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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동학인 표영삼에 대한 추억

등록 2008-02-20 17:47

[마음산책] 만인을 한울처럼…손수 만든 그의 빵이 먹고 싶습니다   며칠 전 한밤중이었습니다. 천도교 중앙총부의 이선영 교화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 명랑하기 그지 없는 이 관장님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 시대의 최후의 동학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표영삼 선생의 부음을 전했습니다.   가족에게만 알린 그의 마지막 길  
그도 그럴 것이 표 선생님의 장례식조차 다 끝난 뒤에야 그의 환원(별세) 소식을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털 끝만큼도 남에게 폐를 끼치기를 원치 않았던 표선생님의 뜻에 따라 가족 외엔 아무에게도 그의 부음을 전하지 않은 채 장례를 치렀고, 그의 유언대로 그의 주검(시신)은 서울대병원에 기증했다고 했습니다.   이 관장님은 제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밤이 늦었지만 전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표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은 제가 아는 그다운 것이었습니다.   천도교는 일제와 좌우세력의 탄압으로 교세가 급격히 쇠퇴했지만, 저는 천도교가 세상 종교로서 손색이 없는 훌륭한 종교라는 신학자 오강남 교수의 평에 동의합니다. 만약 사인여천(事人如天)하라는 천도교(동학)의 가르침대로 그가 장애인이건 여성이건 노인이건 범죄자이건 상대를 한울(天)로 여기고, 시천주(侍天主)의 가르침대로 만인과 만물이 한울을 모시고 있음을 깨달아 존중하고 모신다면 이 세상의 갈등과 불화와 고통의 대부분은 즉각 사라질 것입니다.   표 선생님은 수운 최제우-해월 최시형-의암 손병희 등 동학 스승들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려고 철저히 노력했던 분입니다. 역시 해월 최시형을 존경하며 원주에서 생명운동을 불러일으켰던 장일순 선생과도 교분이 두터웠습니다. 그래서 김지하 시인도 그에게 동학사상을 자주 경청했고, 명동 전진상교육관에서 동학을 가르치도록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올 김용옥 선생도 그에게서 동학을 배웠지요.   50년이 넘게 지켜온 그만의 부인 공경법  
 저는 지난 2005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 곰산의 전원마을에 사는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표 선생께서 물을 끓여 커피를 타주었습니다. 80 노인이 말입니다. 집 앞에 있는 텃밭에 있던 표 선생의 부인은 손님이 오든 오지않든 개의치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잠시 뒤 부부가 함께 있는 사진을 찍으려고 부인 오미경씨를 찾았더니 부인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골짜기로 산책을 갔다가 오후 늦게야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니, 선생님 점심상도 안차려주시고요?”라고 물었더니, 표 선생은 “집사람은 아침만 잡수고, 점심은 안 잡수시지요”라고 답했습니다. 당시엔 그 부인의 행동도, 표 선생의 어법도 참으로 가관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표 선생은 50년 넘게 부인에게도 경어를 써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 오는 손님의 대부분이 자신의 손님인데 부인이 남편의 손님을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자신의 삶을 살고, 즐기는 게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표 선생은 아들이 중학교 때부터 아침식사를 자청해 아침식사는 자신이 했고, 10여년 전부터는 모든 식사를 손수 했다고 합니다. 그의 부인은 저녁식사 뒤 설거지 당번만 하도록 했답니다. 오늘따라 표 선생님이 손수 만들어 내놓은 빵이 먹고 싶군요. 어떤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듣는 것보다 그가 만든 빵을 먹는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관련기사  사람은 하늘이니 아내도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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