인의 결사대에 관한 영화다. /사진 조현  

 7살이면 부모와 떨어져 소년학교 입학…소녀도 건강한 ‘자궁’ 위해 단련    장거리 여행이니 버스에서 잠을 청하려는데, 바로 뒷좌석에 앉은 젊은이가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작한다. 자기집 안방처럼 목소리가 크다. 통화는 다음 터미널이 나올 때까지 한 시간 넘게 지속됐다. 거기다 기사는 운전중 담배를 피고, 도시락까지 먹는다. 만약 고대 스파르타였다면 이들도 여지없이 ‘아웃’이다.

 스파르타 남자들은 15명 가량씩 한 집단을 이뤄 공동으로 식사했다. 공동식사 단원이 되려면 기존 단원들의 심사를 거쳤다. 단원들은 각자 빵조각을 손에 쥐고 있다가 하인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돌면 그것을 마치 투표용 조약돌처럼 말없이 바구니 안에 던져 넣었다. 새로 들어오길 원하는 사람의 가입을 허용하면 그대로 넣지만, 가입에 반대하면 빵을 손안에서 찌그러뜨린 뒤 넣었다. 그래서 바구니 안에서 찌그러진 빵이 한 조각이라도 발견되면 신입 지원자의 가입은 거부됐다. 그러면 ‘시민’행세를 할 수 없었다.

 중간기착지인 트리폴리에서 뒷문 쪽으로 한 60대 가량으로 보이는 여인이 올라온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 몸무게가130~140킬로는 되어 보인다. 배까지 덮은 젖무덤은 웬만한 성인여성의 엉덩이보다 두세 배는 커보인다. 옆에서 건강한 아들이 부축을 하는데도 좀체 오르지 못한다. 무게도 무게지만 무릎 관절염 때문에 아파서 발을 옮기기 어려운 모양이다. 할머니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내 앞에 앉은 분과 함께 할머니를 앞에서 끌어 올리며 힘을 보탠다. 세 계단을 오르는데 5분이 넘게 걸린다. 

 고대 스파르타였다면 그 역시 ‘아웃’이다. 스파르타의 여인들은 어느 여성들보다 강인했다. 아테네의 여인들이 남성들과는 달리 거의 집에 틀어박혀 지낼 것을 강요 받은데 반해 스파르타에선 소녀들이 달리기, 레슬링, 원반던지기, 창던지기로 신체를 단련하게 했다. 소녀들이 집안에만 갇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연약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여성다움을 버리게 했다. 그래서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속옷 차림으로 거리를 행진하거나, 어떤 축제에선 젊은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게 했다. 여기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자궁 안에서 태아가 뿌리 내릴 때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하게 출발해 더 잘 자라게 하기 위함이었다.    
영화 <300>에서 아고개란 소년군사학교에서 훈련받은 소년 레오니다스가 늑대와 맞서 싸우는 장면/사진 <300>에서  
  공을 가지고 남자아이들과 함께 노는 스파르타의 소녀들/ 사진 조현  

 페르시아 침략 맞서 목숨 건 레오니다스왕 동상이 중앙로에    버스는 이토록 별난 사람들을 싣고 분지와 산악지대를 넘는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그 앞에 평지가 펼쳐져 있다. 천혜의 산에 쌓인 평야, 바로 스파르타다. 

 스파르타 버스터미널은 시내 외곽에 있다. 버스에서 내려 몇 명에게 길을 묻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못 찾은 경우는 그리스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지도를 보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길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다. 다른 도시와 달리 바둑판처럼 길이 십자로 펼쳐져 있다. 규모는 우리나라의 읍내 정도다. 

 20여 분 걷다보니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카페 앞에 앉아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있다. 스파르타의 중심가인 모양이다. 그런데 수십 명이 동시에 쳐다본다. 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외국인을 본 듯 신기한 반응이다. 이것도 그리스의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영화 <300>의 주인공 레오니다스왕이다. 그는 페르시아의 침략 때 시간을 벌기 위해 직접 결사대를 이끌고 테르모필라이의 통로를 지켜 국가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며 용기 있게 마지막까지 항전해 스파르타 정신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중앙로 끝에 칼과 방패를 들고 서있다. 식스팩 복근을 지닌 섹시남인데다 죽음의 전선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그 비극에 어느 누가 고개를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영화에서 그의 역을 맡은 제랄드 버틀러와 아주 닮은 모습이다. 

