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에이즈보균자 매매춘 콘돔 사용은 생명 존중”
“면죄부“ 해석에 한국천주교주교회 “교황 뜻 악용”
콘돔 사용은 가톨릭 가르침에 어긋날까. 애초 가톨릭에선 콘돔 사용을 금기시해왔지만, 지난해 말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부분적 면죄부’를 주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교황이 독일 언론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책 <세상의 빛>에 ‘에이즈 감염을 줄일 목적이라면 콘돔 사용이 더 인도적인 성관계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한 발언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외신 보도가 나오자, 유엔을 비롯한 세계적 단체들이 에이즈 퇴치에 기여할 것이란 환영 논평을 쏟아냈다.
외신 보도가 불씨…<가톨릭신문> “교회 가르침에 위배”
그러나 최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미디어부는 ‘<세상의 빛>의 일부 해석과 관련된 성의 저속화에 관한 공지’라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전언을 전국 교회에 내려보냈다. 한마디로 보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전언은 ‘<세상의 빛> 출판으로 그릇된 해석들이 나와 가톨릭 교회의 성윤리 문제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 혼란이 야기되었다. 교황 성하의 말씀의 원래 취지와 전혀 관계없는 의도와 이익을 위해 그 뜻이 악용되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교황의 말은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성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해 오늘날 만연한 성의 저속화를 극복하자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 전언에 대해 <가톨릭신문>도 1면 머리기사에서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콘돔 사용은 가톨릭교회 가르침에 위배 되며,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올바른 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신앙교리성의 전언은 ‘에이즈보균자가 매매춘을 하면서 콘돔을 사용해 전염을 줄여보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생명 존중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 교황의 발언이 마치 매매춘까지 허용하는 듯이 비치고 있는 데 대해 분명히 선을 그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전언은 ‘그럼에도 매매춘은 여전히 중대한 악으로 남는다’고 못박고 있다.
“바늘구멍만큼이나마 출구가 열린 셈”
그러나 신앙교리성이 교황의 발언을 이렇게 ‘재해석’해 내놓은 것은 가톨릭교회의 보수적인 전통이 후퇴할 것을 염려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반격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우리신학연구소 박영대 소장은 “콘돔을 질병예방 차원에서 허용하는 것은 성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지만 가톨릭 내부에서 보수 세력이 예민하게 반응하며 문제를 제기해 후퇴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가톨릭 안팎에선 교황청의 ‘콘돔 불인정’ 방침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란 지적이 높다. 천주교여성공동체 김선실 실행위원은 “가톨릭 전통에선 피임은 물론 낙태를 전면 불허하지만 지난 1995년 한 조사에서 가톨릭 여성들도 30%가량이 낙태를 했다고 고백한 바 있고, 가톨릭신자들도 현실적으로 피임을 위해 콘돔 정도는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어 교회가 붙들고 있는 입장과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에이즈 전염 등 현실적인 심각성에 비해 교회의 움직임은 더디지만 지난해 교황의 발언으로 바늘만큼이나마 출구가 열렸으니, 시간은 걸리더라도 조금씩 변화해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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