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덕현 주지 스님 왜 사퇴했나
이사진-덕현, 범종교적 지향-불교적 정체성 논란
“법정 스님 유지 실현에 자기식 충정이 혼란 낳아”
28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 열반 1주기 추모법회가 열린다. 법정 스님은 지난해 3월11일 입적했지만 음력을 따르는 전통에 따라 ‘음력 입적일’(1월26일)인 이날 추모 다례재가 봉행된다.
추모법회는 법정 스님을 기리려는 이들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영상과 함께 법정 스님 스님의 출가본사인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의 추모법문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의 추모사, 노영심씨가 작곡한 추모곡 연주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문도들과의 내분’보다 ‘맑게’ 내분 직접 작용한 듯
법정 스님이 지난 1994년 이 세상을 맑고향기롭게 변화시키기 위해 창립한 (사)‘맑고향기롭게’는 1주기를 맞아 법정 스님의 유언에 따라 절판된 책들 중 지금까지 팔고 남은 일부를 사들여 공공도서관과 군부대, 교도소 등 공공도서관에 기증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젊은 날엔 불교계의 대표적인 현실 참여자로, 민주화 후엔 은둔 수행자로 살며 남긴 글로 ‘무소유의 가치’를 전파해온 법정 스님이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도록 하며 간소하게 삶을 마감한 이래 지난 1년 동안 전례 없는 ‘법정 신드롬’이 이어졌다. 법정 스님이 자신의 책조차 모두 절판하도록 유언을 남기자 법정 스님의 책 판매량이 150배 가량 늘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상위 11종이 법정 스님의 책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법정 스님 열반 뒤 길상사 주지와 (사)‘맑고향기롭게’의 이사장으로서 법정 스님의 후계자구실을 했던 덕현 스님이 양쪽 직책을 모두 던지고 떠나 소란이 일었다.
덕현 스님이 갑자기 떠난 것이 ‘문도들과의 내분 때문’보다는 (사)‘맑고향기롭게’ 이사회의 내분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감사·사무국장 해임하자 이사 6명 공개 질의서
지난해 6월 덕현 스님이 ‘맑고향기롭게’의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래 이사들은 덕현 스님의 독선적인 운영방식에 문제를 제기했고, 덕현 스님은 이에 반발해 감사와 사무국장의 해임에 나서는 등 충돌을 빚어왔다는 것이다. 이사 9명과 감사 2명, 사무국장으로 조직이 꾸려진 ‘맑고향기롭게’ 이사의 대부분은 법정 스님과 초기부터 함께 해온 인물들이다. 이들은 지난 17년 동안 법정스님과 함께 해온 기존 관행과 설립 취지를 무시한 채 덕현 스님이 주지와 이사장의 권위를 내세워 독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면서 문제를 야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맑고향기롭게’는 창립자인 법정 스님의 뜻에 따라 그동안 범종교, 초종파를 지향해왔다. 가톨릭을 비롯한 타종교인들을 포용했던 법정 스님의 취향에 맞춘 단체 운영이었다. 그런데 덕현 스님이 ‘불교적 정체성’을 강화하려 하자 기존 이사들이 창립자들의 뜻이 아니라며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책을 모두 절판하도록 한 법정 스님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덕현 스님이 ‘절판은 (법정)스님의 진정한 뜻이 아니다’며 절판 유언을 뒤집으려 하고, ‘맑고향기롭게’ 이사진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맑고 향기롭게’란 출판사를 개인 명의로 등록한 뒤 사후 승인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또 덕현 스님이 ‘법정스님 영상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맑고향기롭게’ 회관 건립 문제를 이사들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혼자 설계를 맡기는 등 사단법인의 합의체정신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사들은 이런 부분들에 대해 5개항의 질의서를 덕현 스님에게 공식으로 던졌다. 덕현 스님이 이사장을 맡은 뒤 참여한 일부를 제외하고 6명의 이사들 공동명의의 압박이었다.
“비리 있는 것도 아니고 이권 연루된 것도 아닌데…”
하지만 덕현 스님의 대학동창으로 ‘맑고향기롭게’ 이사회에 합류했던 김 아무개 이사는 “법정 스님 책 절판 문제는 이사회의 의견을 물어 유언대로 절판했고, 회관 설계는 맡긴 적이 없다고 본인이 이미 해명했다”면서 “덕현 스님은 이사들의 의견을 두루 경청했지만 기존 이사들 간에 이사장이 ‘독선적’이라는 쪽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선이라지만 비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감정 표출은 있었지만 순수봉사단체에서 무슨 이권이 연루된 것도 아닌데, 왜 상황이 그렇게까지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소집된 이사회에선 법정 스님 1주기를 앞두고 이런 내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이사장 사직서를 반려했지만 결국 덕현 스님은 글을 남기고 떠났다. ’맑고향기롭게’의 한 관계자는 “법정 스님의 부재 뒤 덕현 스님과 ‘맑고향기롭게’ 기존 이사들 양쪽 모두 법정 스님의 유지를 제대로 실현해보려는 자기식 충정이 이런 혼란을 낳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맑고향기롭게’는 3월 2일 긴급이사회를 연 뒤 덕현 스님 사퇴 사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길상사 후임 주지는 덕현 스님과 비슷한 시기에 법정스님에게 출가한 덕운 스님이 거론되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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