 동상 뒤는 잔디가 깔린 축구장과 트렉을 갖춘 경기장이다. 잔디구장에선 스파르타의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고, 트렉에선 한 여성이 각선미를 뽐내며 조깅을 하고 있다. 

트로이를 멸망에 이르게 한 헬레나도 스파르타의 여인이다. 옛부터 스파르타의 여인들은 아름답기로 명성이 높다. 아름다움에 건강미까지 넘치니 과연 스파르타의 여인이다.    
스파르타의 영웅 레오니다스왕/ 사진 영화 <300>에서  
  방치된 고대 스파르타의 아크로폴리스 유적지 뒤로 스파르타시와 설산이 보인다/ 사진 조현  
  고대 스파르타의 아크로폴리스 구역/ 사진 조현

   자신이 만든 법 손 못대게 맹세 받고 고국 떠나 곡기 끊고 죽은 왕    경기장을 나올 무렵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친김에 아크로폴리스란 푯말을 따라 경기장 뒷쪽 야산으로 올라간다. 늙은 올리브나무들이 서낭당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유적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올리브나무와 풀숲에 방치돼 있다. 

 고대 스파르타 아크로폴리스는 생각보다 상태가 양호하다. 비록 대리석 돌기둥들은 쓰러져 있고, 계단의 상당부분이 흙과 풀 속에 묻혀 있지만, 만약 복원한다면 어느 도시의 고대 유적보다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테네의 유적들과 달리 이렇게 버려져 있다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국가의 슬픈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스파르타 시내를 걸으면서 소녀들이 축구공을 들고 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레오니다스 신전이 있는 곳엔 한 손에 기브스를 한 소녀가 아빠와 축구공으로 놀고있다. 여기저기서 여자아이들이 축구공으로 노는 것도 그리스의 다른 곳에선 보지 못한 풍경이다.

 운동하는 이들이 많은 것과 달리 레스토랑과 카페가 다른 도시에 비해 적다. 그나마 문을 연 레스토랑도 손님이 별로 없어 한산하다. 큰 슈퍼들은 여러 개가 있는 것을 보니, 스파르타 사람들이 외식보다는 집에서 식사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절제하기보다는 삶을 즐기는 걸 좋아하는 현대 그리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라 보인다.

 고대 스파르타의 특성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모든 스파르타를 만든 이는 기원전 7세기 인물 리쿠르고스다.   그는 지상의 왕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인물로 추앙받았다. 대부분의 그리스의 지도자들이 명예를 그 무엇보다 중시한 것처럼 그도 명예를 중시할 뿐 다른 사심은 버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을 차지한 조선시대 수양대군과 전혀 다른 면모가 이를 말해준다. 

 리쿠르고스는 정치인들로부터 자신이 돌아오기 전엔 법을 바꿀 수 없다는 맹세를 받은 뒤 고국을 떠나 곡기를 끊고 죽었다. 자기가 만든 법을 영원히 바꾸지 못하도록.

 스파르타는 그 이후 500여 년간 리쿠르고스의 법을 준수하면서 그리스의 300여 개 도시국가 가운데 일등국가의 명성을 유지했다. 그는 토지를 모두 공동출자해 다시 분배함으로써 평등사회를 만들었다. 정치, 교육, 군사제도를 만든 것도 그였다. 그는 경제 쇄국정책을 취해 외국과 교류를 금했다.     
영화 <300>의 에피알테스. 곱추로 태어나 죽게되자 그의 부모가 그를 데리고 이웃 도시국가로 망명해 키웠다.  신체적 기형임에도 부모로부터 스파르타 전사의 정신교육을 받은 그는 스파르타 결사대의 일원으로  싸우기를 원하지만 레오니다스왕에 의해 거부된다./ 사진 <300>에서  
  고대 스파르타 아크로폴리스 구역에 있는 늙은 올리브나무. 방패를 든 에피알테스를 연상케한다/ 사진 조현  

