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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시간이 걷는 ‘철학의 길’, 과거로 느릿느릿

등록 2010-02-03 14:10

일본 교토 도심 속 사색의 길

일본 철학 새 장 연 철학자의 ‘순결한 사랑’ 졸졸

찻집 찻잔 속에 여인이 둥둥, ‘생과 사’ 홀짝홀짝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오대산 숲길... 바야흐로 ‘길’의 시대다. 4년 전 틱낫한 스님의 방한으로 ‘걷기 명상’이 현대인의 ‘화’를 다스리는 적절한 처방으로 각광을 받더니, 이제 경치를 감상하며 건강을 도모하는 도보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직립보행의 장점은 수승화강(물기운을 오르게 해 머리는 선선하고 불기운을 내려가게 해 배는 따뜻하게 함)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쉬게 하고, 그 쉼을 통해 번뇌 속에 가려진 지고의 영성을 구현해내는 것이다.

 

교토학파의 아버지인 니시다 기타로(1870~1945)가 걸으며 ‘삶’을 고뇌하면서 일본근대철학의 신기원을 열었던 일본 교토 ‘철학의 길’을 거닐었다.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품격 간직한 은각사

 

1869년 수도가 도쿄로 옮겨지기까지 1천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는 문화유산의 보고다. ‘철학의 길’은 그 화려했던 영화의 자랑거리에서 벗어나 지친 마음을 부려놓을 수 있을만큼 한적한 곳이다. 교토 동산 기슭 2미터 남짓한 실개천가 호젓한 길은 ‘선(禪)사찰’인 은각사(銀閣寺)로부터 시작된다. 북산 기슭 금각사(金閣寺)에 휘황찬란한 금칠이 되어있는 것과 달리 은각사엔 은칠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시선이 외경이 아닌 내경을 향하게 하기에 적절하다.

 

은각사는 1482년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자신의 별장으로 지은 것이다.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장군이었던 할아버지가 ‘극락정토를 현세에 표현했다’고 한 금각사를 본따 은칠을 하려했으나 건물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덕분인가.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겨냥해 건물 당호보다 오히려 관광상품점이 빼곡한 금각사와는 달리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다른 품격을 간직한 은각사는 ‘철학의 길’의 기점으로 더할 나위 없다. 기타로는 금각사가 표현했다는 극락이니 피안이니 하는 초월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우리가 걷고 있는 이 현상계를 유일한 실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고뇌한 것도 현실이었고, 도를 발견한 것도 현실이었다.

 

노벨상 수상자 다섯명이나 낳은 비결

 

은각사에서 잔디 대신 이끼가 덮인 야트만 언덕들을 넘으면 정수리로 대숲바람의 신선한 기운이 밀려든다. 정갈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은각사를 나오면 곧바로 ‘철학의길’이란 간판이 붙어있고 실개천 길이 심연의 바닥까지 이어진다. 최근 교토에서 열린 ‘대장경 세미나’에 참석차 이 길을 걸은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원철 스님은 “도시에 있으면서도 고요함이 감돌아 사색하기엔 더 할나위 없이 좋은 길”이라고 평했다.

 

아무도 없는 길에선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다. 그 옆으로 유럽에서 온 듯한 부부가 지나간 뒤 여중생 대여섯 명이 길을 걷고 있다. 시코쿠에서 이 길을 걸어보기 위해 온 학생들이다. 교토대와 연결된 이 길이야말로 교토대가 노벨상 수상자를 다섯명이나 낳은 비결이란 말이 돌면서 이 길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는 길이 되기도 했다. 도쿄대가 동쪽으로 가면 교토대는 서쪽으로 간다고 할 정도로 ‘중심권’에 흡수되거나 동화되지도 않으며 이 길에서 사색한 교토대의 학자들과 학생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을 추구하고 자유분방함을 자랑하며 새로운 중심을 창조해왔다. 천년 넘게 한 곳에 머문 전통적인 도시에서 정체되거나 고루하지않은 학풍을 낳다니 그 길과 그 사색이 더욱 신선하다.

