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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스티븐 호킹도 천국 갈까?

등록 2011-06-02 10:26

   신이 있다는 생각도 없다는 생각도 한 생각일 뿐

 마음 길 끊어진 곳에서 온누리 빛나는 정신의 꽃    
  영국 캠브리지대의 명예교수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천국과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종교계를 발끈하게 하고 있다. 스티븐 호킹은 최근 영국 언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천국은 없다. 사후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만들어 낸 동화일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 것도 없다”며 “인간의 뇌는 부속품이 고장 나면 작동을 멈추는 컴퓨터다.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 된 천국은 없다”고 설명했다.

 

사후세계는 좀더 리얼하게 얘기하면 ‘돈 줄’

 

사후세계의 뇌관을 터트린 게 그가 처음은 아니다. 100년 전 심리학의 태두 프로이드도 “종교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심리학자나 인문학자들에게서 ‘종교란 죽음이 두려운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란 주장을 듣기는 어렵지 않다. 죽음이 없고, 죽음 이후 보장된 ‘멋진 사후세계’가 없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다면 종교가 역사적 유물이 될 날도 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주장에 맞서, 속으로는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성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지도자들끼리 함께 손을 맞잡고 ‘포커 페이스’를 지어야 할만큼 종교연합전선이 필요할지 모른다. 종교의 영생을 위해. 사후세계는 현재 종교를 지탱시키는 에너지원이다. 좀 더 리얼하게 이야기하면 ‘돈 줄’이다.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류의 유사종교단체들은 여전히 조상 천도재를 지내야 업장을 소멸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꼬드긴다. 그래서 마지못해 아버지, 어머니 제사를 지내 해원을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조부모, 조부모 천도재가 끝나고 나면 다음은 증조부모, 증조부모가 끝나고 나면 고조부모…. 제사는 호주머니가 텅 빌 때까지 계속된다.

그들이 진짜 사후생을 믿는다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조상과 맺힌 것을 풀어준다며, 원한 살 짓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한 말은 ‘돈이 있습니까’의 은유법임에 다름 아니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은 것은 이런 유사단체들만은 아닌 듯싶다. ‘불신 지옥, 예수 천국’을 외치는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장밋빛 천국을 제시하며 그곳이 얼마나 좋은지 입에 침을 흘리며 사람들을 홀리면서도, 대형교회 목사들이 정작 자신들은 천국행을 몇 년 몇 달만이라도 늦추기 위해 서민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거액을 들여 일본과 중국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한다는 게 요즘 보수기독교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교회는 천국 마케팅, 불교는 극락 장사

 

그럼에도 ‘천국 마케팅’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내 이메일 박스엔 천국을 다녀왔다는 아이의 책을 소개하는 홍보 메일이 들어와 기다리고 있다. 어린 소년이 수많은 교회의 간증에 불려다녀 끝내 ‘마음의 천국’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지 염려될 뿐이다.

이게 개신교만은 아니다. 얼마 전에 상영됐던 <악마는 있다>란 영화는 가톨릭 본부인 로마 교황청 주도로 악마를 쫓는 퇴마사들이 길러지고, 퇴마의식이 행해지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실화’라면서. 영화에서 주인공인 젊은 신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사후세계니 귀신이니 하는 사후존재에 대해 믿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 퇴마 고수가 악마의 왕이라 할만한 바알 귀신에 씌여, 즉 귀신 들린 것을 보고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귀신 씬 나락 까먹는’ 스토리다.

불교는 어떤가. 불교는 어떤 존재도 무상하기에 무아(無我·독립된 존재로서 실체가 없음)의 진리를 주창해 영혼도 신도 믿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않다. 절 집안을 운영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 또한 천도재다. 도심의 사찰들만이 아니다. 성철 스님의 추상같은 기개를 자랑하는 해인사 같은 천년 고찰들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부산 등 도심에서 참선을 가르쳐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선원에서도 하나같이 천도재를 지내도록 유도하는 지경이다.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선의 가르침에까지 진실성에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도 인과론을 제대로 믿는다면 천도재 같은 것으로 현혹시키기보다는 현세를 제대로 살도록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불교의 인과론에 따르면 현세는 전생의 업에 의해, 미래는 현재의 업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전생을 알고 싶다면 지금 내 삶을 보면 되고, 내 후생을 알고 싶어도 역시 지금 내 삶을 보면 된다고 했다.

이것은 전후생의 존재 여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일단 논외로 비켜두더라도, 장애인이나 빈자나 약자로 태어난 이들에겐 현세의 삶을 통해 전혀 다른 생을 살 수 있게 된다는 희망을 주고, 강자에겐 현실에 대한 책임을 강화시키는 지혜의 법도이다. 인도의 브라만들처럼 불가촉천민들에 대해 ‘너희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평생 노예로 나 같은 성직자들을 떠받들며 살게 하라’고 하는 술책이 아닌 것이다.

자신들도 제대로 믿지도 않는 천국이나 극락을 내세워 혹세무민을 하니 스티븐 호킹이 ‘사후세계나 천국은 동화일 뿐’이라고 한 말은 이런 종교계 풍토에 대한 똥침인 셈이다.

