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최고봉으로 12신이 산다는 올림포스산 사진 조현
<1> 이 세상에 여자가 없다면-그리스정교회수도원공화국 아토스산 <3>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하늘에 걸린 수도처, 메테오라 <4> 세상의 중심은 어디인가-우주의 배꼽, 델피신전 <5>엘리트들이 우리를 지켜주는가-전사들의 고향, 스파르타 <6>인간은 무엇으로 위대해지는가-소크라테스의 아테네 <7>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에개해의 섬들 <8>왜 속고 살까-트로이의 목마 <2> 올림포스산 12신은 어디로 갔나-신들의 고향 올림포스산
욕망과 욕정의 신들, 설산 내려와 ‘지금 여기’ 부활
무지개여신 달콤한 유혹…중턱 산장엔 예수와 마리아만 ‘제우스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피투성이 희생양들 처연 아테네에 이은 그리스 제2의 도시 데살로니키다.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와 신약인 <데살로니키전서>를 쓴 그 도시다. 터미널 이름이 마케도니아역이다.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재위 기원전 336~323)라는 영웅을 배출한 도시국가다. 알렉산드로스는 300여 개의 도시국가만이 있었던 그리스를 평정했고, 그의 사후 쇠락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146년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1830년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그리스왕국이 출범하기 전 그리스라는 나라는 애초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리스 문명과 함께 지난 2천 년 동안 지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히브리문명의 원조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 전 2천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올림포스산 아래 도착하자마자 온 이리스(무지개)여신 사진 조현
▶짐을 막 풀고 밖으로 나오자 제우스신이 전령을 보내왔다 마케도니아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올림포스산을 향해 달린다. 알렉산드로스가 올림포스 신들의 축복을 받기 위해 갔던 그 길이다. 마케도니아의 전쟁 영웅인 필립포스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원정을 떠난 부친 대신 16살 때부터 마케도니아를 통치했다. 부친이 죽자 20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21살엔 그리스를 평정하고, 22살 때부터 동방 원정에 나섰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되어 이집트와 페르시아, 인도까지 드넓은 세계가 그의 발 아래 엎드렸다.
그리스에 이렇게 설산이 많다니 놀랍다. 데살로니키에서 올림포스산까지 버스로 2시간 동안 앞면도 왼쪽도 오른쪽도 눈 쌓인 영봉이 펼쳐져 있다. 그가 간 종착점 북인도처럼 지천이 설산이다. 알렉산드로스보다 200여 년 먼저 태어난 북인도의 싯타르타(기원전 563?~BC 483?)도 왕자였다. 태어나자 마자 석가는 아시타선인으로부터 “전륜성왕(세계 대왕)이 되거나, 출가하면 부처가 될 것”이란 예언을 받았고, 알렉산드로스는 “제우스신의 아들”로 점지됐다. 제우스는 신계의 제왕이므로 그의 아들이 세상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알렉산드로스 왕자는 제우스의 아들답게 불과 20대에 고국 마케도니아의 이름을 세상에 드높였다. 그러나 29살에 출가한 싯타르타는 자신을 따르던 코살라국의 비유리왕이 고국 카필라국의 동족, 석가족들을 몰살하는 것을 더 말리지 못하고 나무 아래서 눈물만 훔친 무력한 왕자였다.
예수도 300여 년의 시차가 있지만 알렉산드로스처럼 33살에 불꽃 같은 인생을 마쳤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 구세주는 십자가 위에서 허무하게 죽었다. 놀라운 권능을 발휘해 로마의 압제의 사슬을 끊어줄 것이란 추종자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현세의 패배자인 싯타르타나 예수와 달리 현세에 모든 영광을 드러낸 그 알렉산드로스가 ‘아버지’로 여긴 제우스가 산다는 올림포스산이다. 산기슭의 게스트하우스에 막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자 곧바로 제우스로부터 전령이 왔다. 이리스(무지개) 여신이다. 일곱 색의 찬란한 무지개가 하늘과 살로니키만의 바다를 잇는다. 그리스신화에서 이리스 여신은 지상의 인간 세계는 물론이고 바닷속 세계까지도 두루 다니며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사자로 여겨진다.
신들의 거처가 될법한 올림포스산의 동굴 사진 조현
▶계곡 옆 널부러진 나무들, 그의 천둥 벼락 ‘신공’의 흔적일까 이리스 여신을 보내 초대해준 제우스 신의 성의를 어찌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트레킹철이 아니라는 만류에도 올림포스산을 향한다. 올림포스산은 높이 2917미터로 그리스 최고봉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가 하늘에 가장 가까운 높은 산에 지은 황금 궁전에 산다고 생각했다.
