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스님, ‘봉은사 직영 외압’ 공개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데 그냥 놔두냐고 말해”
“좌파 운운 얘기도”…안 대표 “황당한 이야기”
조계종 총무원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과 관련해, 봉은사 주지 명진(60) 스님이 21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외압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명진 스님은 이날 오전 열린 일요법회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11월13일 아침 프라자호텔 식당에서 자승 총무원장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이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안상수 대표가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주지를 그냥 놔둬서 쓰겠느냐’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명진 스님은 이 얘기를 그 자리에 배석했던 김영국 거사(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 겸 전 고흥길 의원 보좌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또 11월30일 자승 스님의 총무원장 당선 직후에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과 함께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자승 스님으로부터 안상수 대표가 좌파 주지 운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승 총무원장과 안상수 원내대표의 조찬 자리에선 자신이 지난해 8월30일 용산참사 현장을 찾아 1억원을 전달한 것과 관련해 “안상수 원내대표가 ‘돈을 함부로 운동권에 써도 되느냐’고 말하자 자승 총무원장이 ‘봉은사는 재정이 공개돼 함부로 쓸 수 없고,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준 돈을 3년간 모아 용산 현장에 전달한 건 어쩔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안상수 대표가 자승 총무원장과 이런 야합을 했다면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정계에서 은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명진 스님 주장에 대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황당한 이야기”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자승 총무원장이 템플스테이를 포함한 불교계 숙원사업과 관련한 예산 때문에 만나자고 해 고흥길 의원과 함께 아침을 먹은 적이 있지만, ‘좌파 주지’ 등의 발언은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고흥길 의원도 “정치적인 이야기는 일체 없었다”고 말했다.
조계종의 원담 대변인(총무원 기획실장)은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은 우리 종단 내부의 법적 근거와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며 “명진 스님의 정치권 압력설은 검토하거나 대응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명진 스님이 자승 총무원장과 만나는 자리에 동석했다고 지목한 지홍 스님은 “지난해 11월 셋이서 식사를 했지만 이런 얘기가 나오기 전이라 이번 건과는 무관하다. 다만, 안상수 대표가 총무원장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건 최근 불교계에 나도는 얘기로 나도 들어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국씨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명진 스님이 거짓말할 분은 아니다”면서 “다음에 얘기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성연철 박수진 기자
“안상수 ‘좌파 주지’에게 강남 부자절 맡겨서야…”
명진스님, 정권 비판한 자신 겨냥한 권력 ‘칼날’ 인식
허황된 얘기라면 승적 뺄 것…불교 단체“좌시않겠다”
조계종 총무원장의 일방적인 봉은사 직영 결정에 반발해온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21일 일요법회에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외압설을 제기함으로써 ‘봉은사 직영’을 둘러싼 논란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명진 스님은 안상수 대표가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좌파 주지’ 운운한 발언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만약 이 발언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불교단체에서는 이미 ‘정치권 외압설이 사실이라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명진 스님은 조계종의 권승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객승들에게 용돈과 여비를 챙겨주던 봉은사의 관행을 타파하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사찰 개혁을 착실하게 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도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 직영을 결정한 건, 현 정권의 부도덕성을 질타해온 자신을 겨냥한 정치권력의 숨은 칼날이라고 명진 스님은 인식하는 듯하다.
그는 “봉은사가 80년대와 같은 싸움터로 변하는 걸 원치 않는다”며 신자들에게 집단행동을 자제하라고 당부했지만, “만약 내 말이 근거없는 허황된 얘기라고 판명되면 내 발로 봉은사에서 나가고 조계종 승적부에서 이름을 지울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이에 대해 1500여 신자들이 10여 차례나 열렬한 박수와 함성으로 지지를 나타냈다. 앞으로 사태 추이에 따라 신자들의 집단 반발이 현실화할 수도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이번 사태가 ‘총무원 대 봉은사’의 갈등이 아니라 ‘정치권력 대 불교계’의 갈등으로 비화할 경우,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잠재된 분노가 다시 점화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출범한 조계종 총무원의 새 집행부가, 봉은사 쪽과 한마디 상의 없이 봉은사를 조계사처럼 ‘총무원장이 주지를 맡는 직영사찰’로 만드는 안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조계종 입법부인 중앙종회는 법정 스님 입적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11일 오후 4시 ‘봉은사 직영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봉은사 쪽은 ‘총무원 새 집행부가 침체에 빠진 강남불교를 활성화한 점에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신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접수에 나선 것이냐’며 반발하고 나섰다. 실제로 봉은사는 명진 스님이 주지로 취임한 2006년 이후,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찰을 인근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등의 파격적 운영으로 일요법회 참석자 수를 150명에서 1000여명으로 크게 늘리는 성과를 거뒀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불교계에서 가장 가까운 친분을 지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명진 스님도 일요법회에서 ‘총무원장 선거 때 직접 돕지는 못했지만 자승 스님의 은정장학회 사무실을 봉은사 내 자신의 옆방에 내줘 사람들을 만나게 했고, 선거운동 때는 봉은사 부주지 진화 스님을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보내 돕게 했다’고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그런 인연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장이 봉은사 직영화를 꾀한 데엔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란 게 봉은사 쪽의 주장이다.