 

종교인 영혼놀음도 그렇지만 의료인 생명놀음도 끔찍

 

하지만 그의 말로 인해 ‘오직 현세의 삶’밖에 없다면, 현생을 연장하거나 현생을 쥐락펴락하는 의사가 신적 권위를 대행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신의 대행자로 종교인이 아닌 의사가 나설 세상이 덜 끔찍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종교인들이 영혼놀음을 하는 것보다 의료인들이 생명놀음을 하는 것이 조금도 낫게 보이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영계에 가보았다는 임사체험 증언자들 중에서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다녀오고, 극락세계를 다녀왔다고 해서 몇년 전 우리나라 절 집안을 풍미했던 관정대법사란 중국 스님 같은 불자는 극락을 체험하니, ‘믿는대로 경험한다’거나, 결국 자신의 마음이나 뇌에 새겨진 것의 투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일체가 뇌의 작용뿐이라면 스티븐 호킹의 말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인들의 풍토가 한심하다고 해서 스티븐 호킹의 손을 무조건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물리학자이긴 하지만 사후세계나 천국은 없다고 한 것은 과학적 검증을 통한 보고서라기보다는 무신론이란 종교적 신념을 설파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안에서도 다양한 신관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우주의 어느 한쪽에 지구별보다 더 멋진 천국이란 별이 있고, 그곳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나오는 흰수염 난 하나님 할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제로 한 반박이라면 기독교권 전체의 신관에 대한 반박으로는 형편없는 수준인 셈이다. 하나님, 하느님, 한울님, 여호와, 구세주, 주님, 아버지, 아빠.... 그 이름만도 다양할 뿐 아니라 신에 대한 정의와 관점도 인격적인 신관에서부터 무(無)나 공(空)이 바로 신과 일맥상통한다는 신관까지 그 스펙트럼은 0-100까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음 이후를 경험했다는 수백만에 이르는 임사체험자들과 티베트에서 사후세계를 다녀온 이들을 일컫는 델록들의 기록들까지 스티븐 호킹의 말을 반증하는 자료들은 무궁무진하다. 더구나 18세기 아이작 뉴턴에 버금가는 대천재과학자로, 스티븐 호킹보다 더 한 명성을 날렸던 스베덴 보리는 천국에 간 기록을 세세히 남기기도 했다. 스티븐 호킹처럼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체험 기록을 보고한 것이다.

사후세계를 갔다느니, 영혼을 보았다느니 하는 것들의 모든 현상이 뇌가 작용을 일으켜 빚어낸 환상인지 아니면 스베덴보리의 말대로 그런 사후세계가 실재하는지는 내가 직접 다녀와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생명이 살아있으면서 생각이 그치는 상태가 휴심이며 환희

 

하지만 세상 바닷물을 다 마셔봐야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이치로 우주 전체를 파악하는 게 동양의 지혜다.

무신론이라면 석가나 역대 불교의 조사들이 더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사후세계를 팔아 호의호식하며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카스트시스템에 대한 혁명은 바로 ‘모든 존재가 부처’라는 것이었고, 개체로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치않았다.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론을 설명하는 말로 종종 사용되는 우화가 있다. ‘매화나무 안에 담긴 생명의 실상, 즉 종자를 찾기 위해 매화나무를 쪼개고 쪼개봐라 어디에 매화의 생명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매화나무를 다 쪼개봐도 생명의 실상을 찾을 수 없다고 매화나무 자체의 생명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를 설사 샅샅이 다 뒤져 자신의 눈에 띄는 신적 생명 존재를 찾을 수 없다고 신을 부인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것이다.

신이 있다는 생각도 신이 없다는 생각도 한 생각일 뿐이다. 스티븐 호킹 식이라면 뇌의 작용일 뿐이다. 스티븐 호킹은 살아있는 한 뇌의 작용, 생각은 멈출 수 없고, 몸이 죽으면 생각은 전원을 끈 컴퓨터처럼 작동이 중지한다고 본다. 그러나 생명이 살아있으면서 생각이 그치는 상태가 있다.

그것을 나는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를 ‘휴심(休心)’이며 이로 인한 현상을 ‘환희’라고 하겠다. 생각이나 마음 작용이 그치면 생물학적으로 뇌사나 죽음 밖에 연상할 수 없는 게 서구 과학적 사고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정신이 죽는 것이 아니다. 그때서야 환상에서 벗어나 진짜 세계를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야말로 ‘개체의 영혼’을 쉬어 평화의 낙원 자체가 되는 것이다. 한 송이 꽃이 말라비틀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억만 송이 꽃이 마침내 개화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천국이고 극락이라고 부르겠다. ‘영혼의 해체’가 아니라 진정한 부활이자, 진정한 삶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스티븐호킹이 루게릭병에 걸려 말라비틀어진 무같은 몸으로도 중환자실 침대에 버려지지않고 우주에 대한 과학적 정신세계를 펼쳐보였듯이, 비록 그의 몸이 미라가 되더라도 수명이 다한 컴퓨터처럼 쓰레기장으로 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스티븐 호킹이 그 신체적 장애를 딛고, 지대한 정신력을 보여주었듯이 죽음이라는 ‘다소 생소한 문’을 통과해서도 지고하고 평화로운 정신의 꽃이 시들지 않기를 기원하겠다. 몸은 시들고, 머지않아 사라지겠지만. 그의 ‘마음 길이 끊어진 곳’(휴심정)에서 온누리에 빛나는 억만 송이 꽃으로 피어나길!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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