올림포스산도 지리산 성삼재 정도의 높이까지 차로가 있다. 1천 미터 높이까지 택시로 30~40분 가량 오르니 산장이다. 그곳부터는 걸어야 한다. 트레킹철이 아니어서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바위와 나무에 낀 이끼들이 무성히 자랐다.
신화에선 올핌포스엔 거대한 구름의 문이 있어서 사계절의 여신들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구름과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시야가 막히면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올림포스산은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생물권보호구역이기도 하다. 이곳엔 17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늑대·곰·스라소니도 산다고 한다. 신들이 이런 야생동물들보다 덜 위험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이곳에선 야생동물보다는 신들을 더 믿고 싶다. 계곡으로 물 마시러 온 곰이나 스라소니와 조우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계곡 옆에 벼락 맞은 나무들이 유난히 많다. 그리스 신화에서 벼락과 천둥은 제우스의 전용 무기다. 뭐 힘자랑할 데가 없어서, 나 같은 비폭력주의자에게 힘을 자랑할까마는, 반으로 댕강 부러진 나무들을 보니 섬뜩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그려진 제우스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황금 밧줄로 모든 신들이 자기 반대편에 서도 끌어당겨버릴 수 있고, 대지와 바다가 매달려도 당겨버릴 수 있다는 제우스다. 한마디로 "네 까이거 한꺼번에 다 덤벼봐라"다.
이런 제우스를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버지를 죽이고 천하의 지배권을 손에 넣고, 자신을 넘볼 것 같으면 자식도 잡아먹어버리는 제우스다. 인간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홍수를 일으켜 멸망시켜버리기도 한다. 분노와 살육에 있어서 그 못지않은 <구약>의 야훼 신과 일합을 겨루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성성 짙게 우뚝선 바위 사진 조현
여성성을 느끼게 하는 바위 사진 조현
▶거시기 바위 옆엔 바람둥이 남편 감시하는 헤라 바위가 눈 부릅떠 30~40분 정도 오르니 눈이 쌓여 있다. 설산 등산 장비가 없어서 더 전진하기 어렵다. 황금궁전을 못 보고 돌아서니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정작 뒤돌아 내려오면서 보니 오를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남성의 거시기처럼 남성성이 넘치는 바위가 있다. 몇 발자국 옆엔 가로로 쩍 갈라진 틈새가 있는 바위가 앉아 있다. 바람둥이 제우스를 감시하는 부인 헤라의 바위라고 할 만하다.
제우스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여신과 인간에게 접근해 사랑을 탐한다. 그리스에서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들의 대부분은 제우스와 인간들 사이에 태어난 이들이다.
제우스는 사랑을 취하는 데 능력을 아끼지 않는다. 레다에게는 백조로, 에우로페를 소로 변신해 접근한다. 알크메네에겐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 그 남편으로 변장해 욕정을 불태운다. 올림포스 신들에게서 죽이고 질투하고 바람을 피우고 강간하고 근친상간하고 동성애를 하는 것은 밥 먹는 것과 같은 일상사다.
눈 내리는 올림포스산 사진 조현
올림포스산 위의 유일한 집 올림포스산장에서 필자
미끄러운 이끼에 넘어지지 않고 산장까지 내려왔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산장으로 들어가 벽난로 옆에 앉는다. 올림포스산의 유일한 집인 이 산장 안에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흔적이 없다. 대신 놀랍게도 이곳조차 그리스정교회의 제단이 마련돼 있다. 제우스를 대신해 예수와 마리아의 성상이 모셔져 있다. 신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신화에서 올림포스산에서 신들이 사는 곳은 바람도 없고, 비도 눈도 내리지 않은 채 눈부신 햇살만 쏟아지는 축복의 땅이라고 한다. 하지만 날은 흐려서 금방 비나 눈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더니 마침내 눈이 쏟아진다. 올림포스 산장 창 밖으로 함박눈이 축포처럼 쏟아진다. 함박눈은 금새 땅을 하얗게 덮어버린다. 고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신들의 마음만큼이나 비위를 맞추기가 어렵다.
하산은 트레킹이다. 길은 급경사로 계곡 옆으로 나 있다. 오솔길이 있던 쪽의 경사가 너무 급해지면, 나무다리를 놓아 계곡 건너편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협곡 같은 계곡을 끊임없이 이쪽으로 건넜다가 저쪽으로 건너가야 한다. 전체적으로 바위로 이뤄진 올림포스산에서 계곡을 건너가 불현듯 신화 속의 한 장면 같은 바위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마치 신화 속의 신들이 잠시 바위로 변신술을 부린 것처럼.
가장 인상 깊은 바위의 모습은 굴러떨어질 듯한 거대한 바위를 위로 올리는 듯한 모습이다. 신화속 시시포스다. 시시포스는 제우스에 반항했다가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다. 그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형벌이 영원히 되풀이된다고 한다.
