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과 돈을 향한 욕망의 쓰나미에 누가 맞설 것인가그대가 바로 난쟁이 안에 감춰진 위대한 거인
2001년이었다. 반지원정대-두개의 탑-왕의 귀환으로 이어진 3편의 시리즈물은 역대 최고의 흥행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내용과 기술 등 모든 면에서 과거의 영화를 압도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가진 놀라운 ‘깨달음’은 화려한 영상에 가려져 관심권 밖이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은 마치 깨달음으로 가는 비밀의 코드와 같다. 그 코드를 열고 들어서면 무량광의 세계가 열린다. 이미 5억권 이상이 팔린 옥스퍼드대 교수 톨킨의 원작에 피터 잭슨 감독의 열정이 낳은 <반지의 제왕>은 영화사를 새로 쓴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세번 연속으로 <반지의 제왕> 각편이 담고 있는 비밀의 코드를 열어보자.
먼저 1편 <반지원정대>다. 이야기는 까마득한 옛날로부터 시작된다. 마치 ‘천지 창조’의 때처럼. 전지전능한 능력을 보유한 위대한 신들은 엘프족과 난쟁이족, 그리고 인간 종족을 자신들의 첫번째 세계 속에 창조하여 평화로운 삶을 살게 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오랜 동안 악의 힘에 동화된 신 사우론은 절대 악의 힘을 빌어 다른 신들을 모두 자신의 절대적 힘 아래 굴복케 해 모든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계략을 세운다. 그러나 사우론의 계략을 알게 된 나머지 신들은 사우론을 신의 세계에서 추방했다. 세력과 힘을 잃은 사우론은 인간들의 세상에 나타나 어리석은 인간들의 탐욕을 자극해 유혹함으로써 자신의 노예로 삼는다. 사우론은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전설적인 마법 반지들의 소문을 듣게 되고, 그 11개의 반지들을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남은 모든 힘을 실은 12번째 ‘절대 반지’를 만들어낸다. 절대 반지를 앞세워 세상을 지배하려는 사우론은 자신의 노예들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게 되고, 인간은 숲의 요정들인 엘프족과 난장이들과 힘을 합쳐 사우론에 맞서게 된다. 전쟁이 사우론의 패배로 끝나갈 무렵 절대반지를 낀 괴물이 등장하고 인간과 엘프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그 칼에 인간의 왕 이실도르도 쓰러진다. 왕의 아들은 이실도르의 부러진 칼로 괴물의 손가락을 잘라버린다. 그러자 사우론은 힘을 잃고 패배한다. 그 절대반지는 사우론이 그것을 만들었던 곳인 ‘운명의 산’ 화염 속에 넣어버려야만 없앨 수 있다. 이실도르는 운명의 산까지 가지만 엄청난 힘을 가진 절대반지를 소유하려는 욕심으로 그만 뒤돌아서고 만다. 세상을 파탄시킬 탐욕의 반지를 없앨 절호의 기회를 잃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또다시 흐른다. 악의 군주 사우론과의 전쟁이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을 때 호빗이라 불리우는 난쟁이 종족의 빌보는 여행 중에 우연히 낡은 금반지 하나를 얻어 아무도 모르게 지니게 된다. 한편 암흑의 제왕 사우론은 잃어버린 11개의 반지를 끌어모으고, 마침내 11개의 반지를 지배하며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해줄 절대반지를 찾으려 혈안이 되어있다. 세월이 흘러가고 111번째의 생일을 맞은 빌보는 결국 자신이 갖고 있었던 그 반지가 절대 반지임을 알게 되고 사우론이 드디어 그 반지를 찾아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빌보는 자신의 젊은 조카 프로도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자유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와 인간, 난쟁이들은 반지가 사우론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그것을 파괴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 절대 반지를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반지가 만들어진 ‘운명의 산’(불의 산) 용암에 그것을 던져 넣는 길 뿐이었고 게다가 그 불의 산은 사우론이 은둔해 있는 곳의 중심부에 있다. 결국 미력하고 작은 존재이지만 전세계의 운명을 안게 된 프로도와 그의 친구들은 절대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불의 산으로 모험을 떠난다. 프로도와 반지원정대는 사우론의 무서운 사자들의 추적을 피해 멀고 험난한 길을 향해 떠난다.
