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작.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 사진 <예술가들의 대화>에서
시대를 타고 넘어가며 좌우지간 가야 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 조금 넘어가기는 계산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왕창 뛰어넘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잊어버렸어. 내 일도 바쁜데 내가 어딜 뛰어넘으려고….
심산 노수현 선생이라고 나 학교 다닐 때 미대 교수했던 양반이 있어. 일제 강점기 때 서울역 근처 어디에서 술 마시기 대회를 하는데 이 양반이 거기를 갔어요. 아주 큰 공간이었는데, 아래층에서 한 잔을 먹는다. 그리고 2층으로 가. 거기서 또 한 잔을 먹어. 그 술 대회는 말이 필요 없어. 한 잔을 비워야 한 층을 올라갈 수 있어. 10층까지 가장 빨리 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일등으로 일본 사람이 올라갔대요. 노수현 선생이 이등을 하고, 그런데 일등은 쓰러졌대. 이등은 안 쓰러졌어. 그래서 자기가 일등이라고 우겼지.
그날 밤이었던가. 어떤 조그만 사람이 남대문을 향해 달려가다가 딱 서. 다시 뒤돌아가 또 남대문을 향해 달려가다 딱 서. 그걸 계속하더라는 거지.한밤중에 자꾸 그러니까 파출소에서 불러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대. 대답하기를, "저쪽에서 보니까 남대문이 작게 보여서 뛰어넘으려고 했다"는거야. 달려가니까 커져서 못 넘고, 다시 뒤로 가니까 또 작아져셔…. 그걸 계속했대. 그게 노수현 선생이야.
그런 기백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일제강점기 때 노수현 선생은 친일 그림도 안 했어. 아주 지독한 양반이지. 일장기 그림이나 비녀 뽑아 바치는 그림 그리라고 했는데 안 그릴 수는 없고 해서 산수 그림을 냈다고 그러더라도. 읻동재오 확 뛰어넘어. 젊은 기대로.(최종태 서울대 미대 교수와 이동재 작가 대화편)
`현대 예술가 20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예술가들의 대화>(김지연,임영주 엮음, 아트북스 펴냄)에서
이 시대 최고 작가와 신진작가 10쌍의 예술세계와 삶에 대한 심층 대화
대담 작가: 최종태-이동재, 박대성-유근택, 고형훈-홍지연, 배병우-뮌, 이종구-노순택,안규철-양아치,임옥상-김윤환,윤석남-이수경,사석원-원성원,홍승혜-이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