번개신 제우스의 부조 사진 조현
도대체 시시포스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기에 사형보다 더 지독한 벌을 받게 된 것일까. 제우스가 분노한 이유를 알고보면 기도 안찬다.
제우스는 아이기나에게 반해 그를 어떻게 손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독수리로 변해 낚아채어 오이노네섬으로 납치해간다.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의 신’ 아소포스는 딸을 찾아 그리스 전역을 헤매다가 코린토스에스 시시포스왕을 만나 제우스와 딸의 행방을 좀 가르쳐달라고 사정한다. 아이기나가 자기 아크로폴리스에 분수를 만들어 헌납하자 시시포스왕은 제우스가 있는 곳을 가르쳐준다. 아소포스는 딸을 찾아 제우스와 아이기나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제우스는 화가 난 나머지 벼락을 쳐 아소포스를 태워 죽인다.
죄도 없이 벼락을 맞은 것은 아소포스만이 아니다. 제우스의 부인 헤라의 분노도 제우스 못지않다. 헤라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에 앙심을 품고, 자기 연적인 아이기나의 이름을 딴 아이기나를 파괴하려고 무서운 역질을 내려보내 수많은 백성들을 죽게한다.
시시포스라 명명할만한 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프로메테우스라의 불릴만한 바위도 있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이름을 지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하늘의 불을 주었다는 이유로 제우스의 분노를 사 바위의 쇠사살에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이 다시 자라 고통을 계속 받게 됐다고 한다.
제우스는 수많은 자기 자식들 가운데 누군가는 언젠가 자기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하늘 신들의 주거지에서 몰아낼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누가 될 것인지 그 비밀은 프로메테우스만이 알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바위에 묶어 간을 쪼이는 형벌을 주고 더한 위협을 가해도 굴하지 않은 채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웅 헤라클래스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먹던 독수리를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구해냈다는 소식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죄라면 인간을 사랑한 죄다. 제우스가 인간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켰을 때도 이를 눈치채고 피난시켜 인간 종족을 유지케 한 것도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은 신의 상징인 빛을 인간에게 전해 인간도 신과 같은 빛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대가 세상의 최강자인 제우스라 하더라도 이에 굴하지 않고,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한 인류는 과연 제우스의 모습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올림포스산의 디오니소스 동굴 사진 조현
디오니소스 성인이 수도했다는 동굴 안에 모셔진 그리스정교회의 성상들 사진 조현
엉겨붙은 눈 때문에 고어텍스 재킷조차 물먹은 하마처럼 부풀어 올랐다. 날은 어두워지고, 춥다. 불안이 엄습한다. 집도 옷도 갖추지 못했던 원시인의 심리 상태가 이럴까. 비로소 올림포스의 바위와 나무들과 안개와 바람이 불안을 틈타 정령이 되고 신화가 된다.
6시간 동안 내려오니 밤이다. 젖은 채로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는데, 북유럽에서 온 듯한 여성이 다가선다. ‘내일 올림포스산 트레킹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꼴을 보고도 굳이 가겠다니 말릴 수 없다. 하지만 마지못해 안내해준다. 아름다운 그 여성이 제우스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를 빌면서.
올림포스산에 둘러싸인 고대신전터 디온의 모습 사진 조현
▶페르시아와 아시아의 민초들의 신음이 비를 타고… 다음날 아침 간 곳은 ‘고대 디온’이다. 올림포스신들을 모셨다는 고대 신전이다. 올림포스 설산에 둘러싸인 디온은 10만 평도 더 되어 보이는 드넒은 공간에 펼쳐져 있다.
알렉산드로스와 군인들이 동방원정을 떠나기 전 기도하며 묵었다는 야영지에서 100미터 정도 가니 제우스 신전 터다. 빗속에 서 있는 표지엔 알렉산드로스가 동방원정을 떠나면서 제물로 소 100마리를 바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소들의 주검 옆엔 도끼를 든 전사를 마주한 소가 서있다. 처연하다.
테살로니키에서 서있는 알렉산드로스동상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침략에 나서기 전 승리를 기원하며 제우스신전에 소 백마리를 죽여 바치는 장면의 그림 사진 조현
때마침 내린 비가 신전의 우거진 잡초를 스친다. 그래서 영웅의 손에 죽어간 페르시아와 아시아의 무수한 민초들의 신음 같은 울음을 들려준다. 이 소들이 바로 무력하게 죽어간 석가족과 이스라엘 백성과 순교자들이 아닌가. 아니다. 십자가를 앞세운 십자군의 칼에 쓰러진 중동의 희생양들이며, 선교사들을 앞세운 노예상들에게 끌려가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다. 일본불교 선승들의 기도로 황군의 깃발을 높이든 일본군의 칼에 쓰러진 아시아의 민중들이다. 욕망의 올림포스신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우리들의 마을로,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내려왔는가.
올림포스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