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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신학자들, 기독교 성역에 잇단 ‘반란’

등록 2008-10-22 15:52

 [마음산책]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비판 봇물

 “배타와 독선 못 벗어나면 기독교 소멸” 경고

 ‘기독교 밖에도 구원’ 파문 이후 오랜 침묵 깨

 
우리신학연구소가 지난 15일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지금 여기, 구원은 어떻게?-종교 다원시대, 구원의 의미’를 주제로 연 토론회.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이 소강국면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그리스도교 내에서 배타주의 극복 에 대한 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난달 30일 감신대 기독교통합연구소와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한신대 학술원 신학연구소의 공동주최로 ‘한국 기독교의 배타주의-근원과 현상’에서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가 배타주의에 대한 포문을 연 이래 지난 1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가톨릭 우리신학연구소 부설 아시아신학연대센터 주최로 ‘지금 여기, 구원은 어떻게?-종교 다원시대, 구원의 의미’를 주제로 열린 ‘종교간 열린토론회’에선 세계적인 신학자 피터 판 신부와 정양모 신부 등이 ‘성역’을 깬 토론을 벌였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도 지난 16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다원사회 속에서의 기독교와 기독교인의 자세’를 주제로 한 열린대화마당을 열었고, 주제 발제에 나선 연세대와 이화여대 종교학과 정진홍 석좌교수는 “지금까지 기독교의 생존 논리였던 배타와 독선을 벗어나지 못하면 기독교는 소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에 대형 교회는 많지만 신학 다운 신학은 없고 오직 교회를 위한 어용신학만이 존재한다는 신학계의 자조 속에서 신학자들의 이런 발언들은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구 대비 신학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음에도 교회에 종속된 신학계의 풍토 아래서 지난 90년대 초 감신대 변선환 학장이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신학적 소신을 밝혔다가 학장과 교수직, 목사직, 신자 직분까지 박탈 당한 이래 신학계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어왔기 때문이다.

 한 신학자는 한국개신교엔 “근본주의자와 더 근본주의자와 그보다 더 근본주의자만 있다는 얘기까지 있다”면서 “이처럼 세계에서 보기 드문 풍토가 조성된 것을 교회의 탓으로만 돌렸지만 실제로는 예언자적 정신을 망각한 채 보신주의로만 일관한 신학계의 풍토 때문”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지난 16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다원사회 속에서의 기독교와 기독교인의 자세’를 주제로 열린대화마당을 열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기독교학회도 지난 17~18일 대전 침례신학대에서  ‘한국교회의 위기와 신학적 답변’을 주제로 한 공동학회를 열어 모처럼 신학적 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발표에 나선 안선희(이화여대)교수는 “한국교회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외부세계에 대해 정복적이고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사회화시키고 있다”면서 “호전성과 전투성을 극복하고 온유, 겸손 등의 평화적 메타포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인식(서울신대) 교수는 “한국의 전통 문화를 목회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면서 조상 제사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의 성만찬처럼 돌아간 자의 죽음을 기념하고 추도하는 성만찬적 추도예배로 의미를 승화할 수 있다”며 문화신학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미국 고든-코넬신학교 이문장 교수는 “신학의 세계화는 신학의 지역화를 전제하기 때문에 한국 신학이 우선적으로 한국적 풍토 위에서 한국 교회를 위한 한국 교회에 의한 한국 교회의 신학으로 환골탈퇴해 한국화에 성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학회 개회예배 설교자로 나선 이정익(신촌교회) 목사도 “오늘날 교회 성장을 위한 다양한 방법은 풍성하지만 정작 목회현장에서 신학이 없어졌다”면서 “신학을 통해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저명 신학자 4명의 목소리

 

예수를 하느님으로 보는 신조 버린 지 오래 ◇ 정양모 신부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예수는 하느님이다’는 극존칭은 요한복음과 요한1서에만 4번 나온다. 서기 325년 로마의 니케아공의회는 요한복음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다른 복음들든 그리스도론이 조금씩 다 다르다. 당시 예수의 부활을 체험한 이들은 예수를 너무나 존경했다. 그러다보니 좋다는 존칭은 다 붙였다. 한없이 존경스러우니 최고의 존칭을 드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를 하느님으로 보는 신조를 버린 지 오래다.  ‘예수는 하느님이다’는 것은 시적인 고백언어다. 찬양하는 노래다.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태양’이라면서 “오 쏠레미오!”라고 고백하며 노래하는 것과 같은 신앙 고백적 시어다. (성서 전체의 맥락을 보면) 예수는 하느님 자비의 화신이다. (전 서강대 교수·성공회대 초빙교수, 다석학회 회장)

    불신자 구원이 아니라 사랑 증언이 신앙

◇ 피터 판 신부
  정양모 신부의 말대로 ‘예수가 하느님이다’는 표현은 요한계 문헌에만 등장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예수가 하느님이다’는 것을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인이 믿는 것이라는 점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런데도 (로마 교황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엔 (무신론자라도)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시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진리는 곧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 즉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증언하기 위해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좋은 것을 나누기 위해서 증언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죄로부터의 구원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부정적인 것이고, 긍정적으로 보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 우리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가해 함께 나누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다. (베트남 출신, 미국 조지타운대 신학교수,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가톨릭신학회 회장을 지냄)  

예수는 자신을 신앙 대상으로 요구한 적 없어

◇ 길희성 교수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의 근본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화해 하나님 자신의 위치에 올려놓고, 교회의 풍부한 신학 전통과 영성을 무시한 편협한 문자주의적 성서신앙과 값싼 은총을 남발하는 대속신앙에서 온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예수 자신의 신앙이나 가르침과는 무관하다. 예수는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요구한 적이 없었다. 예수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비워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룬 존재였으며, 모두에게 자기 비움과 자기 부정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도록 촉구했다. 예수는 선한 자나 악한 자를 가리지 않고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말했으며 그의 삶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온갖 편견과 차별의 장벽을 허무는 하나님의 초월적 사랑을 증언하는 삶이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자체이지, 이 사랑의 특정한 표현이나 계시의 사건 자체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지, 예수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미국 예일대·하버드대 수학, 새길교회 창립)

  

기독교의 유일한 길은 죽어 되살아 나는 일

◇ 정진홍 교수
  그리스도교는 배타와 독선을 통해 커왔다. 배타와 독선은 그리스도교의 생존 논리다. 배타와 독선은 나와 다른 타자를 소멸시키는 것이 지고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처음부터 타자 배제의 원리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선교역사를 은혜와 감동을 탈색시킨 채 사실만을 본다면 폭력적인 전쟁사와 전투사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인류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운명공동체가 아니다. 패자는 사라지고 승자만 남아야 한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이익공동체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교는 없어진다. 이집트 고대종교는 3천년을 지속했다. 그리스도교 역사는 현재 2천년이다. 이집트 고대종교는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의 거대한 유적을 남겼지만 신자가 사라지자 신도 사라졌다. 그것이 신의 운명이다.

 그리스도교는 배타 독선으로 유지해 왔지만 이제 한계에 왔다. 증오와 폭력을 낳은 배타와 독선은 기독교의 생존원리가 아니라 파멸 또는 소멸 원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제 기독교가 해야 할 것은 하나밖에 없다. ‘메타노이아’다. 즉 죽어 되살아나는 일이다. 스스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이 제물이 되어 그렇게 자신을 불사르는 일이다. 기적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이화여대 종교학과 석좌교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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