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은 변화의 모티브, 한계수용은 평화의 모티브
최근 인터뷰했던 분당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와 ‘인간 변화’에 대해 나눈 대화록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동원(65) 목사는 대형교회 목사이면서도 최근 거액의 퇴직 사례비와 주택을 거부한 채 정년을 5년 앞당겨 은퇴했고, 후임 진재혁(45) 목사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3년 기한으로 멘토링 목회 중이다.
교인의 심장을 파고드는 설교로 변화를 이끈다는 이 목사에게 ‘변화’에 대해 물었다.
-사람들의 변화를 모색하는데, 신앙이 과연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느냐. 사회 교육이 얼마나 변화시키느냐. 사람들이 참 변화안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변화시키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느냐.
=성경에도 악에 익숙한 너희가 변할 수 있다면 구수인이 피부가 변할 수 있으며, 표범의 반점이 없어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 변화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인간 변화가 안된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어렵지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복음이다. 목회하면서 두가지면에서 그것을 보았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가치관이나 생활이 변화된다. 회심이다. 그것이 목회의 보람이다. 진지한 회심이 일어나면 변하더라. 회심 이후 진지한 영성훈련과 진지한 제자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을 단지 커리큘럼을 끝내는 것으로 생각하면 더 이상 변화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과정중에서도 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돈 이외의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지못했으면 목회를 못했을 것 같다. 실존적인 고민도 많이 했다. 많지않지만 변화하는 사람들 보면 그게 목회고 보람이다. 그것은 포기하지않은 희망이다.
-원래 목사님은 별로 변화가 필요 없이 좋은 심성을 타고난게 아닌가.(웃음) 그렇지않은 이들도 불세례를 받았다든지. 성령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행위는 별로 따르지않는 것 같은 경우도 적지않다. 옥석을 가리기도 쉽지않다. 변화라는게 쉽게 단정하는 것도 어렵다.
=언제 사고칠지 모른다는 게지. 사실이다. 시에스 루이스가 그런 말을 했다. 신앙권 안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해보니, 그나마 신앙을 붙잡아서 그런 정도나마 와있다고 했다. 교회 안에도 변화의 정도가 같지는 않다. 병원 안에서 치료 속도가 다른 것처럼. 교회는 병원이다. 교회 안에 환자가 와야한다. 위선자등이 교회에 있다는 것만으로 교회를 욕해선 안된다. 그들이 와야할 곳이 교회다. 그러나 그들이 빨리 변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않은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병원이 문을 닫아서는 안된다. 그래도 병원은 존재해야한다.
-가까운 분들에게 최근 가장 많이 해주는 말이 뭔가.
=시편 131편을 좋아한다. 세절밖에 안된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제가 젊었을 때깥으면 안좋아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일부러 시편 설교를 안했다. 요즘은 시편을 많이 생각한다. 경계선 긋기다. 인생을 사는 모티브가 비전이다. 그러나 이것과 같이 와야할 것이 바운더리, 즉 경계선 긋기다. 거기서 시편 기자가 높은 눈을 갖지않고 낮추나이다고 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선물로 주었나이다고 했다. 비전에 금을 긋지못하면 욕망이 된다. 비전은 제 인생의 가장 큰 모티브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인간됨의 특성은 자기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가 아니라 불가능은 있다. 평화가 뭔지 알겠다. 젖을 때도 울지않아야한다. 그래야 리더들도 평화롭고 공동체도 평화로워진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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