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해남 달마산 미황사
120년 중창 불사 마치고 18일 주민들과 함께 축제
한반도 땅끝 전남 해남 달마산 미황사는 금강산 못지않은 절경과 산세에 어울리게 잘 자리한 전각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불교의 진수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 3박자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사찰로 꼽힌다. 조계종 전국 사찰 주지들이 모인 연수에서 주지인 금강 스님이 4년째 사찰 운영 사례를 발표할 정도로 산중사찰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6년 전 미황사가 템플스테이(사찰체험)를 하겠다고 종단에 신청할 때만 해도 “누가 가까운 절 다 두고 그렇게 먼 곳까지 가겠느냐”며 비웃음을 샀던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황사에선 1887년 스님들로 구성된 풍물패를 꾸려 인근 마을을 돌며 절을 중창하는 불사금을 시주하던 중창불사군고단 40여명을 태운 배가 청산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미황사 스님 대부분이 몰사당한 이후 중창 불사도 중단되었다. 신라 경덕왕 8년 의조 스님에 의해 창건돼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산대사와 소요선사의 직계제자 400여명이 수행하던 도량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몰락하고 만 것이다. 스님들이 흉액을 당하자 불자들도 찾지 않은 절이 되고 말았다. 1989년 전 금강 스님이 은사 자운 스님을 모시고 살러 갔을 때만 해도 나무와 잡풀이 절 마당까지 들어찬 흉가나 다름없이 방치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2년간 마당의 나무를 베어내자 드디어 햇살이 경내에 비추기 시작했다. 금강 스님은 사찰 건축에 남다른 감각과 열정을 갖춘 현공 스님이 미황사 주지를 맡아줄 것을 당부하고 공부를 하러 떠났고, 현공 스님은 91년부터 꼼꼼하게 축대를 쌓고 전각 하나하나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선방에서 참선 중이던 금강 스님이 미황사에 들르자 현공 스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절을 떠났다. 이미 절 대중들과 불자들에게 “금강 스님이 오면 주지 스님이라고 불러라”고 당부까지 해놓은 뒤였다. 그러자 금강 스님은 현공 스님을 찾았고, 둘은 앞으로도 함께 미황사를 꾸려가기로 ‘타협’을 했다. 대신 그 후로도 미황사를 중창하려던 원력을 세웠던 현공 스님은 회주로서 불사를 계속 담당하고, 대중들 앞에 나서기를 극구 꺼리는 현공 스님 대신 승가대 학생회장 출신인 금강 스님이 주지로서 사찰 운영을 맡기로 한 것이다. 그로부터 둘은 환상의 콤비로 현공 스님은 불사를 계속했고, 금강 스님은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사람의 향기(참선수행) 등 프로그램을 꾸려 전국 사찰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사찰 프로그램의 메카로 만들어갔다.
이렇게 120년만에 20개의 아름다운 전각을 배치해 중창 불사를 마친 미황사가 오는 18일 ‘천년의 꿈, 120년의 원(願)’이란 이름을 걸고 ‘괘불재와 작은음악회’를 연다. 땅끝마을 축제엔 2천여명이 불자와 지역민이 함께한다.
1년에 한 번만 공개되는 보물 1342호인 대형 괘불탱화를 모시고 참가자들이 각자 1년 동안 공들여 수확한 농작물과 개인적 성과물들을 부처님께 올리는 만법공양과 함께 100명의 판소리 고수들이 북을 치며 올리는 소리공양을 하는 괘불재에 이어 밤시간에 펼쳐지는 작은음악회에선 인도음악들과 남도소리 등이 달마산과 밤바다에 둘러싸인 산사에 울려퍼진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조현 종교전문기자와 떠나는 휴심여행 달마산 미황사
제 3회 조현 종교전문기자와 함께 떠나는 휴심여행은 괘불제가 열리고 있는 달마산 미황사로 향합니다. 달마가 중국에서 인도로 가지 않고 왔다는 달마산. 그 곳에 위치한 미황사는 온갖 형상의 부처가 가득한 곳입니다.
기간 : 10월 18일(토) ~ 19일(일) [1박 2일] 신청하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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