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선수들이 3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고 통합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시즌제로 치르는 스포츠는 매년 왕좌의 게임을 반복한다. 매 시즌 한 팀은 정상에 오르는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왕좌를 차지한 모든 팀이 왕조를 여는 건 아니다. 절대적 강자로서, 해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비로소 시즌이 아닌 시대를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왕조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남자배구는 명실상부 ‘대한항공 왕조’다.
대한항공은 3일 끝난 2022∼2023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에서 현대캐피탈에 내리 3연승을 거두면서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3년 연속 통합우승, 통산 네 번째 챔피언이다. 올 시즌 코보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대한항공은 구단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 영예도 안았다. 1대 왕조로 꼽히는 삼성화재 이후 첫 3년 연속 통합우승이다. 2020년대 들어 열린 정규리그와 챔프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사실 대한항공은 ‘만년 2인자’였다. 2010년대 접어들어 정규리그 1위를 하는 등 강호로 거듭났지만, 전통적인 명가로 꼽히는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챔피언 자리를 두고 리그를 양분하는 동안 우승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업팀 시절(1969년 창단)부터 역사가 길었음에도 프로 무대에서 처음 챔피언에 오른 건 2017∼2018시즌에 와서였다. 정규리그 1위를 2010∼2011시즌에 달성했음을 생각하면 챔프전 우승까지 상당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대한항공 고공비행을 이끈 원동력은 뭘까? 무엇보다 구단 차원에서 ‘우승하는 팀’에 대한 의지가 컸고, 이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린 점이 눈에 띈다. 대한항공은 그간 세계 배구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필요하면 배구계 관행도 넘어섰다. 대표적인 게 외국인 감독 선임이다. 부임 2시즌 동안 연속 통합우승을 일군 토미 틸리카이넨 현 감독은 핀란드 출신으로 남자부 사상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이다. 나이도 부임 당시 33살에 불과했다. 팀 주장 한선수보다 2살이 어리다. 구단에 첫 통합우승을 안긴 직전 사령탑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이탈리아)은 남자부 최초 외국인 감독이었다.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가운데)이 3일 충남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은 뒤 팀 주장 한선수(왼쪽)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항공에 첫 챔프전 우승(2017∼2018시즌)을 안기며 왕조 기틀을 닦았던 박기원 타이대표팀 감독은 구단 차원에서 우승 열망이 강했다고 돌아봤다. 박 감독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우승 한 번 못해본 팀이 우승하는 길에 들어서는 일은 감독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많은 지원이 있었고, 구단과 선수도 이미 준비가 돼 있었다”고 했다. 박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뛰었고 이란대표팀 감독을 맡는 등 세계배구 흐름에 밝은 지도자로 2019∼2020시즌까지 대한항공을 지휘했다.
대한항공의 도전이 ‘반짝 성공’이 아닌 왕조 탄생으로 이어지면서 향후 프로배구에 끼칠 영향에도 눈길이 쏠린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았던 삼성화재 왕조 때와 달리 대한항공은 팀 전체 전력과 조직력이 뛰어난 강팀으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국인 감독이 각 구단이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로 떠올랐다는 점도 앞으로 국내 배구계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여자부에서는 흥국생명이 이탈리아 출신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을 선임했고, 페퍼저축은행도 미국 출신 아헨 킴 감독을 새 시즌을 지휘할 사령탑으로 낙점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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