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 창립 가톨릭 개인택시 봉사회
10년간 6억원 ‘모금’ 고아원 등 도와
경제난으로 하나같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경제난에도 자신의 자산가치가 하락했다며 화를 내는 사람들과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 빈자들의 처지가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들어 나눔을 기피하면서 기부금마저 크게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보다 더 못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 자신들도 뭔가를 해줄 수 있다며 발 벗고 나선 이들이 있다. 자신들도 하루 벌어 하루하루 연명하는 처지인 운전기사들이다.
김수환 추기경 이름 지어주며 ‘찬사’
12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문화관 코스트홀에선 서울대교구 소속 ‘가톨릭 운전기사 사도회’ 창립 25돌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이 미사엔 운전기사 200여명이 잠시 운전대를 놓고 함께했다. 자신들을 위해선 점퍼 하나도 사입기 어려울 법한 허름한 차림새들이다. 하지만 엄동설한을 녹이는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홀 들머리에 놓인 사도회 월보의 이름이 ‘핸들 잡은 예수님’이다. 1984년 창립된 이 사도회 소속 운전기사들이 하루 12시간씩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불구하고 쉬는 날에 짬을 내 장애인과 불우한 노인들을 차에 태워 봉사하는 것을 보고, 김수환 추기경이 지어준 것이다.
가톨릭 운전기사들은 껌이 담긴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을 택시에 싣고 다닌다. 이들이 이렇게 손님들로부터 한푼 두푼 모금한 돈은 지난 10년간 무려 6억원. 이들은 그 돈을 서울시내 고아원과 양로원, 복지관 등에 지원했다. 미사 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강봉수 안토니오(80) 할아버지는 이 모임에서 최고령이다. 그는 자신이 여든의 나이에도 건강하게 핸들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일을 즐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떻게 온종일 고된 운전을 하면서 기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차에 오르는 손님을 늘 주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지금이야 택시가 많아졌지만 예전엔 택시 잡기가 힘들었어요. 장애인들은 더욱더 택시 타기가 어려웠지요. 맹인을 보면 하루종일 재수가 없다고 택시 기사가 태워주지 않았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지요.”
쉬는날 장애인·노인 차량 지원도
강 할아버지에게 시각장애인들은 그가 누구보다 더 귀하게 모셔야 할 주님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각장애인들을 보면 다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들을 먼저 태우곤 했다. 언젠가 그가 서울 성북구 돈암동을 지나는데, 시각장애인들이 택시 승강장에서 뒤돌아서 있었다. ‘맹인을 보면 재수가 없다’는 근거 없는 속설을 믿고 잘 태워주지 않는 택시 기사들 때문에 고개를 돌린 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본 강 할아버지는 다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각장애인들을 태워 목적지인 상계동 맹인복지회까지 태워다 주었다. 생계를 위해 안마와 침을 놓으러 다니면서도 늘 택시를 잡지 못해 애태우던 시각장애인들은 그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을 먼저 태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손님으로부터 ‘승차 거부’로 고발당하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시각장애인들이 모처럼 찾은 행복한 표정과 바꿀 수 없었다.
강 할아버지와 가톨릭 운전기사들은 택시를 타기 어려운 시각장애인들과 휠체어를 탄 이들을 위한 봉사에 지금도 틈만 나면 나서고 있다. 전 가톨릭운전기사사도회 회장이기도 했던 우종석 마르티노씨도 작년 9월 택시 안에서 도주 중인 강도가 휘두른 흉기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틈 나는 대로 거동이 불편한 복지관 노인들을 택시에 태워 나들이를 돕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엔 평생 청소 한번 안 한 듯한 골방에서 앓아누워 있는 홀몸 노인을 동료 회원들과 함께 찾아가 청소를 하고 벽지도 발라주었다. 그 얼마 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가톨릭 사도회 운전사 봉사자들이 다녀간 한달 뒤 노인은 세상을 떠났는데, 깨끗해진 방에서 너무나 행복해하면서 눈을 감았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자신들도 도움의 손길을 구해야 할 처지이지만, 오히려 나누면서 더욱 더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핸들을 잡고 명동성당을 나섰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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