조계종 총무원 쪽은 ‘봉은사 직영화’ 배경에 외압은 없으며, 서울지역 포교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구체적 이유에 대해선 총무원 인사들 간에 말이 조금씩 다르다. 총무원 총무부장 영담 스님은 “승가교육진흥회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대변인인 기획실장 원담 스님은 “강북권의 조계사와 강남권의 봉은사를 연결하는 포교벨트 구상의 일환”이라고 발표했다. 또, 함께 직영을 추진했던 도선사는 제외하고 ‘봉은사 직영’만 중앙종회에서 전격 통과시킨 점도, 결국 직영계획이 봉은사와 명진 스님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혹을 부추긴 셈이 됐다.
▣ 명진스님 누구인가?
2006년 봉은사주지 임명…1천일 1천배 정진
명진 스님은 2006년 11월8일 봉은사 주지로 임명됐다. 선승으로서, 현실참여승으로서 사판을 맡은 적이 없던 그는 주지로 임명된 뒤 1천일 기도와 재정 공개, 봉은사 비전 발표 등 파격적 행보로 봉은사를 강남불교 1번지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명진 스님은 고교 졸업 후 해인사 성철 스님 밑에서 1년간 수행하다가 군 복무 후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 스님을 은사로 정식으로 출가했다. 선방에서 수행정진하던 그는 1985년 봉은사에서 열린 ‘10·27 법난 규탄대회’ 때 감옥에 감으로써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86년 해인사 승려대회에서 큰 몫을 했고, 1994년 조계종단 개혁 때엔 사자후를 토해 개혁 분위기에 불을 댕겼다. 2000년부터는 조계종의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과 본부장 등을 맡아 대북 교류를 주도했다.
현실에 참여하고 자유분방한 그가 부촌 강남의 사찰 주지에 임명되자 신도들은 처음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1천일 동안 산문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매일 1천배씩 기도 정진하면서 신도들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냈다. 그는 1천일 기도 중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일인 지난해 5월29일 단 한차례 산문 밖을 나와 장례식에 참석했다. 1천일 기도가 끝난 뒤인 8월30일엔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법회 발언 요지
“안상수의원, 자승 총무원장 만나 ‘운동권에 돈 쓰기 막아야’말해…”
다음은 명진 스님이 21일 법회에서 한 발언의 요지다.
‘봉은사 문제를 종단의 이런 사유로 직영해야겠다’는 말이 사전에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종무회의에서 직영 안건을 상정하는 날 총무부장 영담 스님이 “기쁜 소식 전하겠습니다”라며 “봉은사가 직영사찰로 바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회의 전후로 “해당 사찰 주지와 한마디 상의 없이 이러는 것이 무슨 뜻이냐”는 뜻을 전했다. 진화 스님이 종회 의원들에게 봉은사 사부대중의 입장을 전달해 총무분과위원회에서 5 대 4로 안건 상정을 부결시켰다.
그럼에도 직영지정 과정이 급작스럽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던 차에 3월9일 오후 4시 자승 스님을 만났다. 내가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하니, 자승 스님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왜 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자승 스님은 “제가 참회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어디서 압력 받은 거 아닙니까? 귀신이 씐 것입니까?”라고 하니, 자승 스님이 “귀신이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5일 총무원장 취임 후에 11월20일경 김○○ 거사가 찾아와 “스님, 며칠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하고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같이 자리했다. 11월11일 오전 11시30분 프라자호텔인데 그 자리에서 스님 얘기가 나왔습니다”라고 전했다.
그 거사가 “안상수 의원이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나둬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고흥길 문광위 위원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쪽에서 “용산 참사 1억 갖다 준 것을,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하자 자승 스님이 “봉은사 돈은 재정이 공개돼 함부로 할 수 없다. 신도들이 개인적으로 준 돈을 뭐라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
그 뒤로 11월30일 총무원장 당선 이후 자승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선 축하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불광사 회주인 지홍 스님도 같이 있었다. 자승 스님에게 “총무원장이 되시니 청와대 등에서 압박이 안 들어오시냐”고 물었다. 이 자리에서 자승 스님이 미리 들었던 얘기를 확인해줬다.
봉은사 직영 추진은 이런 연관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원장 스님을 만나 할 말이 어지간히 없나 보다. 봉은사를 직영하겠다는 것은 누구와 소통해야 하는가? 바로 봉은사 신도들을 비롯한 봉은사 사부대중, 종도들과 소통해야 한다. 안상수 의원과 소통해야 하나? 그것은 ‘밀통’이다.
안상수 의원에게도 묻고 싶은 게 있다. 세종시 문제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운데 집권 여당의 대표가 한 종교와 종단의 대표를 불러 사찰 주지를 바꿔야 한다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인가? 이는 시정잡배들도 하지 않는 행동이다.
만약 내 말이 근거 없는 허황된 말이라면 내 발로 봉은사를 걸어 나가겠다. 또 직접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 승적부에서 내 이름을 지울 것이다.
종교인 입장에서 남과 북이 평화로운 가운데 서로 오가고, 서로 오판해 전쟁이 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조계종 대표로 북한을 오갔다. 북쪽의 경우 이치에 안 맞고 억지소리 하는 것이 많지만 다 굶겨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것이 좌파인가?
아무 곳에나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으면 좌파 딱지를 붙이는 안상수 의원은 한국 정치에서 손을 떼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정치권과 야합 속에 진행되는 봉은사 직영 추진은 철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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