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인 스키 순간 속도 세계 기록 보유자인 요한 클라레는 7일 알파인 남자 활강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AP 연합뉴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축구선수(약 2200억원) 킬리안 음바페(23·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구선수이기도 하다. 공을 달고 시속 36㎞로 뛴다. ‘플래시’ 우사인 볼트(36·자메이카)가 2019년 100m를 9.58초에 주파하면서 역사에 새긴 인류 최고의 속도는 시속 44㎞다. 볼트는 도핑 없이 타고난 재능과 노력만으로 트랙을 제패했다. 미친 속도들이지만, 음바페와 볼트를 멀찌감치 따돌리는 진정한 속도광들은 따로 있다. 설원과 빙판을 내달리는 겨울 종목의 챔피언들이다.
눈과 얼음은 마찰을 낮추고 경사진 코스는 중력 가속도를 더해준다. 스피드 박람회이기도 한 겨울올림픽의 속도 최강자는 어떤 종목일까.
썰매와 스키를 두고 다소 의견이 분분하지만 순간 최고 속도 기록만 따지면
스키가 더 빠르다. 프랑스의 알파인 스키 선수 요한 클라레(41)는 2013년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활강에서 순간 최고 속도 시속 162㎞를 기록하며 이른바 ‘100마일(160㎞)의 벽’을 깼다. 여전히 신기록이다. 불혹을 넘긴 그는 7일 베이징올림픽에서 남자 활강 은메달을 따면서 남자 알파인스키 최고령 메달리스트가 됐다. 4번의 올림픽 도전만에 이룬 값진 성취다. 클라레는 앞서
<올림픽 채널> 인터뷰에서 “기록 세우는 것보다 우승하는 게 낫다”고 각오를 표한 바 있다.
다음은 봅슬레이와 루지다. 엎치락뒤치락하지만 공인 최고 기록은 봅슬레이가 앞선다. 4인승 기준 봅슬레이 최고 속도는 2019년 2월 라트비아 대표팀이 기록한 시속 152.68㎞. 반면 천장을 보고 누운 채 아찔한 속도로 달리는 루지의 최고 속도는
기네스북 기준 시속 139.39㎞다. 미국의 토니 벤쇼프(47)가 2001 루지 월드컵 시리즈 연습경기에서 기록한 수치다. 다만 그도 올림픽 메달은 없다.
살벌한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겨울 종목들은 과도한 속도 경쟁을 막고 있다. 시속 100㎞를 거뜬히 넘나드는 레이스가 자칫 교통사고에 준하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0 벤쿠버겨울올림픽에서는 조지아의 루지 선수
노다르 쿠마리타시빌리가 훈련 도중 곡선 코스에서 튕겨져 나와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이후 국제루지연맹은 속도 상한선을 135㎞로 제한해 2014 소치겨울올림픽부터 따르도록 했다. 봅슬레이 역시 중량 제한을 둔다. 남자 4인승 기준 최대 630㎏다.
스키 종목에서도 사망자가 나온 적이 있다. 1992 알베르빌겨울올림픽
시범종목으로 도입된 스피드 스키에서다. 결승전 아침 연습 중이던 스위스 선수 니콜라스 보타하이가 눈 그루밍 차량과 충돌해 숨졌고 이후 스피드 스키는 올림픽 종목에서 사라졌다. 스피드 스키는 비탈길을 직선으로 내지르면서 순수하게 속도를 겨루는 종목이다. 이 분야 세계 기록은 2016년 이반 오리곤(이탈리아)이 세운 시속 254.958㎞다. 항공모함 함상기의 이륙 속도와 맞먹는다. 일반적인 알파인스키 활강 종목의 평균 속도는 최고 기록보다 한참 낮은 시속 96∼112㎞ 정도다. 국제스키연맹은 속도 경쟁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여겨 최고 속도에 공인 기록을 두고 있지 않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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