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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곤경 닥쳐도 일어서는 오딘과 토르처럼…신화에서 길을 찾다

등록 2023-02-06 18:02수정 2023-02-07 10:23

신동흔 교수 <신화, 치유, 인간> 펴내
그리스신화의 영웅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 픽사베이
그리스신화의 영웅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 픽사베이

나라가 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역사가 그 길을 제시해준다. 그러면 개인이 삶의 미로에서 헤맬 때 무엇이 길을 밝혀줄까. 신화가 바로 길잡이가 되어준다.

신화를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 아픔을 치유하도록 이끌고 있는 신동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신화, 치유, 인간>(아카넷 펴냄)을 냈다.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이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신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분석해서 미로를 헤쳐나오도록 이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같은 대학원에서 설화를 연구한 저자는 설화에서 신화로, 한국의 이야기에서 세계의 이야기로 영역을 확장하며 세상의 오래된 이야기들을 통해 현재 우리 자신의 무의식을 읽도록 해준다. 이미 <옛이야기의 힘> <우리 신화 상상 여행>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살아있는 한국신화> 등의 저서도 그런 구실을 해왔다. 건국대 대학원 문화예술심리치료학과 교수도 겸하고 있는 저자는 한국구비문학회장을 지냈고, 한국문학치료학회장과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장을 맡아 치유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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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치유, 인간> 표지. 아카넷 제공

“신화 안에는 수많은 ‘나’가 존재한다. 너무 지엄하고 숭고해서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또는 너무 황당하고 엽기적이어서 고개를 젓게 만드는 신화 속 인물들에게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순간, 신화는 나의 것이 된다.”

저자는 “신화는 생로병사, 희로애락, 세상사 우여곡절을 극단의 극적 형상으로 표현해 강렬한 이미지와 격정적 서사로 우리의 인식과 정서를 뒤흔들고, 뒤집으며, 파괴함으로써 그 폐허 속에서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한다”고 말한다.

그가 풀어놓은 수많은 신들 가운데 우리에게 나르시시즘(자기애)이나 나르시시스트를 통해 익숙한 그리스신화의 주인공 나르키소스를 살펴보자. 나르키소스는 강물의 요정 리리오케가 케피소스강의 홍수에 휘말린 후 낳은 아들이다. 요정의 아들이어서인지 나르키소스는 무척이나 용모가 아름다웠다.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 리리오케는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아들인 그를 걱정하며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엄마의 애지중지 사랑을 받고 자라 자기밖에 모르는 나르키소스는 강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도취했다. 요즘으로 보면 전형적인 왕자병 증세에 다름 아니다. 그 강물은 바로 나르키소스의 어머니다. 따라서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어머니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다. 신 교수는 “나르키소스는 ‘어른아이’였다”면서 이렇게 분석한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오이디푸스가 애정 결핍에 의해 어린아이로 머물렀다면 나르키소스는 애정 과다로 인해 그렇게 된 경우다. 부모의 지나친 애착과 보호가 자식을 어린아이로 머물게 한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엄마라는 품에서 과도한 자기 충족감으로 지내온 나르키소스에게 그 틀을 벗어난 관계 맺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기애에 함몰된 어린아이였던 나르키소스는 성숙된 동반자적 상생의 관계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결과가 고독과 우울 속의 자멸이다.”

신 교수는 “자기애는 사랑의 시작이자 동력”이라며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하기는 어렵지만, 문제는 그것이 외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혀버리는 경우”라고 꼬집는다. 내가 최고이고 나만이 우선인 사람이 되는 것은 유아적 퇴행으로 타자와의 호혜적 관계나 진정한 사랑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다는 신화가 있는 크레타섬의 고대 궁전. 조현 종교전문기자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다는 신화가 있는 크레타섬의 고대 궁전. 조현 종교전문기자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다는 신화가 있는 크레타섬의 고대 궁전. 조현 종교전문기자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다는 신화가 있는 크레타섬의 고대 궁전. 조현 종교전문기자

저자는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길을 열 수 있는지 아테네 최고의 영웅 테세우스 신화를 통해 깨달음의 길을 안내한다.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이역에서 태어나 성장한 뒤 많은 악당들을 제압하고 아테네로 귀환한다. 그리고 아테네 청년들을 제물로 잡아먹던 크레타섬의 황소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찾아가 죽이는 데 성공하고 아테네의 왕이 된다. 테세우스가 상대한 미노타우로스는 아테네의 많은 청춘들을 제물로 삼아 잡아먹는 괴물이다. 제물로 바쳐진 아테네의 청춘들은 크레타성 지하의 미궁에 던져지는데 그 미로 속에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욕망의 화신인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먹이가 된다. 저자는 그 미궁을 인간이 한번 빠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욕망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테세우스만이 그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테세우스는 먼저 스스로의 선택으로 괴물을 찾아갔다. 그 점에서 희생물로서 보내진 아테네의 청춘 남녀들과 다르다. 테세우스는 욕망의 포로가 된 존재가 아니라 욕망을 제압하러 나선 존재다. 주체적 의지와 신념, 그리고 투쟁심과 행동력으로 미궁과 괴물에 휘둘리지 않고 나올 수 있었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다는 신화가 있는 크레타섬의 고대 궁전에 그려진 벽화. 조현 종교전문기자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다는 신화가 있는 크레타섬의 고대 궁전에 그려진 벽화. 조현 종교전문기자

신 교수는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가 표상하는 본능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의 대척점에 놓인 명철한 이성과 의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면서 “우리 내면의 싸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해당한다”고 전한다.

게임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등을 통해 익숙한 신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더욱 흥미롭다. 요즘 신세대들이 열광하고, 넷플릭스 드라마 <바이킹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북유럽의 신 오딘과 토르가 대표적이다. 신 교수는 “오딘과 토르는 신인 동시에 명백히 영웅에 해당하는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자연이 아닌 인간 존재를 표상한다”며 “자연의 편에서 세상을 주재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편에서 자연의 힘이나 체계와 맞서 싸운다”고 전한다.

북유럽의 신 오딘. 사진 픽사베이
북유럽의 신 오딘. 사진 픽사베이

전쟁의 신 오딘과 천둥의 신 토르가 발휘하는 위력은 일견 죽이고 파괴하기 위한 전쟁신 이미지에 가깝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살기 위한 것이고,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게 신 교수의 해석이다.

“그들은 전지전능한 무소불위 능력자가 아니다. 오딘은 한쪽 눈을 잃은 존재이며, 토르는 거인의 주머니에 속절 없이 갇혀 휘둘리는 곤경을 치른 존재다. 한계가 명확한데도 산꼭대기로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적극적이며 개척적으로 다른 벽에 몸을 부딪쳐 새 영토를 열어간다. 거대한 벽과 맞서 싸워서 스스로 거인이 되고 신이 되는 오딘이나 토르에게 세계의 큰 벽에 둘러싸인 21세기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현상이 우연이 아님을 문득 깨닫는다.”

<신화, 치유, 인간>은 우리가 늘 안고 사는 고민과 갈등, 외로움과 어려움을 이겨낸 신을 통해 우리는 고난의 인생, 삶의 두려움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 내 자신 그리고 가족 및 친구들과 다시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를 깨닫도록 해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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