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필리핀 민다니오 ③/ 지도에도 없는 카난
납치하고 보니 꿈 속의 여인…기독교와 화해
차·오토바이·말 바꿔타고 새벽부터 황혼까지
서니보이와 앨리스를 만나러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민다나오에서 매일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고, 새벽 3~4시면 일어나 출발하는 강행군을 계속하느라 몸은 지쳤다. 서니보이와 앨리스가 있는 카난도 애초엔 새벽에 출발해 그날 밤 돌아오려 했으나 그 오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1박을 예정하지 않았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무리해서 그날 돌아오려고 했다면 어떤 안전사고가 났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엉치뼈 부분 구멍 뚫려 고름 잡혀 귀국 뒤까지 고생
민다나오섬 부키드논주와 라나오 델 수르지역의 경계에 있으나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오지인 카난을 향해 취재팀과 제이티에스 실무자들은 새벽 5시 가갸온데오로를 출발했다. 서너시간쯤 차를 달려 경찰서에 들러 완전무장한 경찰관 5명과 합류해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는 그런대로 차가 다닐 만한 넓이였지만 자갈들과 바위들이 땅속에 박혀 있어 차는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한 채 시속 20킬로미터 정도의 행군을 계속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리자 렌트한 운전사는 차에 사람이 너무 많이 타고 있어서 차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이렇게는 더 이상 못가겠다고 했다. 난감한 일이었다. 운전기사가 렌트 비용을 더 받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길이 워낙 험악해서 그가 자동차를 염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경찰 5명과 현지 사정에 밝은 제이티에스 최기진 간사가 내렸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빌려서 오토바이로 차를 뒤따랐다.
그렇게 새벽을 출발한 일행은 아침, 점심도 거른 채 낮도 한참 지날 무렵에야 중간 기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난이 멀지 않았지만, 그 곳부터는 차는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차에 타고 있던 일행들도 모두 내려서 모두 오토바이를 탔다. 험악한 길을 산악 오토바이를 타고 이삼십여리를 달렸다. 그 때부터는 오토바이도 갈 수 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제 말을 빌려 탔다. 말엔 어리디 어린 마부들이 타고 있었는데, 말 등엔 안장조차 없었다. 따라서 발을 디딜 곳도 없어서 엉치뼈와 말의 등뼈가 부딪힐 때마다 마치 압슬형을 당하는 것처럼 통증이 심했다. 그 통증이 너무도 심했으나 워낙 지형이 험해서 말에서 떨어질까봐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중에 말에서 내렸을 때는 엉덩이 껍질이 벗겨져 시려웠고, 다음날 다시 한번 말을 타고 카난을 벗어났을 때는 엉치뼈 부분에 구멍이 뚫려서 고름이 잡혀 귀국한 뒤까지 한참 고생해야 했다.
푸른 초원과 호수 어우러진 별천지에 3천여 명 오순도순
그렇게 말을 타고 한두시간을 가 카난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어 있었다. 이토록 깊은 오지에 어쩌면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지,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의 도착을 환영하는 듯이 도착 즉시 천둥번개가 치더니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기진 간사와 현지 필리핀 제이티에스 자원봉사자들은 더 이상 빌릴 수 있는 말이 없어서 걸어서 오느라 비를 쫄딱 맞고 올 수밖에 없었다.
오지 카난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지금도 말과 소가 끄는 수레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으나 맑은 하늘과 푸른 초원과 호수가 어우러져 별천지였다. 이 마을엔 무려 3천여 명이 살아가고 있는데도 2년 전까지 만도 학교 하나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학교가 30리 밖에 있으니 어린 아이들이 다닐 수 없었다. 제이티에스는 이곳에서 자재를 지원해 마을사람들이 학교를 짓게 했다. 멋들어지게 지어진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 집에서 한눈에도 할리우드 액션 스타처럼 날렵하게 생긴 마을지도자 서니보이와 부인 앨리스가 나와 반겼다.
서니보이는 무슬림, 앨리스는 기독교인이다. 서니보이도 원래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의 붐바란지역 사령관이었다. 당시 필리핀 정부 관계자와 군인 등 30여명을 암살한 악명 높은 킬러였다고 한다. 서니보이는 어느 날 꿈속에서 한 여인을 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이 마을을 습격해 목사의 딸을 납치했다. 그런데 데려와 보니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서니보이는 결국 목사의 딸과 결혼해 킬러로서의 삶을 버리고, 자신이 폐허로 만들어버리려던 이 기독교인마을을 낙원으로 재건하는 지도자가 됐다. 서니보이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마주한 서니보이는 그야말로 부인과 사랑을 나누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순수한 마을리더일 뿐이었다.
무슬림 원주민 소외와 차별로 피해의식 쌓여 분쟁 낳아
서니보이는 부인 앨리스의 말에 너무도 고분고분했다. 공처가임이 분명했다. 그는 순박하고, 순진하고, 순결했다.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주입받은 강령에 의해 그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할지라도, 그의 본성과 천성은 다른 누구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났을 때는 그 역시 인간이었고, 다정한 남편이었고, 따뜻한 이웃이었고, 친절한 친구였다.
이런 오지의 무슬림과 원주민 지역을 찾아 학교 건설을 지원하고 있는 제이티에스 최기진 간사는 "무슬림과 원주민들이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기는커녕 소외되고 차별 받으면서 피해의식이 쌓여가 반감이 높아가면서 분쟁을 낳았다"면서 "이들도 자기의 자녀들이 배워서 무지에서 벗어나고, 차별받지 않고 행복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기를 우리처럼 바라는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소수자들을 사악한 쪽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들을 더욱 차별하고 더욱 더 고립시켜 오직 저항과 항거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다수자들이자 기득권자들일 것이다.
무슬림 가운데서도 가장 악명 높던 킬러인 서니보이와 하룻밤을 보내며, 그가 삶아준 고구마를 먹고, 그가 끓여준 커피를 마시고, 그와 여러 번 포옹을 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회복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역시 종교와 신념과 생각 밖에선 너와 나의 본질은 털끝만큼도 다름이 없다’고.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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