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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법정 스님 ‘무소유’까지도 ‘소유’ 않고 열반

등록 2010-03-11 17:56

폐암 투병하다 입적…“일체의 장례의식 말라” 유언

“머리맡 책 신문배달원에게…내 저서 더 찍지 말라”

 

 

산문집 <무소유>의 작가로 친숙한 법정 스님이 11일 오후 1시52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살. 세수 78살.

 

지난 2007년 10월 폐암 진단을 받고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요양해오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온 법정 스님은 이날 열반 직전 길상사로 옮겨졌다.

 

한국 불교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상고를 거쳐 전남대 상과대를 다니다 1956년 당대의 고승인 효봉 스님을 은사로 비구가 됐으며,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낸 뒤 1970년대 이후 조계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직접 지어 홀로 살았다.

 

법정 스님은 불교계의 현실 참여가 전무하다시피했던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으로 씨알의 소리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도록 활기를 불어넣었고, 1970년대에 장준하, 함석헌 등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해 민주화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또 지난해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도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단체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마음과 삶을 맑히는 운동을 펼치며, 고독한 수행 생활을 해왔다. 1997년엔 서울 성북동에 길상사를 창건했고 2005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내려가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가끔씩 길상사에서 법문을 해왔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전날 밤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해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법정스님은 머리맡에 남아 있던 책을 저서에서 약속한 대로 스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해줄 것을 상좌에게 당부했다.

 

아울러 법정스님은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법정 스님은 맑고 정갈한 필치의 산문인 <무소유> <오두막 편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산방한담> <텅빈 충만> <아름다운 마무리> <일기일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등의 책을 남겼다.

 

법정스님은 평소에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상좌들에게 당부했다.

 

이에따라 조계종과 송광사, 길상사 등은 이런유지를 받들어 별도의 공식적인 장례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기로 했으며, 다비식 이외 일체의 장례의식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또 조화나 부의금도 접수하지 않기로 했으며 조문객을 위해 길상사와 송광사, 스님이 17년간 머물렀던 송광사 불일암 등 3곳에 간소한 분향소만 마련했다. 다비식은 13일 오전 11시 전남 순천 송광사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백·매화 꽃잎 매만지며 하루전 ‘열반 대화’

 

해남 미황사 스님이 음악가 노영심 통해 전해줘

마지막까지 의식 또렷…‘먹이는 간단 명료’ 철칙

 

 

법정스님은 오랜 투병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열반 전날까지도 또렷한 의식을 지니며 꽃과도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전해졌다. 열반 하루 전인 10일 법정 스님의 고향인 전남 해남에 있는 미황사에서 금강 스님이 음악가 노영심씨 편을 통해 눈맞은 동백꽃과 매화 꽃송이들을 보내드리자 꽃잎들을 하나하나씩 만지면서 꽃들을 향해 “올라오느라고 고생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 7일엔 금강 스님이 직접 동백꽃과 매화를 법정 스님에게 드리면서 “스님 고향엔 봄이 와서 동백꽃이 만발하고, 매화가 막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스님도 어서 쾌차하셔야지요”라고 말하자, 말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이날은 봄기운을 받은 것처럼 미음과 반찬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고 한다.

 

법정 스님의 사촌 누이인, 현장 스님의 속가 어머니와 법정 스님의 유일한 형제인 여동생 박정란씨와 함께 지난 9일 법정 스님을 찾았던 전남 보성 대원사 주지 현장 스님은 “불자들보다 더 냉정하게 대하며 가까이하지 않던 (법정스님의)친여동생에게 ‘굳굳하게 살아라’고 했고, (현장 스님의)어머니가 사촌간인 법정 스님에게 ‘빨리 가서 나도 데려가라’며 ‘이게 마지막이겠지’라고 말하자 법정 스님이 ‘마지막이 아니다’고 했고, 어머니가 다시 ‘그럼 어디가면 스님을 볼 수 있느냐’고 하자, 불일암으로 찾아오라’고 했고, 어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불일암에는 못올라간다’고 하자, ‘그럼 길상사로 찾아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봉은사 다례헌에 머물며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송광사로 내려가 불임암을 짓던 법정 스님을 시봉하면서 불일암 낙성식날 수계를 받은 현장 스님은 “스님은 부엌에 ‘먹이는 간단 명료하게’라는 말을 써붙여두고, 일체 3가지 반찬 이상을 상에 올리지 못하게 했고, 음식들을 손수 하고, 워낙 정갈했기 때문에 여자들도 스님의 부엌에 들어가길 겁나했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법정 스님은 평소 책에서도 할머니에 대해 자주 회고하곤 했다. 어린시절 할머니로부터 늘 옛날얘기를 들으며 자라 자신의 문재는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어린시절 워낙 가난해서 책과 원고지도 살 수 없었던 스님은 국민학교 때 소풍에서 보물찾기를 해 원고지를 상으로 탔는데, 그때부터 할머니 얘기를 원고지에 쓰며 문재를 키워갔다고 간다. 법정 스님은 그토록 좋아했던 할머니의 기일을 하루 앞두고 열반해 속가 가족들은 “할머니를 따라가신 것”이라고 추모했다.

 

법정 스님은 지난 2일 자신을 찾아온 송광사 선원 한주 영선 스님과 영명 스님, 지현 스님들을 맞으며 종이에 ‘조계종풍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썼다. 지현 스님은 “조계종풍이 선(禪)이므로, 영선 스님에게 선원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뜻을 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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