“세상은 변화했다.”
<반지의 제왕> 1편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 첫 멘트다. 세상에서 변하지않는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항구하지않다’는 무상(無常)의 진리는 불법(佛法)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런 진리로 서막을 연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힘세고, 탁월한 무예실력을 갖고, 권력이 있고, 비상한 면모를 지닌 신도, 왕도, 장군도 아닌 난쟁이 프로도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대성은 남보다 작다는 비교심으로 ‘더욱 더 작아져’ 슬퍼지고 괴로워지고 불행해지는 중생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너가 바로 부처’라고. 우리 각자는 누구와 비교할 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고귀성을 갖고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불성’(佛性), 즉 ‘부처님의 성품’이다. 그가 키가 작은 난쟁이이건, 부모가 없는 고아이건, 소유물이 없는 빈자이건간에.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화신으로 나오는 사우론 뿐 아니라 대부분의 능력자들이 ‘절대 반지’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다. 돈과 땅과 권력과 노예는 물론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유혹을 누가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보리수 나무 아래 고타마 싯타르타에게 만약 ‘정각’을 포기한다면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는 마왕의 유혹처럼 ‘절대반지’의 유혹은 누구도 거역키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불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결국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절대반지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사우론이 보낸 무서운 사자들의 칼날을 피하는 것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9명의 반지원정대 내부에서도 ‘절대 반지’에 대한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현실은 난쟁이 프로도가 이겨내기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 프로도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는 ‘백색의 마법사’ 갼달프에게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하자 갼달프는 말한다.
“너는 너 자신을 믿어야 돼.”
갼달프는 비록 난쟁이이고, 가장 힘없는 프로도일지라도 ‘부처님의 위대성’을 가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선(禪)에서 첫번째 필수요건은 믿음이다. 즉 ‘자신이 곧 부처’라는 믿음이다. 화두선도 그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화두선의 의심은 ‘내가 부처인데, 왜 이렇게 중생놀음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과 분심으로 자신의 본래면목을 되찾는 것이다.
사우론이 보낸 나즈굴에게 쫓겨 죽을 위기에 처한 반지원정대를 구해준 ‘숲속의 여신’은 모든 희망을 잃은 프로도에게 말한다.
“그래도 진실한 친구가 있다면 가능할 거에요.”
불교에서 절망에 빠진 세상을 구해줄 불보살은 미륵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마이트레야’(미륵)은 ‘연민’이나 ‘친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미래세에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구시대처럼 큰 능력과 권위를 지닌 영웅이나 왕이나 교주가 아니다. 연민과 진실한 친구다. 결국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프로도를 지켜준 난쟁이 샘이 ‘도반’으로써 끝까지 프로도를 지켜준다. 그 눈물겨운 우정과 연민과 자애로움이 누구도 꺽을 수 없는 절대반지마저 꺾었다. 난쟁이라는 겉모습 속에 있다할지라고 누구나 지닌 불성은 위대하다. 그리고 그 불성은 어떤 권력보다, 어떤 돈보다, 어떤 왕보다, 어떤 신보다, 어떤 악보다 강하다. 그대와 나는 불성을 지닌 위대한 존재다. 절대반지처럼 강고해보이는 절대반지로서도 도저히 굴복시킬 수 있는 그런 위대함이 그대와 나에게 있다. <나는 가수다>의 프로들 만이 아니라 키작고 소외되었던 허각에게도, 백청강에게도 그런 위대함이 있듯이.
세상을 삼켜버릴 듯 다가오는 돈과 권력의 쓰나미를 버텨내기에 그대와 나는 난쟁이 프로도처럼 나약하더라도, 샘에 보여준 우정, 그리고 어떤 어려움을 뚫고라도 세상을 구해내겠다는 사랑과 용기가 있다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울한 날 속에서도 그대와 나만은 ‘희망’을 얘기하자.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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