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철책과 철망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 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구상시선집 <한알의 사과 속에는>(구상 지음, 장원상 엮음, 홍성사 펴냄)에서
구상(1919~2004)=원산 근교 덕원의 성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 수료 후 일본으로 밀항해 일본 니혼대학 종교과 졸업. 1946년 원산에서 시집 <응향> 필화사건으로 월남. <북선매일신문>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20여년 넘게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시와 사회평론을 썼다.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가 깊어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시계를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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