 

“한 줌 백골이 된다고 하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기타로가 걸었던 길이 벚꽃 흐드러지는 봄도, 단풍 짙은 가을도 아니건만 여전히 붉디붉은 나무열매와 잎들이 길손에게  인사를 건넨다. 고독한 철학자에게도 위안이 되었을 것들이다.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간직한 조그만 가게들을 뒤로 하고 옛가옥들을 지나면 돌다리 옆에 전통찻집인 ‘요지야 은각사점’이 있다. 1904년에 지은 목조건물을 개조한 찻집 다다미방에서 200여평의 정갈한 정원을 바라보며 마시는 녹차라테의 맛은 일품이다. 찻집엔 음악 하나 없고, 오직 고요뿐이다. 기타로는 생로병사를 망실한 듯한 이 찻집의 고요 속에서 어떠했을까. 사랑하던 자식을 화장하고 돌아온 그는 제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명리로 가득 차 번민이 끊일 새가 없는 마음 위에, 한 항아리의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마음을 가지게 되어 일종의 시원한 맛을 느낌과 동시에, 마음의 깊은 곳으로부터 가을날처럼 청명하고 따뜻한 빛이 비치어서, 모든 사람 위에 순결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지금까지 사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노래를 부르고, 놀기도 했던 아이가 갑자기 없어져버린 것이다. 한 줌의 백골이 된다고 하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요지야찻집의 명물인 녹차라테는 찻잔 속에다 요지야의 상징인 여인을 녹차색으로 그려놓는다. 거품처럼 떠있던 여인의 입과 코는 차한잔을 마실 때마다 사라지고 마침내 모든 것이 무(無)로 녹는다. 여인의 형상은 사라지지만 몸속에서 다시 생기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여인의 형상은 유(有)로 남아있는 것도, 완전히 무(無)가 된 것도 아니다.  고요한 다다미방 창문 밖에서 움직이는 나뭇잎만이 살갓엔 닿지않은 ‘바람의 소식’을 전해준다. 번뇌가 보리(菩提·깨달음)라는데, 기타로에겐 고뇌가 ‘심안의 철학’이 되었던가. 영롱한 진주는 상처 속에서 생겨나는가. 겨울바람이 비로소 시원하다.

 

교토/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니시타 기타로와 그 사상

‘샛길’ 따라 선 수행과 사색으로 무의 철학 ‘견성’

좌선·경전·피안보다 일상과 현실에서 의미 찾아

 

니시다 기타로는 일본철학의 본류가 되었지만, 그는 애초 ‘고속도로’ 같은 정통 엘리트 코스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게도 이런 ‘샛길’을 따라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열 개의 마을을 경영하는 촌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투기로 인해 일찌감치 집안의 파산을 경험했다. 도시에 나가 함께 자취하며 하늘처럼 의지했던 누나를 14살 때 사별해야했고, 몸이 아파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도쿄대에서도 본과생이 되지못한채 선과생(選科生·선택한 과목만 수강할 수 있는 학생)으로서 차별을 받으며 비참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고등학교 영어교사직마저도 도쿄대 본과 출신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15년간 중학교와 고교 교사생활을 한 이후 마흔살이 넘어 대학 교수 자리를 얻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가족의 병고로 인해 서양 유학은 커녕 평생 일본땅 밖을 한발도 벗어나지 못했다. 개화 열풍 이후 학문이라면 당연히 서양 학문이었던 당시 그는 도저히 주류에 설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니시다 기타로는 가슴이 무너지는 죽음을 끊임 없이 경험했다. 여덟 명의 자식 중 다섯 명을 앞세우고, 부인을 먼저 보내고, 온갖 병수발을 다하면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고로(苦勞)의 연속”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30대 말까지 치열한 10년의 선수행을 통해 선사로부터 ‘무(無)’공안을 타파했다는 ‘견성’(見性)인가를 받은 후에도 그의 고통스런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고통 속에서 치열히 수행하고, 사색해 자신의 ‘순수경험’(견성)을 바탕으로, 서양의 유(有)와는 다른 동양의 무(無)의 철학을 내놓았다. 그는 선(禪)을 정신통일의 최고 수단으로 생각했지만, 이를 통해 현실을 떠난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좌선이나 경전을 통해서보다 식사를 하거나 가축을 돌보거나 밭을 일구는 평범한 일상 속에 아주 깊이 들어가 그 의미를 깊게 파악함으로서 종교의 본질과 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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