  젊은이들 단련 위해 죽기 직전까지 채찍질한 의식 치른 제단    하룻밤을 묵은 뒤 아침 일찍 북쪽마을 외곽에 있는 아르테미스 오르티아 신전으로 향했다. 아르테미스는 신화에서 ‘사냥꾼’이다. 이곳에선 디아마스티고시스란 특유의 의식이 행해졌다. 디아마스티고시스란 젊은이를 단련시키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채찍질해서 제단을 피로 물들이는 것이다. 

 시청 옆에 있는 국립고고학박물관으로 향했다. 중앙 분수대 옆에 있는 박물관 마당엔 목 잘린 조각들이 8개쯤 서 있다. 영화 <300>에 나오는 최후 전사들의 목잘린 모습을 연상케 한다. 

 박물관은 단층에 단촐하다. 아테네의 세계적인 고고학발물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레오니다스 조각상을 비롯해 볼 만한 조각들이 있다. 스파르타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주로 전쟁의 조각들이 많다. 

 여성 큐레이터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수상한 간첩 보듯 하면서 회피한다. 뭔가 닫히고 폐쇄적인 모습은 그리스에서 유독 스파르타에서 느낀 것이다.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갔다가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란 동요를 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한쪽에선 기원전 마케도니아의 주도로 페르시아에 맞설 때 스파르타가 그 동맹에 함께 하지 않아 그때부터 그리스 내에서 왕따를 당했다고 하는데, 그런 피해의식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스파르타인들이 그리스 내에서 당하는 왕따는 고대에 스파르타의 피정복민인 헤일로타이가 당한 왕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스파르타는 이웃 도시국가를 정복해 그 도시인들은 노예로 삼았다. 헤일로타이다. 스파르타인들은 그들에게 개가죽 모자와 가죽 조끼를 입혔다. 그리고 노예임을 잊지 않도록 반항 여부와 상관 없이 연중 일정한 수의 매를 때렸다. 그리고 전쟁에 데리고 가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그들 중 승리의 주역이 될 만큼 용맹스럽고 건강한 노예들은 상을 내리겠다며 모이게 해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스파르타에선 젊은 전사들 중에 뽑힌 크립테이아란 비밀경찰이 들판에 다니면서 건장한 헤일로타이들을 언제나 죽일 수 있었다. 잠재적 반란을 도모할 수 있는 이들의 싹수를 자르는 살인 면허였다.    
스파르타 시립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사진 조현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과 전사들/ 사진 영화 <300>에서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로,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은 등대로    영화 <300>에선 곱추 스파르타인 에피알테스가 레오니다스가 있는 골짜기로 통하는 길을 페르시아에 가르쳐준 반역자로 나온다. 에피알테스는 장애 때문에 버려지게 되자 차마 자식을 죽일 수 없던 그의 부모가 외국으로 도망쳐 키웠다. 그는 레오니다스에게 페르시아와 싸우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레오니다스는 끝내 “물이나 나르라”며 거부한다. 그러자 에피알테스는 자신을 전사로 만들어주겠다는 페르시아왕의 편에 선다. 장애인과 노예 등 시민보다 10배 가량이나 많은 다수를 배신한 것은 스파르타의 전사 즉 소수의 시민이었던 셈이다.

 전사들은 그토록 원한을 쌓으며 많은 노예들을 다스려야 했기에 잘 싸우고 강해지고 금욕적이며 절제해야 했다. 그래서 하루도 편히 쉴 수 없었던 사람들의 국가를 플라톤은 이상국가로,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의 모델로 삼았고,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은 등대로 여겼다. 열성은 배제하고 우성만을 잘 키우자는 우리나라의 엘리트교육론자들에 이르기까지. 

 하소연할 데 없이 수천 년간 스파르타의 골짜기를 맴돈 영혼들의 소리 없는 외침일까. 스파르타의 바람이 유독 깊게 살을 엔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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