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많지 않아서 비참한 게 아니다
비참함을 막는데는 단 한명의 친구면 족하다.
친구가 많이 없어서 불행한 게 아니다. 외로울 때 언제든 찾고 하소연할 수 있는 친구가 단 한명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살같은 것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일은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과 최진실에 이어 송지선 아나운서, SG워너비의 채동하가 자살했다. 그들이 대중의 사랑이 없어서 생을 마감한 것일까. 그들이 아픔을 나눌 단 한명의 단짝 친구라도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으리라.
가족이건 단짝친구건 애착의 관계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를 봉쇄하기도 하지만, 더 할 나위 없는 기쁨을 주기도 하고, 비참한 비애감을 막아주는 방파제이기도 하다.
어릴 시절부터 내게 단짝 친구가 있었던 것은 더 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같은 골목 단짝이던 인수가 네살 때 물에 빠져 죽은 사고가 큰충격을 주긴 했지만, 그래도 단짝 친구는 늘 내게 불행보다는 행복의 원천이었다. 부친과 함께 지내던 사랑채에서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허전함을 매울 길 없던 공간을 대신 채워준 것도 단짝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는 한 평도 안되는 단짝 친구의 방에서 한솥단지 가득 끓여놓고 아구아구 먹어대던 라면은 어찌 그리도 맛이 있었는지. 대학 때 한 친구는 3년 넘게 나를 집중 마크하며 늘 유머를 연발했는데, 누군가 ‘왜 넌 조현이 옆에만 붙어다니냐’고 묻자 ‘자기 유머에 현이 보다 잘 웃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나. 사람은 자기의 행복 뿐 아니라 남의 행복과 기쁨을 보면서도 함께 행복해지는 존재인가보다.
언젠가 누가 단짝 친구가 그리워 야밤 취중에 서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고향 친구집까지 갔더니 택시비가 25만원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별 미친 녀석’이라고 핀잔했었는데, 가끔은 그의 심정이 와닿는다. 나이가 먹어가며 날로 친구가 많아지지만, 단 한명의 친구가 더욱 더 그리워지곤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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